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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Sep 24. 2022

너를 위한 것이라 포장했지만, 사실은 나의 불안이었다

엄마의 불안

친한 상담 선생님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떤 상담의 에피소드를 들었는데, 머리를 한대 쾅 맞는 것 같았다.



[사례는 각색함]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한 내면을 소유한 A씨는 작은 일에도 불안하고 긴장될 때가 많다.

어릴 때부터 그랬는데,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자신이 어느 것에 걱정을 표현할 때면 엄마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뭐 그런 것 갖고 걱정하고 그래~ 별거 아니야. 괜찮아. 잘될 거야"


분명 엄마는 딸을 위해 한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딸에겐 이렇게 들렸던 것 같다.

"너는 애가 왜 이렇게 예민하니. 별것도 아닌 걸로 불안해하고 그래. 너 그거 되게 이상한 거다? 고쳐야 돼"


A씨는 점점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다.

나는 불안하고, 긴장돼서 밤에 잠도 못 자는데 아무것도 아니라는 엄마에게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A씨는 엄마에게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자신이 잘못된 건 아닐까, 그런데 왜 이렇게 조마조마하고 불안하지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 생각하며 혼자 밤을 새우기도 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자기가 불안하고 긴장될 때면, 이 감정이 맞는 걸까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채찍질한다.






엄마의 불안은 아이의 감정을 타당화하지 못하고 무시한다.



내가 왜 머리를 한대 쾅 맞는 것 같았냐면, 어제 내가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늘 소개했듯이 우리 첫째는 정말 아주 섬세하고 예민한 내면을 가졌다.

그냥 일반적이라고 생각할 때, 넘길 수 있는 일도 아이에게는 다 긴장되고 불안해지는 어떤 것이 될 수 있다.

감각적으로도 예민한 딸은 아직 너무 크고, 갑작스럽고, 어색한 모든 상황을 견디고 조절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런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부딪히며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고 있다.

그 경험이 어디 재밌고 좋기만 할까, 불편하고 힘들기도 할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딸이 "엄마, 나는 친구한테 놀자고 하기가 너무 부끄러워서 오늘도 혼자 가만히 있었어."라고 이야기할 때면,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다. 불안하다. 아이가 계속 겉돌고 있나? 뭔가 잘 못하고 있나?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야기했다.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 하다 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한번 놀자고 이야기해 봐. 목소리 크게~ 자 연습하자"

지금 생각하면 참 스스로도 어이가 없지만 그 당시에는 안 부끄러워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고, 꼭 뭔가 가르쳐야 할 것 같았다.

엄마라면 이 순간을 넘기지 않고 가르침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 같았다.

당연히.... 이걸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닌 딸은... 귀를 닫고 말을 돌렸다.


아이가 친구에게 놀자고 하고, 재밌게 놀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과 의도는 선했다.

하지만... 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생각해 보면 내 반응은 아이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불안했다. 내 불안이 아이의 감정을 더 듣고 공감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엄마의 불안은 아이를 존중하지 못하게 한다.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는 얼마나 긴장되고 불안할 수 있을까.

시끌벅적한 어린이집의 한 복판에서, 그 어수선함을 뚫고 가서, 이미 놀고 있는 친구를 향해 큰 소리로 같이 놀자고 하는 것은.. 어떤 아이에겐 매우 당연한 것이겠지만 우리 아이에겐 그렇지 않다.


그럼 나는 이 마음을 담아내 줘야 할 터였다.

누구보다 아이를 지켜보고 잘 알고 있는 엄마이기에, 네가 느끼는 감정이 그럴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타당화해줘야 할 터였다.

네 감정이 맞다고, 그럴 때 불안하고 긴장될 수 있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그래야 아이는 자기 스스로의 감정을 수용하고 인정해나갈 수 있을 거니까.

머리로는 이것이 가장 첫 번째로 중요한 것임을 안다.

용기를 내고 안 내고는 그다음의 문제였다. 그건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의 선택이니까.

그런데 엄마로서의 내 불안이 개입되는 순간, 이게 참 어렵고 복잡해진다.


사실 더 문제는 내가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너는 좀 더 나아져야 해.

너는 좀 더 목소리가 커져야 해.

너는 좀 더 용기를 내야 해.

친구한테 먼저 가서 큰 소리로 놀자고 했어야지!


불안한 내 마음은 이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아이를 향해 던져대고 있었다.


아니 좀 같이 놀자고 안 하면 어떻고, 못하면 또 어떻고,

목소리가 작으면 어떻고,

친구랑 안 놀고 혼자 놀면 어떤가.


물론 네가 같이 놀고 싶다면,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엄마가 그것을 도와줘도 될까?"물어보며 함께 대안을 이야기해 보고 연습해 보는 건 좋지만..  

아이가 "엄마, 나는 친구한테 놀자고 하기가 너무 부끄러워서 오늘도 혼자 가만히 있었어."라는 한 마디를 던졌을 뿐인데

나는 무엇이 그렇게 불안하고, 조급하고, 아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토록 많았을까.

왜 그토록 아이를 바꾸고 싶었을까.


"네가 나아지길 바란다"라는 엄마 마음이 "지금의 너는 별로야"라는 느낌으로 이어져서

네가 엄마에게조차도 너의 솔직한 감정을 꺼내놓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긴장되는 일인데 아무것도 아니라는 엄마의 말에, 스스로의 감정을 믿지 못할게 될까 염려가 되었다.


너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란 이러나저러나 "너는 너 자체로도 괜찮다"라는 걸 볼 수 있는 엄마일 테니까.

앞으로도 바뀌든 그러지 않든, 너는 네 모습 그대로 잘 성장해나갈 것이라는 걸 믿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엄마의 불안이 벗겨지면 보이는 것 : 있는 그대로의 너를 존중할게



좀 말 못 걸고,

너무 부끄러워서 실수도 할 수 있고,

친구를 잘 못 사귈 수도 있지만..


너는 그럼에도 너로서 너의 색깔로 잘 자라날 것이라는 걸 믿어주는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나도 내 안의 불안과도 마주해 본다.


그리고...

나의 불안으로 인해, 너를 가르쳐야 된다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며

생각 없이 던지는 나의 반복적인 말들이 너에게 미칠 영향도 생각해 본다.


아이가 무엇을 느끼든 지금 아이의 수준에서 그 감정은 옳다. 그럴 수 있다.

어떤 감정을 느끼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된다면 이건 엄마의 감정이다. 엄마의 불안이다.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당장 훈육하고 바꿔야 한다고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당장 바꿔야 하는 행동도 있겠지만,

아주 조금씩 녹여가며 개입해야 하는 행동도 있기 마련이다.


오늘 당장 어떤 괜찮은 조언을 주지 않아도, 아이에게 당장 뭔갈 가르치지 않아도 괜찮다.

무엇보다 자기 모습 그대로 엄마의 무한한 신뢰와 공감을 받은 아이는,

어느 순간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는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날 것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내 힘듦을 말할 때, 해결책보단 일단 내 감정이 맞다고 공감해 주길 바라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불안의 겹을 하나씩 벗겨내며,

있는 그대로의 너를 존중해 보려 노력해 본다.


어떤 걸 꼭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도,

정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엄마에게 온전히 공감받은 아이는 그 힘으로 용기를 갖고 한 발 한 발, 나아갈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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