자기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은 공감을 심리적 산소라고 불렀다. 산소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듯이, 공감 없이 우리는 심리적 세계에서 숨 쉬며 살아갈 수 없다. 당연히 내담자의 심리적 세계에 함께하는 상담에서의 공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공감은 무엇일까?
공감은 타인의 내적인 세계 안으로 뛰어들어가 마치 그 사람인 것처럼 그 사람의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그 사람이 된 것처럼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공감은 어렵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도 아닌데 상대방의 관점에서 그가 경험한 것을 똑같은 수준으로 이해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에서는 공감에 대해 아주 세분화하여 정성스럽게 설명한다. 안아주기, 버텨주기, 반영해 주기.. 이 모든 것이 공감의 기법이다.
그런데 때로는 "네가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네, 그렇게 느낄만해, 그렇게 생각할만해. 그럴 수 있어. 너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내보려고 정말 많이 애썼구나.."라며 그의 상황과 느끼는 감정이 괜찮다고 알아주는 것, 노력의 과정을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공감이 될 때가 있다. 너의 맥락에서는 이해한다고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는 것, 그것을 "타당화 기법"이라고 부른다.
타당화 기법은 그 사람의 삶의 맥락에서 가질만한 감정, 의도, 그리고 노력해왔던 행동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상담자의 타당화 반응을 통해 내담자는 상담자가 자신을 깊이 있게 알아준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해 주는 단 한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시원해진다. 변화에 대한 희망이 생긴다.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만한 용기가 생긴다.
단언컨대 그 어떤 공감의 기법 중 타당화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둘째 복댕이는 5개월의 시작과 함께 몸무게가 이미 9.5kg다. 남자애라 그런지 뼈대가 굵고 상당히 묵직하다. 게다가 얼마나 활동적인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누워있으면 계속 놀아줘야 하고, 잠깐 자리를 비우면 울고 신경질을 내서 점퍼루를 태우거나 계속 안고 있어야 한다. 안으면 또 가만히 있는가? 그렇지만도 않다. 계속 파닥거린다. 머리와 팔다리를 마구 흔들어댄다. 내 몸으로만 지탱해 안고 있는 것이 너무 무겁고 버거워서, 아기띠나 힙시트를 해서 안고 있다.
그런데 이번 주, 복댕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기에 걸렸다. 약을 먹고 있는데도 감기가 더 심해졌다. 저도 힘들고 답답한지 컨디션이 더 좋지 않았다. 며칠째 밤에 잠도 계속 설쳐서 상당히 피곤할 거다. 오늘은 아기띠로 업으니 엄청나게 운다. 힙시트를 해도 운다. 그나마 팔로 꼭 안으니 진정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배를 쭉 내밀고 아기를 안아 토닥였다.
10분, 20분, 30분, 40분.. 선잠을 자다가 깨서 울다가를 반복했다. 아픈 건 알지만 잠들듯 들지 않는 아이가 너무 야속했다. 팔과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왔다.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인 젖물잠을 시도했다.
젖을 먹으면서도 계속 그르렁 거리며 신경질을 냈지만, 며칠째 피곤이 쌓인 만큼 쌓인 나도 수유하며 잠깐 잠이 들었다. 계속 움직이는 아이를 고정하기 위해 어찌나 팔에 힘들 주고 잤던지 잠깐 깼을 때 팔이 마비된 느낌이었다. 다행히 복댕이도 자고 있었다. 숨죽이면서 간신히 아픈 팔을 조금씩 빼내는데 복댕이가 깨버렸다. 그리고 온몸이 땀에 범벅될 때까지 세상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다.
시간을 보니 젖물잠 후 겨우 10분이 흐른 상태였다. 도저히 온몸을 흔들어대는 이 아이를 다시 안아 재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젖물잠을 다시 시도했지만 배가 부른 지 더 신경질을 냈다. 하루 종일 아이의 우는소리에 귀가 멍멍했다.
첫째가 오기까지 2시간 30분, 남편이 오기까지 3시간 30분. 갑자기 이 까마득한 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어졌다. 도망가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야근을 한 남편을 향해 삐딱한 목소리로 오늘은 언제 오냐고 물었다. 회의를 막 마치고 나왔다면서 오늘은 정시 퇴근을 한단다. 그때 수화기 넘어 복댕이의 자지러지게 우는소리를 들은 남편이 "괜찮아? 복댕이 계속 울어서 힘들지"라고 이야기했다.
갑자기 온갖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눈물이 터졌다. 펑펑 울면서 나 좀 살려달라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도망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복댕이는 너무 무겁다고, 너무 몸을 움직여서 내가 힘으로 감당이 안 된다고. 오늘도 하루 종일 안고 있어서 팔은 빠지고 골반은 내려앉을 거 같은데.. 또 안을 자신이 없다고. 그냥 두면 목이 쉴 때까지 울어대는 저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 어떤 어려움에도 평정심을 잘 잃지 않는 나다. 육아를 하며 처음으로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감정에 남편은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말을 더듬으며 4시에 조퇴를 할 테니 1시간 30분만 더 버텨달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미 터진 나는 참지 못하고 계속 울었다. 옆에서 복댕이는 더 크게 울었다.
