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유난히 밤에 잘 자지 못하고 1시간마다 자지러지게 울며 깨는 복댕이 때문에 온 가족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우리 행복이도 예외는 아니다. (이 글을 쓰는데도 몇 번을 깬 건지..)
행복이도 피곤이 쌓였는지 어린이집 하원하고부터 계속 안아달라고 조른다.
평소에 엄마품에 동생을 많이 양보하던 아이가 계속 안아달라니 오늘은 무시할 수 없다. "옴마옴마" 하는 복댕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행복이를 많이 안아주었다.
동생 젖 물리며 재운다고 매일 엄마 등만 보고, 그 등이라도 꼭 껴안고 자던 행복이. 그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찡해 오늘은 복댕이를 아빠에게 맡기고, 행복이와 단둘이 먼저 누웠다. 거실에서 복댕이가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오늘은 누나에게 양보하자 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행복이와 침대에 누워 말씀 암송하고 기도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어느새 5살 누나가 돼버린 행복이가 기특해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행복이를 꼭 껴안았다.
"행복아, 엄마는 행복이한테 참 고마워. 이렇게 잘 자라주고 있어서 참 고마워."
"뭐가 고마워?"
"키도 잘 크고 있고, 밥도 잘 먹고 있고, 용기도 더 생겼고.. 정말 고마운 게 많아."
"엄마 근데 나는.. 아기가 되고 싶어."
"아기가 되고 싶어? 왜?"
"엄마.."
"응?"
"... 엄마가 좋아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아.. 우리 속 깊은 딸이 이렇게 말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참아왔을까.
늘 내 예상을 뛰어넘는 아이의 말. 왜 나는 최선을 다해도 이렇게 네 마음을 놓치는지 모르겠다.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개개인의 독특한 생활 스타일과 사회적 관심의 중요성을 강조한 개인 심리 상담. 이 이론을 개발한 알프레드 아들러는 개인의 생활양식(스타일)을 파악하기 위해 그 사람의 출생순위를 살펴본다. 그리고 아들러에 따르면 첫째는 "폐위된 왕"에 비유된다.
첫째는 태어나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면서 가족 내에서 '군림하는 지배자'로 안정감과 기쁨을 누린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나며 폐위된 왕이 되는데, 지위에서 내몰리는 경험으로 인해 권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권력을 되찾는 과정은 쉽지 않다. 화도 내 보고, 퇴행도 해보고..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더라도 예전과 같이 군림하는 지배자가 되긴 불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겪는 실패와 좌절에 적응해나가며 타인의 사랑과 애정만을 갈구하기보다는 스스로 살아나가는 전략을 획득해 나간다. 그렇게 첫째 아이는 성장한다.
폐위된 왕.....
유난히 오늘 "폐위된"이라는 단어가 참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행복이의 말 때문이었을까, 나도 첫째이기 때문일까? 나도 기억도 나지 않는 한참 어릴 때 막연히 "왜 엄마는 동생 엉덩이만 깨무는 거지? 나는 안 귀여운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지 못했던 마음 약했던 나. 그랬던 내 모습이 우리 행복이에게서 보이니 마음이 더 짠하다.
"행복아, 엄마는 행복이가 5살이 돼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뭐가 좋아?"
"엄마랑 같이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엄마랑 같이 카페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같이 놀고.. 이 모든 게 행복이가 5살이어서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런데 나는 아기가 되고 싶어. 나도 귀여워지고 싶어."
"행복아 엄마는 여전히 행복이가 너무 귀여워.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 하며 더 꼭 안아줬다.
오늘만은 행복이가 폭 잠들 때까지 예전처럼 꼭 껴안아주고 싶었다. 토닥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여전히 엄마가 고픈 복댕이가 엄청나게 크게 울며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감당 못할 정도로 크게 울어서 도저히 무시하고 잘 수가 없었다. 결국 행복이에게 복댕이를 안고 재우겠다고 하자, "싫어.. 엄마 싫어.."라고 한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복댕이의 성질을 알기에.......... 절대 포기할 아기가 아니다.. 얼른 복댕이를 재우고 행복이 옆에 다시 눕겠다고 얘기하며 복댕이를 안고 행복이 옆에서 열심히 복댕이를 재웠다. 그런 내 모습을 침대에 누워 눈을 껌벅이며 쳐다보는 행복이.
복댕이는 왜 이렇게 잠에 못 드는 건지.. 왜 이렇게 자주 깨는 건지 화도 나고 힘들었다. 침대에 누워서 엄마가 누운 베개를 만지작거리는 행복이를 보면서 너무 슬펐다. 왜 늘 행복이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는지 알면서도 속이 상했다. 마음만은 나도 저기서 아이를 꼭 껴안아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에 화가 났다. 유난히 엄마 집착이 심한 우리 애들을 보며 모유 수유 때문에라고 애꿎은 모유를 탓했다. 괜히 밖에서 눈치 보며 집 청소를 하고 있는 남편에게도 화가 났다.
아니,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이 모든 상황 자체가 화가 나고 힘들었다.
그렇게 겨우 복댕이를 재우고 나니 어느새 행복이도 잠들어 있었다. 오늘도 다 잠이 들고 나서야 머리를 만져주고, 뽀뽀를 해준다. 오늘은 잠들기 전에 해주고 싶었는데..
참.. 정말 무릎이 시리게, 어깨가 빠져라, 최선을 다하는데도 내 마음이 많이 미안하다.
최선을 다해도 늘 미안한 엄마 마음이 어쩔 수 없나 보다.
보기만 해도 아까운 우리 딸을 폐위된 왕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거 같다. 첫째가 감수하고 성장해 내야 할 어쩔 수 없는 일.. 그래서 오늘도 잠든 아이를 토닥이며 기도한다. 이 모든 경험이 아이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달라고, 이 최적의 좌절 속에서 행복이가 더 단단하게 자라나게 해 달라고..
내 마음만은 첫째에게 늘 넘쳐흐르지만 나의 한계를 받아들인다. 최선을 다해도 부족할 수밖에 없지만.. 이 부족함으로 인해 네가 좀 더 견뎌보고 스스로 조절해 보며 성장해나갈 것을 그리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더 믿고 의지할 수 있을 것임을 믿는다.
그래도 우리 딸이 이렇게 마음을 표현해 줬으니.. 조금 더 첫째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봐야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엄마 마음과 상황을 알아주고 위로해 줄 만큼 훌쩍 큰 너를 만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