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어택 Jan 26. 2020

그럴 때는 택시 타세요

돈으로 시간을 산다면

시간은 우리에게 돈만큼이나, 혹은 돈보다도 더욱 소중하다. 주어진 시간까지 어떤 일을 끝내기 위해, 공부를 하기 위해,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해 항상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단순히 쉬기 위해서, 혹은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휴일의 한 시간 한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해진다.


최근에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는 등, 이제는 일을 하더라도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는 '워라밸'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일을 하여 돈을 버는 것은 겉으로는 나의 노동력으로 돈을 버는 것이지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실질적으로 내가 가진 시간을 팔아 돈을 산다고 볼 수도 있다. (혹자는 일하는 것도 자아실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돈만 많다면 지금의 직장을 계속 다닐 사람은 거의 없으므로 이런 것은 논외로 한다.)


직장인들은 '워라밸'을 위해 휴가를 사용하여 휴식을 취하거나 여행을 간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휴가를 사용하면 그만큼 급여가 줄어들거나, 주어진 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면 일정 금액의 돈으로 보상해준다. 하지만 업무가 과중하거나 주변 사람에게 눈치가 보인다는 등의 이유로 휴가를 모두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런 일을 겪는 많은 직장인들은 급여가 차감되는 무급휴가라도 좋으니 휴가를 더 사용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는 결국 돈으로라도 시간을 사고 싶어 하는 심정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사결정을 내릴 때 돈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상대적으로 시간은 고려하지 않는다. 다음의 예를 생각해보자.


직장인인 A씨에게는 주말이나 휴일이 너무도 소중하다. 그런데 A씨는 주말에 회사 동료의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 결혼식장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면 2천원이 필요하고 1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가면 6천원이 필요하지만 30분이 걸린다. A씨는 지하철과 택시 중 무엇을 타고 가는 것이 합리적일까?


개인적인 선호도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단순히 비용과 시간만을 볼 때 A씨가 30분이 걸리든 1시간이 걸리든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돈이 적게 드는 지하철을 타면 된다. 그런데 A씨는 휴일이 너무도 소중해서 할 수만 있다면 급여를 줄여서라도 더 많은 휴일을 누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떨까? A씨가 최저임금(시급 8,590원)을 버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에게 30분을 절약하는 것은 4천원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물론 지하철을 타고 가는 1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등 누군가에게는 그 시간이 버려지는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논외로 하고 A씨가 택시를 탐으로써 30분의 휴식 시간을 더 번다는 것을 고려하면 지하철이 아닌 택시를 타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위의 예시와 같은 상황은 기업에서도 많이 발생한다. 어떤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시간이 많이 소요될수록 직원들에게 주어야 할 임금은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비용을 들여 일부 업무를 외부 업체에 위탁하거나 업무 효율성을 늘릴 있는 프로그램을 구입함으로써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가 크다면 기꺼이 비용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돈이 많이 든다고 택시를 타지 않는 것처럼, 대부분의 기업에서도 업무 효율화를 위해 추가적인 비용을 지출하는 것을 보기 힘들다.




영화 <인 타임>은 모든 비용이 시간으로 계산되는 세상을 다룬 SF 영화이다. 모든 인간은 팔뚝에 ‘카운트 바디 시계’가 새겨지고, 이 시간으로 사람들은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내는 등,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시간으로 계산한다. 주어진 시간을 모두 소진하고 시계가 0이 되는 순간, 그 즉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영화 <인 타임> 스틸컷


비록 이 영화는 모든 것이 시간이 되어버린 삭막한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이지만, 영화 <인 타임>과 같은 상황이라면 사람들은 어딘가에 갈 때마다 시간만을 고려하여(결국 모든 돈은 시간이므로)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다. 위의 택시와 지하철의 예시를 적용하면, 택시를 탐으로써 지하철을 타는 것보다 30분을 절약할 수 있으므로 택시가 지하철보다 30분 이상 비싸지 않다면 기본적으로 택시를 타는 것이 합리적이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하루 8시간을 일하고 24시간을 살아야 하므로 최저임금제도가 있다면 최저임금은 최소 3시간 이상이지 않을까?)




얼마 전 나는 이케아에 가서 아내가 쓸 조립형 화장대를 구입하였다. 화장대를 구입할 때까지만 해도 가구 전문점에서 파는 화장대보다 3~4만원은 저렴하여 기쁜 마음이었다. 하지만 막상 조립해보니 쉽지 않았다. 가구를 조립해본 경험이 많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완성하는 데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완성하고 나니 기쁜 한편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휴가를 하루 덜 사용하여 받는 연차보상비를 시간으로 환산해보니, 두 시간 동안 가구를 조립하는 것보다 차라리 회사에서 두 시간 일을 하여 돈을 더 벌고서 완성품을 사는 것이 이득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조립형 가구를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도 A씨와 같은 직장인이다. 직장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경험을 쌓을수록 이전보다 하고 싶은 일은 더 많이 생기는 것 같다. 하지만 평일 저녁과 주말, 그리고 공휴일... 업무 외적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작년 초에는 "그래, 올해는 주어진 휴가를 다 쓰겠어!"라고 결심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 보니 사용한 휴가는 이전과 비슷했다.


결국 더 중요한 것은 나에게 주어진 여가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택시를 타는 것은 돈 많은 사람들의 사치이거나, 여럿이서 함께 탐으로써 교통비를 절약하는 것이거나, 혹은 정말 급할 때 어쩔 수 없이 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택시를 타서 몇 천원 더 사용함으로써 나의 여가시간을 줄여준다면 가끔은 과감히 이용하려고 한다. 시간으로 돈을 사는 일은 일주일에도 5일을 하지만, 반대로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 어렵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험계리사의 모든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