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일기

비와 바람이 휘몰아질 때, 결국 살아남는다.

by Happyman
비와 바람이 휘몰아질 때, 결국 살아남는다.
24. 비와 바람이 휘몰아질 때, 결국 살아남는다..jpg

내 집 앞마당에는 몇 가지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란다. 아파트 생활을 하다가 앞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지 몇 달째다.

아파트에서 사는 장점도 있지만 층간소음에 대한 대단한 불편함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이사를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내와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 마음껏 뛸 수 있어서였다.

남들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요즘 들어 내 마음을 좀 더 편하게 해 준다.

넓은 앞마당이 좀 휑한 것 같아서 몇 가지 식물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식물들을 키우면 여전히 죽게 만드는 이상한 능력이 있는 나로서는 식물 키우는 것조차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단지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보여주고 싶은 단순한 생각 때문에 무모한 도전인 듯싶다.

제법 돈도 많이 들었다. 심을 모종도 사야 하고, 흙을 팔 수 있는 삽 등도 몇 가지 사야만 했다. 결국 죽을게 뻔하겠지만 오로지 아이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이상한 마음 때문에 스스럼없이 평소 불필요한 것들을 생각한 여러 가지들을 샀다.

뜨거운 햇살 아래, 쉬어야 할 여유로운 주말 동안 토마토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모종들을 앞마당에 가득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참 이상하게도 심는 그날부터 어떻게 자라는지 계속 관찰하게 되었다. 그리 좋지 않은 흙 속에서 자라기는 할까? 나약해 보이는 몇 가지 모종들이 흙을 뚫고 밖으로 나오기는 할까?

어느 날은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혹여나 비로 인하여 이쁜 새끼들이 걲일새라 우산 들고 앞마당으로 가서,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도 몇 번인가 모르겠다.

아침에는 배고프지 말라며 넉넉히 물도 주고, 퇴근해서 가장 먼저 들러 얼마나 컸는지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보기 일쑤였다. 진정한 내 아이 먼저 보살피라고 아내가 핀잔을 주지만, 왜 이리 앞마당에 있는 우리 애들 먼저 살펴보게 되는 것일까?

벌써 6월이 지나간다. 그동안 비도 많이 내렸고 강렬한 햇빛이 땅을 보다 메마르게 했다. 그러한 여러 번의 고비가 지난 지금 언제부터인가 열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상추의 키가 한 뼘 이상 올라갔고 작던 고추가 제법 많이 커버렸다. 그리고 방울토마토 열매가 나기 시작하더니 앞마당에 방울방울 방울토가 가득하다.

오늘은 회식이다. 삼겹살은 주변 마트에서 사 오고, 맛있는 삼겹살을 살짝 감쌀 상추와 고추 등은 앞마당에서 받아올 예정이다. 제법 많이 따왔다. 따온 것들이 많았는지 우리 아이들이 참 신기하다고 한다.

전날 우리 식구들을 위해 직접 희생해 준 채소들 덕분에 참 넉넉히 식사 때문에 다음날 아침까지 배가 부르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채소를 보러 앞마당을 가게 되었는데 며칠 전 먹었던 상추 등이 어느새 또 자라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전에 보지 못했던 바뀐 모습, 그리고 좀 더 당당히 서 있는 그들이 내 눈에 보였다.

처음에는 죽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결국 죽지 않았다. 그저 나만 걱정할 뿐이었지 앞마당에 심어진 그 모든 것들은 살아남았고 결국 승리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 앞에 있는 많은 고비들이 더 커지지 전부터 오히려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우리들의 모습 그리고 나의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밤새 내린 비가 비록 힘들게 할지 모르나, 결국 좀 더 자랄 수 있도록 영양분을 주는 것이었음을 비가 그친 후에 알게 되니 참 안타까울 뿐이다.

밤새 휘날리게 만든 바람조차도, 결국 긴장을 늦추지 않고 넘어지지 않도록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좋은 바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바람에 휘날리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몸을 움츠리고 몸을 피해버리는 못난 나였음을 느끼게 된다.

인생을 살면서 꼭 좋은 일들만 있지 않겠지만 그리고 꼭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좋은 일 나쁜 일이 좀 더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많은 고비와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이 일 이후에도 똑같이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계속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 지친 어느 날..

앞마당에서 열심히 자라나고 있는 채소조차, 여러 가지 고비와 어려움을 감당하며 넉근히 잘 살아있는 것처럼 나조차 어려움에 대하여 한번 부딪쳐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문 듯해본다. 채소들 조차 어려움을 영양분으로 받아들이듯이 나 또한 이러한 어려움을 내가 성장하는 기회, 좀 더 다듬어지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어차피 어려움은 누구나 오는데 말이다.

그분의 위대한 섭리가 대단하다. 나는 단지 내 앞에 있는 어려움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나의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생각하셨던 그분은 이러한 비바람을 통해 나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드시려는 위대한 계획에 참 감사하고 놀랍기만 하다.

비를 맞아도 될 법도 한데 왜 나는 비를 그냥 맞기 싫어서 피하고 피하기만 하는 것일까 싶다. 비를 맞아야 깨끗해질 수 있고 비를 맞아야 내가 좀 더 새롭게 된다는 사실 잊지 말고 또 잊지 말자.

나름 미물의 채소이겠만 비와 바람을 넉넉히 맞으며 성장하려는 하는 채소들을 보면서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한 나를 좀 더 생각해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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