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쩌다 실업자가 되다 보니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제법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켜야하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어떻게든 일어서서 아등바등 몸부림을 치기도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힘겨웠던 실업자의 생활은 때론 가족들이, 때론 세 아이가 나의 힘이 되어 줌으로써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제1장 눈치 빠른 ‘첫째 아들’
실직을 하고 나서 절대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지 말며, 어떠한 불쌍한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수천 번 한 것 같다.“아이가 아빠가 일을 하지 않고 실직자라고 알면 매우 불안해하니까 절대 아이한테 이야기하지 말아요!” 아이들이 정말 걱정하고 두려워할까봐 조심히 말하고 행동도 하게 되었다. 며칠간은 휴가로 직장에 가지 않는다고 핑계를 댔다. 그저 아이들은 아빠랑 놀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는지 한동안은 참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안 나가는 일수가 점점 많아지다 보니 휴가 핑계되는 것도 어렵게 되고 말았다. 다른 방법으로 코로나 19로 인하여 회사에서 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게 되었다고(재택근무) 핑계를 대기 시작하였다. 참 민망한 것은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고 친구들을 만나지 않으니, 아파트 단지 내에 친구들을 사귀어 우리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은데, 자기 아빠와는 다르게 계속 집에 있는 친구의 아빠를 보게 되니 아주 쉽게 눈치를 챘을 것만 같았다. 너무 눈치도 보이고 민망하기도 해서 우리 집으로 놀러 온 아이에게 조금만 놀다 가라고 약간은 무섭고 단호하게 이야기한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어느 날 아내와 두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밖으로 외출하는 중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첫째가 “아빠 지금 일하지 않고 있는데, 왜 나랑 안 놀아 주는 거야?”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 조차도 제법 놀라웠다. 그래서 아내가 첫째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아빠 일 안 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아무렇지 않게)“응 아빠가 계속 일하러 나가지 않아서 일 그만 둔 줄 알았지?”
정말 큰일이었다. 첫째 아이가 이제 알아차려버린 것이었다. 절대 나는 아이에게 내가 지금 일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없었는데 계속 집에만 있고, 평소와 다르게 출근을 하지 않고 있으니 첫째 아이가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처음에는 너무 창피하고 민망하였다. 항상 멋진 아빠라고 보여주고 싶었는데 일 못하고, 일 안 하는 아빠로 혹여나 생각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첫째 아이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혹여나 첫째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들고 아이가 혹여나 불안해하고 슬퍼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도리어 걱정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와 솔직한 대화가 필요했다. 만약 아이가 불안 해 한다고 따뜻하게 안아줄 생각이었다.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 줄 생각도 있었다.
`일부러 첫째 아이를 차로 학원에 데려다주었다. 차로 10분 정도 거리이었기 때문에 가는 길에 내가 불편해하고 걱정했던 것들이 아들이 실제 느끼고 있는지 슬쩍 물어보았다. 그런데 내가 걱정한 만큼 그렇게 고민하고 걱정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그저 우리 첫째 아들이 섭섭하고 속상했던 것은 “나는 아빠랑 놀고 싶어서 아빠 방에 가면 아빠는 들어오지 말고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해서 정말 속상했어!”라고 이야기하면서 놀아주는 않는 아빠한테 섭섭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바보같이 나만 염려하고 걱정했던 것 같다. 그저 울 첫째 아들은 항상 집에 있는 아빠와 어떻게 신나게 놀기만 생각하는 듯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첫째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처럼 비록 어렵고 힘든 상황일지라도 지금의 일들과 상황들을 더욱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절대 아들 앞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말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특별히 어느 때보다 시간이 많음으로 아들이 원하는 만큼 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좀 더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첫째 아들과 놀기 시작하였다. 첫째 아이에게 항상 물어본다. “아빠랑 어디 놀러가고 싶어?”
제2장 귀여운 ‘둘째 아들’의 선물 “호~불어줄께요♪♫ ”
어디가 아프세요? 많이 아프신가요? 너무 아파서 울었나요? 마음도 상했나요?ㅁ
내가 호 불어줄게요! 천사도 함께 하지요! 기쁨을 여기 놓고 갈께요! 이제 웃을 일만 남았죠!
