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늘 언제나 나를 깨우며 아침밥을 먹으라고 재촉하신 분이 계셨다. 좀 더 자고 싶은데 재촉하며 한 숟가락이라도 먹이고 싶어 하신 우리 어머니셨다. 얼떨결에 일어나 눈곱도 떼지 않은 채 먹는 아침밥이 제대로 넘어갈 일이 없었다. 꾸역꾸역 먹으면서 몇 숟가락 떠먹을 정도였다.
벌써 결혼한 지 11년 차된 나로서는 결혼 전까지 아침밥을 늘 챙겨주셨던 어머니가 요즘 들어 자주 생각이 든다. 음식을 차리기 위해 나보다 1시간 전부터 일어나 준비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선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추억을 뒤로한 채 오늘도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기 위해서 이른 아침에 일어난다.
나나 아내는 그리 아침밥을 먹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게 생각하지만, 우리 아이만큼은 아침밥을 챙겨줘야 하는 이상한 의무감이 든다. 현재 나는 세 아이의 아빠로 살고 있다. 100일도 안 된 막내 아이를 밤새 고생한 아내가 아침이라도 좀 더 자라는 나름의 배려 때문에 아침 식사 준비는 당연히 남편 몫이었다. 아침뿐이겠는가 저녁까지 챙겨줘야 하는 그런 역할도 함께 해야 했다.
일하는 나로서는 아침이든 저녁까지 챙겨야 하는 것이 회사 업무만큼 버거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을 절대 굶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커서 피곤하고 힘들어도 자연스럽게 주방에서 음식 준비를 하곤 한다. 음식 만드는 것에 대한 특별한 재능이 없어서 많은 음식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레시피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본 것은 있어서 그런지 몇 가지 중요한 재료들만 가지고 음식의 모양을 만들 정도다. 기본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자꾸만 내가 어릴 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신 어머니의 모습이 선하게 보였다.
음식을 만들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 30년 전의 이야기인 것 같다. 나의 어머니는 음식을 만드실 때마다 뭔가 집중하시는 모습을 보이시면서 혼잣말을 자주 하시곤 했었다. 분명 음식을 만드는 주방 안에는 어머니만 계셨는데 누군가랑 이야기하시는 듯 모습이었다. 어머니를 보는 아들의 생각은 참 오싹하고 무서워 보였다. “엄마 누구랑 이야기하시는 것에요?”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의 어머니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사실 나도 음식을 만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곤 한다. 손으로는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최근 경험한 것 중에 나를 좀 힘들게 했던 그 장면이 생각나면서, 나도 모르게 그때 그 장면에 빠져드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마도 당시 살기가 제법 많이 힘드셨나보다. 그래서 음식을 만들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중얼 중얼 하셨던 모양이다. 어찌 보면 그때 당시 어머니의 삶이 고되고 힘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고생하고자 하시는 어머니의 사랑이 지금에서야 느껴지는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하면서 감사한 마음도 함께 들게 된다.
너무 큰 사랑을 받았던 내가 아이들에게 잘 전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개구쟁이 아이들을 받은 사랑만큼 잘 주기보다 엄한 아빠가 되곤 한다. 어찌 보면 얼떨결에 아빠가 돼서 그런지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 참 서툴다. 작게나마 사랑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는지 아침저녁 아이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준다. 퇴근하기 1시간 전에는 오늘 저녁 무엇을 먹느냐고 고민이 들 정도로 이제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워졌다.
몸과 마음이 피곤한 저녁 시간은 참 매우 고되고 힘들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맛난 음식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큰지 밀려오는 피곤함을 잠시 잊은 체 음식을 만들게 된다. 음식을 피곤한 가운데 만들어도 아이들이 맛있게 먹으면 피곤함도 싹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느 날 둘째 아이 유치원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 엄마는 나랑 잘 놀아줘요!” “우리 아빠는 맛있는 음식을 잘해줘요!” 이만큼 자주 음식을 해주었는지 아이들에게는 늘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엄마 같은 아빠, 요리사 같은 아빠가 된 듯하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하는 길,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생각을 하며 퇴근을 하고 있었는데 6살 둘째 녀석이 전화가 왔다. 둘째는 “아빠 나 치킨 먹고 싶어!” “아빠 나 고기 중에서 베이컨 고기 먹고 싶어!” “아빠 나 동글동글한 소시지 먹고 싶어”라고 말하며 오늘 저녁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하는 것이었다. 둘째 녀석은 자기가 좋아하고 먹고 싶은 게 분명한 아이였다.
둘째 아이가 엄마 전화를 빌려 주문한 음식 어떻게 보면 참 귀찮은 일이지만 나도 모르게 마트에 들려 아들이 주문한 음식에 맞는 재료를 사는 것이 참 놀라웠다. 더더욱 조금은 귀찮은 일이지만 우리 아들이 먹고 싶다는 생각에 둘째 아이가 원하는 음식을 만들었다. 이러한 음식을 직접 주문할 만큼 자기 생각이 분명한 둘째 아이와 달리 첫째 아이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벌써 11살이 되었는데도 한 번도 전화로 “아빠 뭐 먹고 싶어”라고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 번쯤은 첫째 아들이 전화를 한 번이라도 할 뻔한데도 아빠의 전화 찬스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첫째 아들의 무심함에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주한아~주한이는 아빠한테 음식을 만들어 달라거나, 음식을 사다 달라고 이야기하지 않아서 아빠는 괜히 섭섭하다!” 정말 같은 엄마 배 속에서 나온 아이들인데도 왜 이리 성향이 다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예전 드라마를 보거나, 어릴 적 아버지가 항상 퇴근 무렵에 간식거리를 왜 사 오셨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