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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Feb 07. 2022

있잖아, 엄마도 어릴 때 그랬었다?(+자기개방)

상담자의 자기 개방 기법

행복이는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잘 하진 않지만, 또 어느 날은 조잘조잘 이야기하기도 한다. 특별히 어린이집에 있었던 이야기를 대방출하는 날은 엄마인 나도 신이 난다.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의 행동들을 담아내는 아이의 말에 재밌고 귀여워서 깔깔대며 듣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행복이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엄마, 오늘 팔찌 만들기를 했는데 나는 못했어. 줄에 위로 끼어 넣어야 하는데 계속 밑에 넣어서 잘 안됐거든"


"엇 그런 일이 있었어? 구슬을 줄에 끼워 넣는 게 어려웠나 보다. 그래도 행복이 예전에는 팔찌 잘 만들어서 들고 왔었잖아"


"응 근데 오늘 구슬 할 땐 행복이는 못했어. 선생님이 내일 또 만들자고 그랬어. 그래서 오늘 못 가져왔어. 팔찌 만드는 건 어린이집 거라서 못 들고 오거든."


"그랬구나.. 내일 할 땐 또 한 번 해봤던 거라서 생각보다 잘 넣어질 수도 있을 거야!"


"응 근데 믿음이는 다 만들었다? 사랑이도 다 만들었어. 그래서 믿음이랑 사랑이는 팔찌를 집에 가져갔어. 믿음이는 팔찌도 빨리 만들더라. 믿음이는 다 잘해. 근데 나는 못 만들었어."



시무룩한 표정의 아이.

엄마인 내 표정도 함께 시무룩해진다.


너무 속상했다.. 행동이 느린 우리 딸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빨리해보려고 했지만 잘 안되고.. 자꾸 안 끼워지고, 떨어지길, 반복하다가 선생님이 시간 다 됐으니 내일 만들자고 했을 상황이 그려진다. 완성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에 허둥지둥 넣으면서도 완성된 친구들의 팔찌를 보며 부러워했을 아이의 마음이 내 마음에 담아진다.


결국 팔찌를 갖고 오지 못한 우리 딸...

아 속상하다.


엄마로서 뭔가 위로되고 힘이 될 말을 해주고 싶은데........... 괜찮다, 잘할 수 있다 이런 뻔한 말 말고..

무슨 말을 해야 되지......






어떤 기억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도형을 못 그렸던 어린 시절의 나"


나 역시 친구들보다 생일이 한참 늦다. 그 이유 때문인지, 기질 때문이었는지 나도 어릴 땐 행동이 느리고, 인지도 또래에 비해 더디게 발달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1~2학년 때의 일이다.


수업 시간에 사각 도형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활동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 그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옆에 짝꿍은 정말 순식간에 그렸다. 둘 다 못 그렸다면 원래 어려운가 보다 했을 건데, 짝꿍이 엄청 빠른 속도로 잘 그려버리니까 상대적으로 내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어린 마음에 자신이 없고 슬펐다. 기가 죽었다.


게다가 담임선생님이 오셔서 나보고 너는 이 쉬운 것도 빨리 못 그리냐며, 옆에 짝꿍한테 그려달라 하라고 했다. 수치심까지 밀려왔다. 어찌어찌 그 시간이 지났지만,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내게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이 기억이 있으니 행복이의 오늘 이야기에 더 깊게 공감이 되었나 보다. 내가 어릴 때 겪었던 비슷한 경험이 떠오르자 행복이와 나누고 싶었다.


때로는 나도 그랬다는 말 자체로도 위로가 될 수 있으니까.






상담에서 내담자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상담자가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기법 중 [상담자의 자기 개방]이라는 기법이 있다. 상담자는 내담자로부터 느껴지는 감정과 생각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집중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시시콜콜 대화하듯 내담자와 나누지 않는다. 상담에서 중심을 잡고 가야 하는 초점은 내담자이며, 그의 감정과 생각,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때로 상담자가 자신의 느낌과 생각, 뿐만 아니라 경험을 나눌 때가 있다. 이것이 상담자의 자기개방 기법이다. 상담자가 자신을 개방하는 것이 내담자에게 유익하고, 더 도움이 되며, 상담 문맥상으로도 벗어나지 않을 때 상담자는 자기 개방을 한다.  예를 들어, "나도 친구에게 배신당했을 땐 많이 속상해서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어요."라던가 "나 같아도 참 많이 화가 났을 거 같아요.", "나도 진로를 선택할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정말 많이 혼란스러웠죠" 등의 반응은 자기 개방 중 한 반응이다. 물론 적절하지 못한 자기개방은 상담의 흐름을 깰 뿐 아니라 그 회기 내의 관심사가 내담자에서 상담자로 옮겨질 수 있는 등의 부정적인 결과를 남길 수도 있어서 숙련된 상담자가 주의 깊게 사용해야 하는 기법이다.


