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에필로그

2편. 마흔방학

by Happyman
마음같이 흘러가지 않는 삶 가운데에서

요즘 나는 지난 과거의 아픔을 돌이켜보면서, 불쾌하고 어려운 마음들이 다시 나의 삶을 지배하는 듯 했다. 수차례 잊어버리고 흘려보내려고 애쓰고 있으나 내 맘 같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내 의지와 다짐으로 지난 과거들을 잊으려고 노력하려고 했고 좀 더 다른 무엇으로 가능하면 좀 더 좋은 것으로 나의 생각과 삶을 채어나가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불쑥 불쑥 올라오는 생각들 때문인지 그때로 다시 돌아가 또 다시 어려운 마음과 더 큰 고통으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시편 69: 4)

참 오랜만에 잠을 설치게 되었다. 과거 나를 힘들게 했던 그들이 다시 찾아와 밤새 나를 힘들게 했다. 시간이 한 참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때 그 상황과 느꼈던 그 모든 감정이 똑같았다. 힘들게 걸어온 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그 길에 있다고 생각을 하니 그 밤이 너무 무섭고 힘이 들었다.

‘너는 그 사람을 용서 못해?’

‘그렇게 당해놓고 그들을 용서한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해? 억울하지 않아?’

답답한 것은 억울한 일들이 계속 생각이 나는데도 아직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은 자기들의 실수와 잘못을 전혀 알지지 못한체 아무렇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 있는 것만 같아 그래서 내 마음이 쓰리고 아픈 것 같았다. 문뜻 들려오는 이야기는 자기는 잘못은 없지만 내가 잘못했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 뿐이었다.

지금 나의 마음이 가난하고 슬프다. 나를 미워하는 자 때문에 빠진 이 깊은 물 가운데에서 어떻게든 나오길 원하는 마음이 큼에도 내 눈 앞에 있는 그 당당한 그 모습들이 나의 의지조차 꺾고 만다.

솔직한 모습이 나에게 필요한 듯 싶었다. 숨기고자 했던 내 마음을 다시 열어놓고 어떻게든 그것들을 해결해야만 할 듯 싶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결하지 않고 살아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을 때 참 끔찍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인생도 한참 남아 있는데 아직도 그 일들로 인해 힘들어하면 사는 것보다 죽는게 더 나으겠다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든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지극지극하게 달라 붙어있는 그것들을 버리거나 없애야만했다.

지난 14년 동안 소진과 타성의 연속이었다. 힘들고 어려워도 어떤한 계기로 다시 일어서는 일들을 수백번 아니 수천번 반복적으로 해 왔던 것 같다. 다시 일어섰을 때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왔었지만 내 마음속에 깊은 박힌 상처와 아픔들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체 살아간 나의 지난 삶이 참 후회스럽다.

그 어느날 나도 모르게 쌓여져만 갔던 것들이 넘쳐 흘러내리고 내 몸 전체를 축축히 적셔가는 줄 모른고 살던 내가 그 일이 있는 후에 정말 순식간에 터져 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터져 버린 그런 더러운 것들은 전혀 내가 손도 못 댈 정도로 끔찍했다. 준비만 되었어도 그렇게 비참하게 되지 않았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내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나는 정말 몰랐다. 왜 이리 눈치도 못 챈 채 살아왔는지 정말 내 자신이 바보스럽게 느껴진다. 나 스스로가 죽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더욱 내 마음을 쓰라리게 만든 것은 지난 삶을 돌이켜 보았을 때에 많은 이들을 통해 나에게 위험 신호들을 보냈을텐데 아니면 내 주변으로 흘러가는 그 것들이 아마 나에게 강력히 위험 신호를 수차례 보냈을텐데 나는 전혀 눈치도 못한 채 그저 나의 멋진 모습에 취해 살아왔던 것 같다.

소통이 되지 않고 욕심만 부리는 나의 모습이 제법 거북스러웠을 텐데 나는 무엇에 그리 집중하며 살아왔는지 남들의 소리들이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바쁘게 살아가는 나름의 핑계거리를 무기를 삼아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쓰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내가 조금 더 겸손하고, 싸우기 바쁜 것보다 진실된 소명을 가지고 살아왔다면 지금과 같은 삶이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을텐데라는 아쉬움과 나 또한 많은 이들과 잘 어울려 그들에게는 조금이나마 행복한 추억의 선물을 주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마구 밀려온다.