때로는 두렵나요? 많이 걱정되나요? 너무 두려워 울었나요? 마음도 상했나요?
내가 호 불어 줄께요! 천사도 함께 하지요! 기쁨을 여기 놓고 갈께요! 이제 웃을 일만 남았죠!
(동요, 호~불어 줄께요)
이른 저녁에 둘째 아들이 갑자기 유치원에 다녀오자마자 아빠 엄마를 식탁에 앉혀 놓고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러주었다.“호~불어 줄게요~♪♫”유치원에서 배운 듯 했다. 발음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제법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는 둘째 아들이 참 사랑스러웠다. 나는 오랫동안 실업자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어서 그런지 둘째 아이가 부른 그 노래 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덩달아 아내도 함께 울 게 되었는데 우리 아내도 나 때문인지 제법 많이 힘들었나보다. 우리 둘째 아들을 통해 위로를 정말 받았다. 가사 하나하나가 나를 꼭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기가 막힌 가사를 쓸 수 있을까 싶다. 어디가 아프세요? 많이 아프신가요? 너무 아파서 울었나요? 마음도 상했나요? 내가 호 불어줄게요...기쁨을 여기 놓고 갈께요 이제 웃을 일만 남았죠.....
서투른 말로 노래를 불러준 둘째 아들 덕분에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비록 당장 상황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나를 응원해주는 아들들이 있기에 죽지 말고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3장 하늘이 주신 귀한 선물
현재 장난꾸러기 아들 둘이 있다. 솔직히 딸이 있기를 원했으나 어쩌다 아들 둘의 아빠가 되었다. 현재 아들 둘이 있는지라 혹여나 딸이라고 확실하다면 어떻게든 셋째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텐데, 그것도 모르는 것이기에 셋째는 먼저부터 생각하지도 않았다. 개인적으로 살짝은 딸을 원했고, 딸만 생기면 정말 경험하지 못한 세계, 천국 같은 삶이 펼쳐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며칠 뒤 아내가 카톡을 통해 한징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 사진은 바로 “두 줄이 선명한 임신테스트기”였다. 나는 사진을 보자마자 너무 기쁜 나머지 아내를 꼭 안아주었다. “고마워 자기야!” 너무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하늘에서 주는 위로 같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키울 걱정스러운 생각보다는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는 소식에 흥분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우리 가정의 기쁨 소식을 널리 널리 전했다. 대부분의 반응은 축하한다는 반응이었고, 직접 전화를 주면서까지 셋째 아이 임신을 축하해 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몇몇의 사람들과, 나의 상황을 아는 몇몇의 지인들은 염려 섞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지금 너는 실업자인데, 어떻게 아이를 키우겠냐며 그저 걱정을 해줄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상관이 없었다. 지금 현재 일을 하지 못해서 혹여나 3째 아이를 키우는데 부담이 되고 어려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가족에 온 셋째 아이는 기쁨과 행복이었다.
4개월이 지나면 아이가 딸인지 아들인지 확인할 수가 있어서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나와 아내는 솔직히 딸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서 기도를 할 때면 딸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기도 하였다. 병원에 대기하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갑자기 담당 의사가 수술하러 갔는지 생각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딸인지 아들인지 빨리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대기하는 시간이 정말 길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담당 의사가 돌아왔고, 바로 의사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빨리 아이의 성별을 듣고 싶었지만 의사는 좀 느긋한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딸이에요 아들이에요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같이 간 아들 녀석이 여간 답답하고 궁금했는지 의사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었다. 첫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의사는 이리저리 확인하시고 나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셨다. “예쁜 딸인 것 같네요! 축하드려요!”하늘이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이 너무 기뻤다. 지금의 삶이 힘들어 어려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너무 컸었는데 다시 일어서야 하겠다는 생각과 더 책임감 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 이후로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사실, 셋째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실업자 생활을 끝마치고 새로운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또한 예상하지 못한 좋은 일들이 물밀듯 생겨나는 것을 보니 우리 가족에게 온 사랑스러운 복덩이는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