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룡 Dec 21. 2019

보험계리사의 모든 것

현직자가 솔직하게 말해주는 보험계리사 이야기

필자의 직업은 보험계리사이다. 사실 어디에 가서 나의 직업을 이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냥 직장인이고 회사원이다. 금융업계 종사가가 아니라면 대부분 보험계리사라고 말해도 어떤 직업인지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설계사와 헷갈려하기도 한다.


그런데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직업에 대한 연봉이나 만족도 순위를 보면 높은 순위에서 보험계리사가 자주 등장한다. 미국에서는 최고의 직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최근 신문에서는 보험계리사의 수요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보험계리사가 어떤 직업이고 준비는 어떻게 하는지, 현직자로서 느끼는 솔직한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적어보고자 한다.



보험계리사는 어떤 직업?


보험계리사는 보험상품을 개발하거나, 보험과 관련된 요율이나 금액을 수리적·통계적으로 계산하는 직업이다. 일반인에게 익숙한 직업 중에는 회계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보험계리사는 특히 보험에 특화되어 있는 보험 및 회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현재 현업에서 활동하는 보험계리사는 1,300여 명이다. 보험계리사가 가장 많이 근무하는 곳은 보험사이고, 그밖에 보험계리법인·은행·증권사·공제기관 등이 있다. 최근에는 퇴직연금제도가 시행되면서 보험사·은행·증권사 등에서 퇴직연금을 다루는 계리사도 증가하고 있다.


보험사에서 보험계리사가 주로 활동하는 직군은 상품개발·계리·리스크관리 등이다. 상품개발 직군에서는 각종 사회 현상을 분석하여 새로운 보험상품을 기획하고 적정 요율을 산출하여 상품을 출시하는 일을 한다. 계리 직군에서는 요율을 검증하고 준비금(부채)을 산출하거나 손익을 분석하는 등의 일을, 리스크관리 직군에서는 회사의 리스크를 예측 및 평가하여 영의 건전성·합리성을 측정하고 경영의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한다.


기본적으로 많은 데이터를 다루기 때문에 통계적 지식이 요구되며, 각종 통계 프로그램이나 툴을 활용하기도 한다. 많은 보험계리사들이 보험계리 업무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직군은 상품개발인데, 상품개발 직군에서는 통계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각종 사회와 경제 전반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더 중요한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보험계리사의 장점은?


기본적으로 보험사는 금융업계에 속하는 대기업이고, 보험은 금융업계에서도 급여가 높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보험계리사의 급여는 높은 편이다. 대부분의 보험사에서는 보험계리사에게 자격수당도 지급하고 있기 때문에 직장인 중에서만 보면 급여는 최상위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보험계리사는 통계적 지식을 많이 필요로 하는데, 수리적·통계적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직업이 현재로서는 많지 않다. 그렇기에 통계학이나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본인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좋은 직업이기도 하다. 실제로 필자의 주변에도 보험계리사 중에서는 통계학을 전공한 사람이 가장 많고, 통계학과나 수학과 재학생들 사이에서 보험계리사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는 중이다.


직업적인 만족도는 회사마다 크게 다르겠지만 대체로 높은 편이다. 상품개발이나 계리 업무는 많은 사람들이 보험사의 업무 중 꽃으로 여기고, 계리사들은 그러한 직업적인 프라이드를 가지고 일한다. 나름 '사'자라고 하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업계를 떠나 인정받기는 쉽지 않지만 보험업계 내에서는 이직이 수월한 편이다. 이직이 수월하다는 것은 직장에서는 개방적인 분위기로 표현되기도 한다. 부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렵지 않게 이직을 할 수 있고, 이런 선순환의 과정 속에서 대체로 계리사들이 모여 있는 부서는 소위 말하는 '꼰대 문화'가 덜하며 부서와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사람이 많이 모여 있다.


흔히 보험사는 급여가 높은 대신 각종 민원과 영업 압박에 시달리는 게 단점이라고 말한다. 보험계리사는  상대적으로 이러한 민원이나 영업 압박을 직접적으로 마주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보험계리사의 단점은?