그들의 삶과 마음등을 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서로 맞지 않는 그것들로 서로가 서로를 겨누며 살아오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 기분과 관점으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그들도 나름 각자의 생각과 가치 등으로 최선을 다해왔을텐데....그들이 틀렸다고만 생각했던 내 자신과 어떻게든 그들도 그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고자 했던 이들이 왠지 안쓰럽게 생각이 든다.

문 듯 그분도 내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랬는데 아픔을 주기까지 얼마나 고민을 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아버지로서 내 눈으로 보았을 때는 한 참 어린 아이들로 보게 된다. 비록 잘못한 일을 하게 되어도 자식들을 정말 사랑하고 사랑하여서 혼을 내는 것을 수천번 머뭇거리기 마련인데 그 분도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스스로가 깨닫고 돌이키기를 바랬었는데 도리어 더 깊이 숨어버리는 자식의 모습을 보면서 그분이 얼마나 아파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 지금에서야 마음이 참 쓰라리고 아프다.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아픔과 어려움을 하나라도 주고 싶지 않았지만 이 방법 밖에는 할 방법이 없어 할 수 없이 결단을 내린 듯 하다. 그래서...그래서...그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결국 칼을 뽑으신 듯 하다. 혹여나 칼 모서리에 찔리고 큰 상처가 나지 않을까라는 노심초사의 마음이 있지만 사랑하기에,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사람을 통해 아픔이라는 가시를 나에게 건내셨다. 더 깊은 상처가 나지 않고 또한 베이지 않도록 조심히 하려는 그의 마음이 느껴지면서, 아픔으로 인해 그저 내 마음이 돌이키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제야 느껴지고 깨달아진다.


시행착오 “민감해서가 아닙니다!”

밀려오는 상처들이 아직도 아물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벗어던지고 싶은 생각이 커서 그런지 다른 내 모습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아침부터 과거의 일들을 되새기보다는, 이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 하나씩 적어가며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다. 상처는 상처일 뿐 이제는 과거처럼 살기 보다 더 멋진 미래를 꿈꾸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힘들게 했던 이들을 찾아갈 용기는 생기지 않아 늘 예전처럼 살지 말겠노라 다짐을 하며, 하나하나씩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지인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정말 오랜만에 지인들의 만남이니 참여했으면 하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마음이 내키기지가 않았고 도리어 두려움이 앞섰다. 왜냐하면 과거 힘들었을 때 당시에 함께 했던 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분 때문에 제법 상처도 아픔도 받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 두려움이 먼저 생긴 듯 하다.

그런데 내 마음 한 켠에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이제는 그 때의 모습이 아닌, 오로지 힘들어하는 모습이 아닌 툴툴 털어내고 멋지게 사는 그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여줘야겠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문 듯 생각이 든 것이 무슨 용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저녁 지인들의 모임에 결국 참석하게 되었다.

날 어떻게 대할까? 그리고 어떻게 생각을 할까? 쓸데없는 생각인 컸는지 모임 장소가 꽤 멀게만 느껴졌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의 모습이어서 그런지 왠지 반가웠다. 그래도 날 힘들게 했던 사람이었는데도 그 사람이 참 보고 싶었던 연인의 감정이 문 듯 들게 되니 제법 당황스러웠다. 하여튼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반갑게 인사를 건냈는데도 시쿵둥한 반응이었지만 변화지 않고 참 예전처럼 반응해주는 모습을 보니 그냥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다른 지인 한분이 나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몇달 동안 참 힘들었나봐요?” 대부분 나를 위로하는 분위기였는데 믿었던 그의 반응은 참 시쿵둥했다. “민감해서 그런 거야?”

사실 나는 참 민감한 사람이다. 나도 그 점을 인정한다.

어떻게 보면 매력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그냥 지나칠 일들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깊이 깊이 생각하는 편이라 그런 별명이 나에게 붙여진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힘들었던 것은 지인의 말처럼 민감해서 일어난 일은 아닌 듯 하다. 무엇보다 비록 그렇게 할지 라도 한번이라도 “많이 힘들었지?”라고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자기 의견과 생각이 곧 맞는 것처럼 나의 그 아픔과 고통으로 한 단어로 정의해버리는 그것들이 참 싫었고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갑자기 애써 버린 쓰레기들이 다시 생각나게 되어 나는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한번이라도 위로를 주었다면 그 전의 상처들이 눈 녹듯 없어질텐데 더더욱 그렇지 되지 않아 마음이 많이 아프다.

사회는 이런 것 같다. 자기의 실수는 잘 알지 못한체, 아픔을 받은 그들을 위로하기는커녕 도리어 비웃어버리는 것이 사회요,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인 듯 하다. 상처를 줄 수 있고 실수를 할 수는 있겠지만 힘들게 사는 이들을 감싸주지 못하는 이 세상이 참 싫다.

