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일기

비난의 중심에 서있을 때

by Happyman
비난의 중심에 서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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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게, 더더욱 날 잘 모르는 사람에게 듣는 비판과 비방은 정말 듣기도 싫을 뿐만 아니라 그를 향한 복수심이 불타오른다.


하루하루 좋은 일들만 있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적지 않게 좋지만은 않다. 쿨하게 그냥 웃어넘길만한 그릇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그들의 이런저런 이야기에 참 많이 화가 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남들의 비판 소리를 우연하게 듣게 되면 지금 하고자 하는 일조차 포기하고 싶을 정도이다.


마흔의 길을 가게 되니 전보다 높은 자리에 있게 되었다. 예전과는 다른 자리이기 때문에 평소 느끼지 못했던 풍성함을 느끼곤 한다. 인정해주기도 하고, 높여주는 것이 솔직히 기분이 좋다.


그러나 그만큼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비판과 비방도 만만치가 않다. 어떻게 보면 나를 꼭 경계하는 듯 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냥 잊으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싶은데 꼭 내 귀에 이야기하는 사람이 꼭 있다. 나를 걱정하는 말투지만, 꼭 그렇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좋으련만 나랑 몇 번이나 마주쳤다고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다니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난 짧은 인생을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나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꼭 앞에서든 뒤에서든 비판하는 사람이 꼭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의 반응에 일일이 반응하는 내가 더 문제였다. 얼마나 억울했는지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었다.

막상 나의 억울함을 이야기를 하면, 도리어 간장종지 같은 사람 같다며 비웃는 그들의 모습에 참 당황하기도 하였다. 말하지 않으려고 해도 내 마음이 심히 답답하고 억울하였고, 막상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겨 이야기를 건네면 이해하기보다는 더욱 나를 비꼬와 보는 경향이 많이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들 뿐이었다.


이런 상황들에 물밀듯 밀려오고,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게 되었을 때 본연의 일들을 하기보다는 불필요한 것들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발전할 것인가 그리고 지금 하고자 하는 업무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하고자 하는 업무를 통해 복수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거나, 쓸데없는 감정 따위에 깊이 빠져 있게 되었다.


사실 이런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되었을 때는 도저히 마음이 잡히지 않는 게 현실이고 사실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이상한 이야기를 꺼내며 나를 비판하는데 그냥 있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이러한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되었을 때 당황스럽고 심적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장 먼저 되도록 비판의 중심에 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더더욱 어느 누구라도 비판의 중심에 서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비판의 중심의 서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하는 것이지만 도리어 내가 남을 비판의 중심에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가족들도 나와 다른데 남들은 나와 맞겠는가? 조금이나마 다를지라도 뭉개버리고 당연히 비판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한번 더 반성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아직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런 비판의 중심에 서게 만들었다면 나중에 꼭 부메랑처럼 복수의 칼날이 돌아오더라는 것이다. 섣불리 그들을 비판했다고 하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나중에 나를 비판하는 칼날로 다시 돌아온다.


비판을 받거나 비판을 하는 것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남들을 나보다 낮게 여기는 그런 성향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비판의 자리에 서 있게 되었을 때는 남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라는 생각과 함께 평소 배려 깊은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면서, 평소 비판의 자리에 서지 않도록 내가 남들보다 앞서고자 노력하는 그런 모습을 되도록 항상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내가 앞서가기보다 남들이 나를 앞세워 줄 수 있게 하며, 되도록 나보다 상대방을 높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는 욕심을 처음부터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었는지 몇몇의 사람들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급격히 흥분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나를 칭찬해주고 높여주는 사람에 대해 감사하기보다는 몇몇의 사람들 이야기에 너무 쉽게 반응을 하곤 하였다.


살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나랑 맞는 사람, 나랑 정말 맞지 않는 사람,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 늘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 등등등... 그러한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들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몇몇의 사람들 이야기가 곧 맞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지금 하고자 하는 일들이 너무 많은데 일일이 반응하여 소진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최근 트렌드인 만큼 SNS가 참 활성화되었다. SNS를 보면 그들의 성향, 취미 등을 금방 알 수가 있고 요즘 흘러가는 트렌드를 조금이나마 알 수가 있다. 예전 있었던 이야기이다. 지금도 그러한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SNS를 통해 상사를 욕하고 특정 인물을 욕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SNS를 통해 욕을 얻어먹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고 나 또한 SNS를 통해 직접 대고 특정 인물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읽어보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돌려서 작성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작성하고 나서는 그렇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도리어 그 글을 본 사람들의 반응에 한 번 더 놀랄 뿐이었다. 상대방을 비판한 것인데, 도리어 내가 비판을 받게 되는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다.


구설수(口舌數)

남과 시비하거나 남에게서 헐뜯는 말을 듣게 될 운수.


사람들은 자기가 비판받기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남들을 비판하는 사람조차도 꺼려하고 싫어한다. 나 또한 남들을 향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던지, 비판을 한다면 그 사람이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그를 멀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 사람의 비판의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세상 어떻게 보면 비판의 소리를 전혀 듣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되도록 그러한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항상 조심할 수밖에 없는 것 같고 내가 남을 비판하는 것보다 남을, 상대방을 조금 더 높여주는 그런 넉넉한 사람이 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 그리고 마흔을 걷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자세는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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