보험계리사가 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2014년에 시험 제도가 변경되면서 시험 과목도 늘어났고, 회계사에 비해서도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필요 공부량이 결코 적지 않다. 그런데 보험계리사는 이러한 인풋 대비 아웃풋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 우선 직업적 배타성이 없다. 보험사는 일정 인원의 보험계리사를 두어야 하지만, 이 인원만 만족한다면 상품개발이나 계리 업무를 반드시 보험계리사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보험사의 상품개발팀이나 계리팀에도 보험계리사가 아닌 사람이 많기 때문에, 직업적인 배타성이 없는 만큼 자격증의 가치도 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험계리사는 같은 부서에서 보험계리사 자격증이 없지만 본인보다 훨씬 인정받는 직장 동료를 보며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보험계리사의 업무 강도 또한 대체로 높은 편이다. 많은 보험계리사들이 가고 싶어 하는 상품개발팀은 대체로 보험사 내에서 근무 강도가 가장 높은 부서 중 하나이다. 보험계리사는 본인의 업무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 업무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통계 프로그램을 익힌다거나 각종 사회나 금융에 대한 이슈를 조사하고 관심을 갖는 등 끊임없는 자기 계발도 병행되어야 하는 직업이다. 회사에 따라서는 보험계리사에 합격을 하여도 더 공부해서 이번에는 미국계리사 자격증을 따도록 직간접적인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모든 전문직의 '전문성'은 장점이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보험계리사는 이직이 자유로운 대신 다른 직군에 비해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보기는 어렵다. 어느 보험사를 가든 대부분 상품개발·계리·리스크관리의 직무를 벗어나기 힘들다. 이러한 매너리즘에 빠져 제3의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지만 회사에서는 쉽게 다른 직무로 발령을 내주지 않아 힘들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회계사·세무사·변호사·변리사 등의 다른 전문직과 비교해보면 개인사업이 어렵다는 것도 단점이다. 보험업법상 보험계리업을 영위하려면 2명 이상의 상근 보험계리사를 두어야 한다. 사실 이것보다도 대기업인 보험사가 소형 계리법인에게 특별히 일을 맡길 수요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회계사는 중형 기업의 회계감사를 위해 소형 회계법인을 이용하는 수요가 있다. 보험계리법인에서도 보험사를 상대로 컨설팅 업무를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보험사가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을 해낼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나름 '사'자로 끝나는 전문자격증을 보유했는데 어디에 가서 말해도 알아주지 못할 때 큰 자괴감을 느낄 수도 있다...



보험계리사가 되는 방법은?


보험계리사가 되려면 우선 보험개발원이 시행하는 보험계리사 1차 및 2차 시험에 합격하여야 한다. 또한 1차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토익 등의 공인 영어 시험 점수를 보유하여야 한다.


1차 시험 과목은 다음과 같다. 1차 시험은 객관식으로 출제되며 매 과목 40점 이상, 전 과목 평균 60점 이상 득점하면 합격한다.

보험계약법(상법 보험편), 보험업법 및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경제학원론

보험수학

회계원리


2차 시험 과목은 다음과 같다. 2차 시험은 논술형 및 주관식 풀이형으로 각 과목별로 60점 이상 득점하면 합격한다.

계리리스크관리

보험수리학

연금수리학

계리모형론

재무관리 및 금융공학


보험계리사 시험 과목은 양이 매우 방대하다. 1차 시험의 '보험수학'과 2차 시험의 '보험수리학'을 제외하고는 1차 시험과 2차 시험 과목이 크게 겹치는 부분이 없다. 무엇보다도 한 과목 안에도 여러 과목이 들어있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다. 예를 들어 1차 시험의 '보험수학' 안에는 보험수학 뿐만 아니라 '확률통계', '미적분학'이 포함된다. 2차 시험에서는 그 자체로도 학부 한 학기 수업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재무관리'와 '금융공학'을 한 과목으로 묶었다.


대신 준비하기 조금 수월한 점은 유예기간이 5년이라는 점이다. 1차 시험을 합격하면 5년간 2차 시험을 응시할 수 있고 과목별 부분합격이 인정된다. (반면 적성에 맞지 않는 수험생이 쉽게 시험을 털고 나가기가 어려운 것은 단점일 수도 있다.) 때문에 직장인들이 시험에 도전해볼 만하고 느낄 수도 있으며, 실제로 보험계리업무에 5년 이상 종사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제1차 시험이 면제되기 때문에 보험사에서는 입사 후 보험계리사를 준비하는 사람도 많다.