필요할 때는 달콤한 말로 다가오더니, 필요 없을 때는 누구나 할 것없이 내 던지는 이 세상이 정말 싫다.

‘내가 정말 민감해서 그런 사단을 일으켰단 말인가?’

‘나 때문에 일어난 일들인가? 왜 나의 상처만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실수들은 감추려고만 하는가?’

세상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에 의해 열심히 살아가면서, 남들의 사정은 듣지 않고 각자의 시각과 생각에 쉽게 판단하는 그 모습이 싫다. 최소한 사람을 대하는 배려와 예의가 있을텐데 그것마저 어느세인가 잊혀지고 사는 것이 참 씁쓸하기만 하다.

아직은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직까지 내 마음에는 상처와 아픔들이 일부 쌓여 있고, 흘려보내지 않는 감정들이 아직 남아있어서 까딱해서는 그런 아픔과 상처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또 다시 힘들게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어색한 삶 조차 잠시 내려놓고, 이제는 오로지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나의 꿈과 희망을 위해서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고통이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 스스로가 나름 착각을 하며 살아가는 듯 하다. 나 또한 많은 상처들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과거의 삶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을 했지만 솔직한 감정을 까놓으면 아직도 붙들고 사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정답은 잘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깊이 깊이 묻어둔 것들, 흘려보낸 모든 감정들을 다시는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가야 한다고 본다.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에 집중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산다면 그 지난 일들도 한 추억거리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제발 나중에 이것이 나를 성장시켜놓은 추억거리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마흔방학

40대 마흔 뱃지를 받은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늘 20대인 것 같은데, 30대는 어느새 훌쩍 지나가게 되었고, 앞자리가 바뀐 40대는 지금도 참 낯설기만 하다.

참 잘나가는 사람으로서 나름 나의 길을 잘 가고 있었다고 생각하였는데, 나쁜 짓하지 않고 옳은 길, 바른 길만 찾아다니며 살았던 내가 갑작스러운 아픔이 있고 난 후 나는 완전 삶이 바뀐 것 같다. 내가 바닥까지 갈지 몰랐었는데, 바닥의 아픔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깨닫고 삶을 바라보는 내 시각조차 조금이나마 누구러진 듯 하다.

20대는 멋모르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저 젊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밀어붙이는 그런 모습으로, 내가 세상을 다 바꿀 것 같은 패기로 살아왔었다. 내 앞을 막을 자 누구인가? 라고 말하듯 무서운 것도 없었고 두려운 것도 없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낯설고 어설펐지만 그래도 마냥 신나는 마음이었다. 대학교도 처음 입학해보며 캠퍼스의 낭만을 나름 즐겼고, 준비된 모습 그대로 취업 전선에 들어가 높은 경쟁률을 뚫은 초특급 직원이 되기도 해보았다. 스스로 하기보다는 위에서 시키는 그런 한계는 있었지만 그 일조차 나의 사명이라고 일컫으며 무조건 야근을 밥먹듯이 해왔던 것 같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좋았고, 늘 내 맘과 같은 친구들이 마냥 좋기만 했었다.

그렇게 살던 내가 30대, 앞자리가 바뀐 30대의 서막이 시작되었을 때는 결혼이라는 인생의 미션을 클리어하고, 나만 바라보는 처자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무거운 가장의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

그러한 책임감으로 20대와는 다르게 묵직하고, 때론 조금이나마 철이 든 것 같은 행동들과 말을 제법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몹쓸 부담감으로 나도 모르게 더러워도 참아내며, 예전과 맞지 않는 언행으로 버티고 버텨왔던 것 같다. 무엇보다 전보다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올라 책임감은 두배 이상 늘었고, 하는 일보다 동료 직원들의 업무를 봐주는 관리자의 모습으로 변신하기 시작하였다.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지만 결국 내 몸에 하나씩 증상이 들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무시무시한 스트레스가 언제부터인가 내 몸의 전부를 점령해버렸고, 큰 병원에 가서 정기적인 치료를 받을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허리부터 시작하여 간까지 내 몸 구석구석을 그 놈의 스트레스가 해 집어버렸다.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웠던지 제법 몇 년동안 나를 괴롭혔다. 어디를 가더라도 몸이 좋지 않아 빠지기 일수였고, 정중히 거절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었다.


