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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Oct 01. 2021

너의 생떼가 나의 인내를 뒤흔들 때 (+안아주는 환경)

공감_안아주는 환경


저명한 정신분석 이론가, 대상관계 이론가였던 도널드 위니컷(1896.4.7 – 1971.1.25)은 아이가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육자의 '보듬어주는 환경 또는 안아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릴수록 아이는 말그대로 신체적으로 안아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낯설고 불편한 느낌에 마구 울어대는 말 못 하는 아기에게 가서 왜 이것이 낯설고 불편한지 설명해 주는 부모는 없다. 엄마는 우는 아기를 일단 들어 올려 안아주고 토닥여준다.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해주는 엄마로부터 아기는 안전함을 경험하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할 수 있다.



정신적으로 보듬어 주는 환경도 비슷하다.

아이의 마음을 공감적으로 잘 알아차린 엄마가 아이에게 적절하게 반영해 주고, 보듬어주며, 안아주는 것이다.


Holding이라는 것은 사전적 의미로 "쥐고 있다, 유지하다, 잡고 있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위해서 엄마는 무엇을 쥐고 잡고 유지하게끔 해줘야 하는 것일까?

바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가 너를 이해한다는 것, 너의 어떠한 경험도 괜찮다는 것, 언제나 엄마가 너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가 경험하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엄마가 너의 버팀목이 되어줄게, 그것이 안아주는 엄마의 역할이지 않을까?



안아주는 환경은 아이가 클수록 조금씩 달라진다.


아이가 어릴수록 엄마가 연약한 아이 대신 정서를 조절해 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며, 아이가 마주하는 불편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한 힘껏 안아주는 환경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는 아이가 자발적으로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하는 안아주는 환경에서 해결자가 아닌 조력자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다가 아이가 청소년이 되었을 때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믿어주는 안아주는 환경이 필요하다.

안아주는 환경은 아이에게 의존이 필요할 때 의존할 수 있게 해 주지만,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는 엄마가 기꺼이 물러나 주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내적 경험이며,

엄마는 그 경험에 맞춰서 민감하게 반응하며, 보듬어주는 것이 아이의 성장에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 첫째 어린이집 하원 하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행복이가 오늘 낮잠 안 잤어요.. 잠이 안 온다고 하더라고요"

마음이 쿵.. 했다. 그 말에 아이의 눈을 보니 꾸벅꾸벅 피곤한 게 보인다.

우리 첫째는 5살이지만 12월생인 아직 48개월이 되지 않은 어린이라, 아직 낮잠은 필요하다.  



엄마의 머리가 마구 돌아간다.

시간은 어느덧 5시. 8시에 잔다는 것을 목표로 해도 3시간이 남았다.

8시 전에 재우면 밤에 무조건 깨기 때문에 최소 8시까지는 버텨야 한다.

물론 잠깐 눈을 붙이라고 해도 어떻게든 잠을 이겨낼 아이인 것을 알기에, 3시간을 어떻게든 버티자 다짐하며 집으로 왔다. 아이가 피곤할 테니 들어가자마자 먼저 씻기고, 옷 갈아입힌 다음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짧은 행복 타임 후 잠을 자면 되겠다고 계획했다.



그런데 어디 육아만큼 내가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이 또 있을까..



집에 들어오자마자 불량한 태도를 보이더니 이유 없는 생떼가 시작된다.

말 그대로 생떼이다. 먼저는 옷을 벗지 않는다.

예쁜 잠옷으로 겨우겨우 꼬시니 옷은 벗었지만 씻는 걸 거부하기 시작한다.

씻겠다고 해서 욕실 들어가 기다리면 또 안 오고, 다시 한다고 해서 욕실 들어가서 오라고 했더니 왔다가 도망가고..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아이지만.. 얄밉다.



도망 다니는 얄미운 너의 뒤태.....


몇 번 샤워하자고 조금 엄하게 얘기했더니 이제는 빨가벗고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울면서 소리를 지른다.