그리고.. 잘 활용한 자기개방의 효과는 엄청나다.

상담의 적재적소에서의 상담자 경험이나 감정, 생각 등을 있는 그대로 내담자와 나누는 것만으로도 내담자에게 엄청난 통찰과 공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이 문제가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 위로를 받는다.

게다가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는 것,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나도 괜찮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기고 더 친밀해진다.






딸에게 내 경험을 개방하고 나누자.


도형은 아직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 팔찌로.

행복이에게 말했다.



"있잖아 행복아, 사실 엄마도 어릴 때 그런 적 있었다?"


"엄마도 팔찌 못 꼈어?"


"응, 엄마도 팔찌를 잘 끼고 싶어서 엄청 노력했는데, 잘 못 만든 적이 있었어. 근데 또 옆에 친구는 빨리 만들어버리더라고. 그래서 기분이 안 좋더라. 빨리 만들고 싶은데 안돼서 답답하고 속상했어."


"나도 오늘 그랬어. 나도 팔찌 빨리 만들고 싶었는데 못해서 속상했어"


"맞아 맞아 엄마도 그랬어. 그래서 엄마는 열심히 연습했다? 그랬더니 그다음엔 만들 수 있었어. 그다음엔 더 빨리 만들었고 점점 빨라졌어"


"나도 연습하고 싶어. 내일 또 만들면 되니까! 계속 계속 연습할래"


"좋아좋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연습하고 계속 노력하는 사람이 진짜 멋진 거야."


"근데 믿음인 처음부터 잘해"


"이건 비밀인데... 믿음이도 집에서 연습 많이 했을걸?"


"진짜?"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가면서 같이 당근 마켓으로 팔찌 만들기 키트를 샀다.

같이 만들어보면서 시무룩한 아이의 표정이 점점 밝아진다.

계속 "엄마도 그랬어?" "엄마도 좀 어려워?"라고 묻는다.



엄마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다는, 그리고 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에게 안도감을 주는 것 같아 보였다.







아이에게 "완벽함"이 아니라 "이만하면 괜찮은"의 삶의 태도를 가르쳐주고 싶다.


사실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잘했던 멋있었던 모습만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 역할은 잘하라고 격려하고, 잘 가르치는 거라고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난 완벽하고 멋진 엄마이고 싶으니까.


그런데 사실 완벽한 엄마도 사람도 없다.

삶이란 완벽할 수가 없고 완벽을 추구해서도 안된다.

그냥 이만하면 괜찮은 세상 속, 이만하면 괜찮은 사람들이 모여, 이만하면 괜찮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까.


그러니 때로는 이렇게 엄마의 실패 경험을 나눠보는 것도 괜찮은 거 같다.

엄마도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 엄마도 실수도 했고,  실패도 경험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노력해왔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이에게 더 동기부여가 되고 힘이 되지 않을까.


엄마도 나처럼 이런 부분이 어려웠구나,

그래도 이렇게 노력을 해서 극복했었네,

나도 지금 좀 못했어도, 좀 어려워도, 엄마처럼 노력해 볼 수 있겠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조금씩 아이의 좌절을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고,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좀 오늘 팔찌 만들기를 실패했어도 나는 노력하는 이만하면 괜찮은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 그 과정을 알아주는 엄마. 그리고 내일은 또 팔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 이것이 아이를 단단하게 자라나게 해 줄 것이다.






ps.

이날 밤 일기를 써두고 행복이가 만들어 오는 팔찌를 기다렸다.

그렇게 이틀 뒤인 오늘,


"엄마! 내가 팔찌를 만들어 왔어요." 하며 집에 오자마자 꺼내 자랑하는 우리 딸.





오늘 또 이렇게 자라고 있구나. ㅎㅎㅎ


고마워 그리고 기특해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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