몸이 아프면 나만 아픈 것 뿐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리 나의 아픔을 그렇게 공감해주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기 보다는 예전과 다르지 않게 무엇인가를 바랬고, 예전과 같지 않는 나의 삶에 대해 불평불만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예전과 다르게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다보니 나에게 주어진 일들이 예전과 다른 스케일로 다가왔다. 당연히 어릴때와는 다르게 못해도 잘하는 것처럼, 이해하지 못해도 충분히 이해하듯이 말하고 행동을 했던 것 같다. 정말 나같이 않는데도 불구하고, 맞지 않는 옷인데도 숨을 참아가며 억지로 입은 옷으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나의 모습이 때론 안쓰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잘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나보다. 못하면 못한다고 이야기해도 될 텐데 그때는 그저 그러한 치부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보다 몇 백배 더 뛰고 노력했었던 것 같다. 숨이 차 오르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쉬지 않고 그것들을 달성하고자 노력했었다. 그래서 더더욱 수많은 일들로 스트레스를 몇백배 더 받은 것 같고 결국 몸으로 결과물을 만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제법 많은 성과를 냈다. 어느 누구도 넘보지 못할 정도로 높게 높게 그 성과를 쌓아갔다. 그런데 그 때부터 나의 인생과 삶 가운데 탈이 났고 어긋났던 것 같다. 곧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한 상황인데도 무조건 쌓아놓기만 했던 어리섞었던 내가 참 부끄럽기만 하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그런 상황에 놓인 나에게 제법 여러번 메시지를 왔었는데도 나는 그것이 불필요하게 여길 뿐, 경고의 메시지를 그저 무시할 뿐이었다. 몸이 아픈 것이 나의 첫 번째 경고의 메시지였던 것 같다. 조금만 쉬어라라고 수천번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나는 결국 허리를 다치지 않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허리치료를 받아야만 하고, 높은 간수치 상태가 되지 않도록 정기적인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젊은 나이 30대 때 말이다.


두 번째 경고의 메시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과의 어려움이었다. 콧대 높은 내가 많은 이들은 아니지만 몇몇의 사람들과의 마찰과 어려움이 있었다. 때론 그 사람이 나를 향해 총을 겨누는 경우가 많아서 덕분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사실 나는 너무 높아져만 갔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주기 보다는 그들을 이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저 받기만 바랬런 그런 몹쓸 관리자였다.


인생을 살면서 방학이 어디겠냐만은 정말 지금까지 나는 방학없이, 제대로된 쉼이 없이 그저 쭉 지내왔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몇 번의 경고의 메시지를 주면서까지 한 숨 돌리며, 나답지 않게 살고 있는 내가 스스로 돌이키기를 바랬었는데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방학을 주어진 듯 하다.


어쩌다 마흔 방학을 지내다보니,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흔 방학을 맞이하다보니 제법 많이 당황스럽고 힘들었지만 어찌보면 남은 인생 예전과 같이 살지 않기 위한 숨고르기 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 듯 들었다.


아직은 참 어리지만 많은 일들을 하고, 유명해지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 하다. 내 삶에 참 중요한 것은 제대로된 길을 가냐 마냐, 옳은 길을 가냐 마냐는 것이었다.


높은 성과와 많은 이들의 칭찬으로 인해 사실 나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살아왔었다. 남들보다 빠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남들과 다르게 나의 페이스를 유지해나가며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길이 맞다며 남들에게 실컷 자랑을 늘어놓을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창피한 일이지만 그때는 아니,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것이 맞다는 확신과 자신이 넘쳐흘렀다.


사실 실업자의 생활이 꼭 즐겁거나 행복하지는 않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지 모른다. 그런데 고통과 아픔이 정말 많았지만 마흔 방학을 통해 얻게 된 몇 가지가 몇 달간의 고통과 아픔보다 더 큼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예전 학교를 다닐 때 방학이 되면 참 좋았다. 마냥 쉴 수 있고 놀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방학이 일년에 두 번이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방학 이후 학교생활을 보다 집중력있게, 보다 잘 보내라고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도 이른 마흔 방학을 허락된 것은 아마도 남은 인생 예전처럼 살지 말고 한번 제대로 숨고르기 한 다음 남은 인생을 보다 특별하게 살라고 하는 깊은 뜻이 있지 않나 싶다.


실업자의 생활 동안 몇 번의 죽음 결심을 하곤 했지만 사실 나에게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보다 더 많은 인생들이 남아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업자의 생활이 나에게 있어 남은 인생을 보다 보람있게 잘 마무리 할 수 있는 기회 였음을 한번 더 고백하며, 이제는 예전처럼 살기보다 좀 더 겸손하게 멋진 인생으로 펼쳐나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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