남편이 그냥 지금 바로 가겠다고 하고, 어찌 날아온 건지 30분 뒤에 집에 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다리 사이에 복댕이를 지탱하고 겨우겨우 달래고 있었다. 남편은 오자마자 손을 씻고 셔츠 차림으로 복댕이를 들어 안았다. 무기력하게 눈물을 흘리며 누워있는 나를 보더니 더 묻지 않았다.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지?" 하고 거실에 나가주었다.
그렇게 누워있는데 내가 너무 하찮게 느껴지고 비참했다. 내가 너무나도 못난 엄마인 거 같아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애가 아파서 엄마한테 더 안겨있으려고 하는 건데.. 아이를 더 안아주지 못하는 내 몸이 원망스러웠다. 더 버티지 못하고 겨우 이 정도로 울고불고 일하는 남편을 집에 오게 한 내가 한심하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우는 아이를 두고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한 내가 어떻게 엄마냐며 스스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때, 밖에서 남편이 복댕이를 달래며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나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 김쏘쏘, 고생 참 많지. 내가 알지.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거 네 성격에 정말 힘들다는 거 내가 아는데. 육아가 참 그렇지? 밖에 나가서 활동을 해야 생기가 넘치는 앤데 집에서 애들 보고 육아하는 게 너한테는 유독 더 힘들지? 친구도 좋아하는 애가 친구도 못 만나고.. 잠도 잘 자야 되는데 맨날 잠도 잘 못 자고.. 잘 먹어야 되는데 애 보면서 챙겨 먹기도 어려울 거고..
참 어떡하냐, 네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전화를 했겠어. 이렇게 터질만했지. 네가 얼마나 좋은 엄만데. 힘들어도 잘 견뎌왔는데, 잘해왔는데. 오죽했으면. 야 신복댕. 왜 엄마 이렇게까지 힘들게 해! 좀 누워서 자지 그만 울지! 아빠가 들어도 이렇게 무거운데!"
남편은 내 상황과 내 마음, 그리고 내가 이렇게 터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까지 아주 깊이 알아주고 있었다. 나조차도 비난하며 한심해했던 내 마음을 내 성격의 맥락에서, 내 삶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었다.
남편의 공감이 나약한 엄마라고, 엄마 자격도 없다고 차갑게 비난하던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기 시작했다. 나도 몰랐던, 나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던 내 마음과 상황을 알아주었다.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해주었다.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던 내 안에 조금씩 생기가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내 마음을 압도했던 감정들이 조금씩 빠져나갔다. 여전히 힘들어 죽겠지만 좀 괜찮아졌다.
"넌 엄마 자격도 없어, 겨우 이걸로 이렇게 힘들어하면 어떡해? 엄마라면 이러면 안 되는 거야!"라는 비난의 언어 대신에 남편이 건넨 공감의 언어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그래.
너도 이 날씨 좋은 날 얼마나 나가서 놀고 싶었어, 일하러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얼마나 부러웠어, 너도 며칠째 잘 못 잤는데 얼마나 피곤했어, 얼마나 쉬고 싶었어, 여유롭게 밥 먹는 네가 얼마나 빨리 밥을 입안으로 욱여넣었으면 이렇게 속이 쓰려,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데도 아이가 아프다는 것이 얼마나 속상했어, 아픈 게 또 네 잘못인 거 같아서 얼마나 힘들었어, 더 잘해주고 더 많이 안아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니까 얼마나 답답했어..
또 눈물이 흘렀다. 이번에는 속상함이 아니라 고마움과 위로의 눈물이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거실로 나가서 남편과 시답잖은 대화를 나눴다. 복댕이 머리가 곱슬거린다느니, 목소리가 크다느니, 5개월에 100 사이즈를 입는다느니 하는 우스운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곤 같이 빵을 구워 내가 좋아하는 쨈을 발라 먹었다. 마음도 몸도 괜찮아졌다. 다시 힘을 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깊이 있게 공감해 주고,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내 상황과 감정을 타당화해준 남편 덕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를 계속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타당화 기법은 나뿐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서도 더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한다. 내 상황과 마음을 알아주었기에 할 일이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와준 남편처럼, 타당화 기법은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대의 맥락과 마음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일 중간에 급하게 뛰쳐나오게 할 만큼 펑펑 울던 나에게 이해한다고, 괜찮다고 해줬던 남편의 넉넉한 마음은
내게도 그를 더 이해하고 싶게 해 주었고, 아이들을 더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육아하며 고군분투하는 나도, 일하고 집에 와서 한시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남편도, 태어나 처음 감기 바이러스와 싸우는 복댕이도, 아픈 동생에게 엄마의 품을 양보해 내는 행복이도, 나의 SOS에 먼 걸음 기꺼이 달려와준 친정 엄마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한 하루임을 안다.
우리도 사람인지라 어떨 땐 서로를 이해해 주긴커녕 상처를 남기고, 서운하고 화나는 일이 생기고, 갈등과 다툼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와 가족의 노력의 과정을 알아주는 너그러운 마음만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부족한 게 많을지라도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다.
정말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만큼 정말 감사했던 하루의 끝, 오늘만은 더 너그럽게 우리가 정말 애쓰고 노력했던 모든 과정들을 알아주고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