2차 시험은 공식적으로는 절대평가이지만, 2014년 시험제도 변경 후 몇 년간 합격자가 너무 적게 나오자 점차 상대평가화 되고 있다. 부분합격제도를 확대하여 과목별로 5년간의 유예기간을 두어 1차 시험 합격 후 5년 이내에 전과목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다시 1차 시험에 합격하면 최근 5년 이내 합격한 2차 시험 과목은 합격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최소합격예정인원을 두어 최종 합격자가 최소합격예정인원에 미달하면 각 과목별로 40점 이상을 득점한 사람을 최소합격예정인원의 범위에서 고득점자 순으로 합격자를 결정한다.


2014년 시험 개정 직후에는 매년 출제범위와 난이도가 달라져서 이를 예측하기 어려운 점이 수험생들에게 난제였지만, 점차 출제범위는 잡혀가는 중이다. 특히 최소합격예정인원이 도입된 이후 2018~2019년은 이전에 비해 시험 난이도가 낮아져 합격하기가 한층 수월해졌다. 그럼에도 1년 만에 1차와 2차 시험을 모두 합격하는 동차 합격은 매우 어렵다. 수험기간은 보험계리사 공부에 전념하는 수험생 기준으로 보통 2~3년, 학부 공부나 직장생활을 병행한다면 그 이상이 필요할 수 있다.


보험계리사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일정 기간의 실무 수습을 거치고 나면 금융감독원에 보험계리사로 등록된다. 이 '일정 기간의 실무 수습'은 관련 분야에서 6개월 이상 근무 및 논문을 제출하거나, 2년 이상 근무하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에 따라 선배들이 논문 작성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신입사원의 입장에서 선배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논문을 작성하기는 어려워서 2년이 경과하여 정식으로 등록되는 경우가 많다.



취업은 잘 되나요?


좋은 대학에 나온 것이 취업을 보장하는 시대가 지났듯, 자격증 하나를 가졌다고 취업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특히 보험계리사로 취업하기 어려운 점은 보험사가 수적으로 많지도 않고 기본적으로 대기업이라는 것이다. 대형 보험사에 취업하면 물론 좋겠지만 눈을 낮춰서 작은 회사에 취업하고 싶어도 눈을 낮출 곳이 별로 없다. 보험계리법인도 있으나 역시 그 수가 얼마 되지 않고, 대부분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채용 인원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계리사 시험의 최종 합격자는 결국에는 모두 취업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반드시 대형 보험사가 아니더라도 중형사와 계리법인까지 풀을 넓히면, 최소한 필자가 알고 있는 수십 명의 보험계리사 합격자는 모두 취업을 하였다. 비록 취업에서 몇 번의 탈락의 고배를 마셨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소위 말하는 스펙과 관계없이 취업에 성공였다. 관련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최종 합격을 하였다면 취업에 있어서 큰 흠이 되지는 않는다. 특히 2022년 도입될 새 국제회계기준은 IFRS17로 인해 당분간은 보험계리사의 수요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시험 범위가 방대하다 보니 1~2년 만에 최종 합격을 하기가 어려워서 1차 합격 혹은 2차 부분합격 상태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인데, 이 경우 부분합격이 취업에서 큰 우대요인이 되기는 어렵다. 많은 취준생들이 부분합격 상태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것은 자격증의 가치가 낮아서가 아니라 최종 합격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최종 합격을 하지 못하더라도 계리사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습득한 지식들이 필기시험이나 면접 등에서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격증에 너무 의존하기보다는 보험업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견문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보험계리사, 도전할까요 말까요?


필자가 보험계리사 시험에 최종 합격을 하고 나서 많은 지인들이 본인도 도전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본다. 항상 그들에게 똑같이 답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적성이다.


보험계리사 수험생이나 취업준비생들에게 입사 후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상당수가 상품개발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계산이나 검증 위주의 계리 업무보다는 기획, 마케팅 등으로 업무 스펙트럼이 넓은 상품개발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하는데, 이것은 아이러니다. 업무 스펙트럼이 넓은만큼 상품개발 직무에는 보험계리사가 아닌 사람도 많고, 실제로 계리적인 역량보다 사회 전반에 대해 넓은 시야와 이해를 가진 사람이 더욱 인정받는다. 상품개발에서 계리사의 통계적인 역량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계리사가 아닌 사람들이 쉽게 해내기 힘든 계리사의 영역은 통계적인 기법으로 각종 데이터를 산출하고 검증하는 계리 업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현업에서 어떤 일을 게 될지는 알 수 없겠지만, 통계적 역량을 발휘하는 계리 업무가 적성에 맞는 사람이라면 보험계리사는 해볼 만한 직업이라고 말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젊을 때는 빚을 내서라도 떠나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