그럼 이따가 씻자고 해도 울고, 그럼 그냥 샤워하자 해도 울고, 그냥 추울 거 같으니 옷만 갈아입자고 해도 운다.



머리가 지끈 아프다. 

둘째도 안아달라고 울고, 속절없이 가는 시간 동안 차라리 그냥 울다가 잠들면 좋겠다 싶은데 자지도 않는다.

추울까 창문도 다 닫고 아이가 진정되길 기다려본다.

밥도 먹여야 되고 양치도 해야 하는데 여러모로 엄마 마음만 바쁘다.

말이 기다린다는 거지, 나 역시 조금만 버튼이 눌러져도 폭발할 거 같아서 인상을 쓰며 겨우겨우 참고 버티고 있다. 내 표정을 살피던 아이가 일어서더니 소파에 드러눕는다. 멍하게 천장을 본다. 그래, 잠깐 휴전하자.



남편이 왔다. 둘째를 어찌어찌 맡기고 본격적으로 본능만이 남은 첫째와 마주한다.

"행복아, 엄마랑 얘기하.." 했더니 갑자기 또 소리 지르면서 울기 시작한다.



괜찮다고 공감을 시도해도 안 통하고,

왜 씻어야 하는지 설명해도 안 통하고,

씻고 난 후의 맛있는 간식과 재밌는 영상으로 회유해도 안 통하고...  

계속 내 얼굴을 보면서 소리를 지른다.

그래, 너 오늘 컨디션 최악이구나.



근데.. 문제는 나도 최악이야. 내 버튼도 눌러졌어.

참 씻는 게 뭐라고.. 모녀간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넌 지금 씻는 시간이야. 엄마 욕실 가서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울어도 어쩔 수 없어."

한숨을 크게 쉬고 욕실 가서 기다린다. 당연히 오지 않는다. 아빠가 기분 좋게 달래려고 시도하니까 더 크게 반항하는 소리가 들린다. 


너무 지친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씻겨야 되나 싶고, 그냥 재우면 어떻게 될까.. 아니 밥은 어떻게 먹을까... 뭘 먼저 해야 될지 하나도 모르겠는 시간 속에서 나도 사람인데.. 왈칵 서러움이 밀려온다. 야.. 너만 우냐.. 나도 울고 싶다.








문득 고개를 드니 거울에 비친 내가 참 지쳐 보인다. 안됐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짧은 시간이지만 일단 나를 공감하기 시작한다.

이때 "야.. 쏘쏘.. 너 진짜 불쌍하다. 너 여기서 뭐 하고 있냐."라는 자기 연민과 비난의 목소리가 내 마음으로 확 들어오려고 하면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문 앞에 그냥 그대로 둔다. 문을 여는 순간 참혹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대신 마음의 안전한 방으로 가서 있는 힘껏 내가 나를 안아줘 본다.  

"애 하나 키워내는 거 진짜 힘들지? 지치지.. 너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너도 누군가에게 너무 의지하고 싶지.. 너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구나. 엄마 역할하는 게 참 어렵지.."

그래 맞다. 사실, 나도 지치는 상황 속에서 누군가 나를 안아주고, 도와주고, 아이에게 화나 죽겠는 이 내 경험이 당연하다고 위로받고 싶었다.



그러자 아이가 보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 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겉으로는 포악한 괴물같이 소리만 지르고 있는 저 아이의 내면은 잠 와 죽겠고, 그런데 자기는 싫고, 그러니까 다 짜증 나고, 엄마는 이해도 안 해주고 씻으라고만 하고, 아빠는 오자마자 동생만 안고 있어서 서럽고..



지금 제일 필요한 건 발가벗은 아이를, 혼란스러운 아이의 마음을 엄마가 있는 힘껏 안아주는 거겠구나.



신경전을 멈추었다. 이 신경전에서 이기면 무엇하랴.

소파에 발가벗은 채로 누워있는 아이에게 가서 말했다.



"행복아, 엄마가 안아줄게. 네가 마음이 풀리면 언제든 엄마한테 와서 안겨.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게" 하고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한테 폭하고 안긴다.

제 마음을 잘 설명하진 못하지만 엄마 가슴의 머리를 박고 부비부비 한다.

시간이 좀 지나자 엄마가 나쁘게 얘기해서 화가 났다고 한다. 친절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모기가 물렸는데 물이 닿으면 아플까 봐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아.. 네 마음이 그랬겠다고 이해된다고 충분히 공감해 주었다.

그리고 엄마도 빨리 행복이랑 씻고 놀고 싶은데 행복이가 계속 울기만 하고 씻으러 안 와서 속상해서 그랬다고 했다. 모기 물린 곳은 물이 닿아도 아프지 않을 거라고, 그래도 걱정되면 밴드를 붙여보자고 했다. 그러자 웃으면서 이제 씻고 싶다고 한다.







잠은 오고 컨디션도 최악인데 나쁘게 말하는 엄마.

이 속에서 아이는 혼란스럽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었나 보다.

이 감정에서 스스로 어떻게 빠져나오지 못해서 계속 울고 소리 질렀나 보다.



그런데 내 세상인, 내 전부인 엄마가 꼭 안아주자

마법처럼 내 부정적인 마음이 녹아버렸다.

어느샌가 괜찮아지고 진정이 된다.


그럴 수 있었겠다는 것을 알아주는, 나를 안아주는 엄마로부터 내 화나고 어려웠던 마음이 일순간 괜찮아짐을 경험한다.



오늘도 난 내 바쁘고 조급한 마음에 아이의 마음을 무시했던 별로인 엄마였지만,

그럼에도 보듬어주고 안아주는 내 행동을 통해 우리 아이는 다시 한번 이만하면 괜찮은 엄마를 경험한다. 이런 아이의 너그러움이 참 고맙다. 내가 좀 실수하고 실패해도, 그럼에도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해 주는, 엄마가 두 팔을 벌릴 때 기꺼이 안아주러 와주는 그 마음이 참 고맙다.



그리고 얼마나 울었던지 이날.. 내 걱정이 소용없을 만큼 아이는 잘 먹었다.

배고팠는지 두 그릇이나... 그래서 비교적 아이는 빨리 잘 잠들었다.



참..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육아다








육아, 참 고되고 힘들다.

아이 씻기는 거 하나로도 이렇게 마음과 온몸이 진이 빠진다.


그래서 나도 육퇴 후, 나를 안아주는 환경으로 나가본다.


눈을 감고 두 팔을 크로스 하여 내 어깨를 토닥여 본다. 나 스스로 나를 안아준다.

어느 날은 남편에게 가서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나를 좀 안아서 등을 토닥여줘"라고 말하고 안겨있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날은, 방에 들어가 나를 안아주는 노래를 틀어놓고 힘껏 부르기도 하고, 찬양을 틀고 기도하며 나를 안아주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특별히 오늘 내 하루의 끝 기도하고 글을 쓰며,  

내가 있는 삶의 자리에서 내 나름대로 부단히 애쓰고 노력했음을 인정해 주고,

내가 좀 못한 것이 있었을지라도 어쩔 수 없었던 나를 이해해 주고 안아주고,  

내가 잘한 것이 있었다면 기꺼이 나 자신을 칭찬해 주며,

그냥 다를 거 없이 평범한 하루에서도 성실히 그리고 묵묵히 내 자리를 감당했음을, 이만하면 나 충분히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알아주려고 한다.



이 모든 보듬어주고 안아주는 환경 속에서 엄마로서의 나도 성장해 나갈 것을 믿는다.


그리고 이 힘으로 내 사랑하는 이들을, 내 아이를 힘껏 보듬어주고 안아주는 그런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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