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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어택 Sep 23. 2024

(1화) 이 글을 쓰는 이유

이 글을 쓰는 이유



 나에게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오늘 아침 이 일이 일어났을 때, 처음에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도 생생했던 그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곧이어 지난밤에 먹은 술이 덜 깬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역시 이것은 술에 취했다고 착각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다음으로는, 마치 몰래카메라처럼 모두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생각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어쩌면 전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도 마음 한편에서 조금은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이라도 갑자기 미연이와 다은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아빠 놀랐지?’라고 말하며 나를 놀릴 수도 있지 않을까? 장난이라고 하기엔 너무 심하고 쓸데없이 공을 많이 들인 것 같지만. 그래도 나는 화를 내지 않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들을 안아 줄 것 같다.


 소중한 것을 잃어보기 전에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고 했던가.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신이나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나를 시험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미연이와 다은이가 사라지고 나서 그들의 소중함을 뼈가 시리도록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아내 미연이와 딸 다은이와 함께라는 사실에 항상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어떻게 될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이 꿈인지 망상인지 또 다른 현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내 인생이 모두 달라져 있었던 것처럼, 어쩌면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는 다시 원래의 인생으로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반대로 또 다른 새로운 인생이 나를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이미 한 번 겪었으니 또 벌어진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번에는 무엇이 바뀔까? 내 아내는 미연이도 민주도 아닌 다른 사람일까? 아내조차 없이 독수공방인 것은 아닐까? 내 직장은 그대로일까? 교수라는 직업은 그대로더라도 전공이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 이름도 달라지고 거울 뒤편에서 나를 바라보는 얼굴도 달라져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옆에 미연이와 다은이가 있으면 좋겠지만, 만약 미연이도 민주도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내 옆에 있게 된다면? 지금 이미 내가 미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정말 혼란 속에서 제정신을 잡고 있을 수가 없지 않을까? 어떤 게 현실이고 어떤 게 기억인지 모른 채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영원히 빨려 들어가 버릴 것 같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기이한 일들을 글로 남겨 놓는다면, 내가 끝도 없는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나오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오늘 내게 일어난 일을 그 누구에게도 자세하게 털어놓지 못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명확하지 않은 것을 말하려다가 오해를 살 바에는 차라리 침묵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나조차 뭔지 알 수 없는 이 일을 누군가에게 이해시키려고 하면 나만 미친놈이 될 것만 같았다. 차라리 그나마 정제된 글자로 여기에 남기는 게 낫지 않나 싶다.


 나는 글에는 힘이 있음을 믿는다. 사람들은 목과 입에서 나온 음성보다는, 흰 배경에 검은색 선들로 써진 글자를 훨씬 더 믿는다. 길거리에 누군가 서서 세상이 멸망한다고 외친다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겠지만, 인터넷 게시판에 세상이 멸망한다는 글이 정성스럽게 쓰여 있다면 적어도 몇 명은 관심을 보인다.


 물론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일 수도 있다. 오늘 아침에 아내와 딸만 바뀌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집에 있던 패브릭 소파가 가죽 소파로 바뀌었고, 내가 타던 국산 SUV는 외제 세단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 인생의 모든 것들이 조금씩은 달라져 있었다. 만약 내 인생이 또 바뀐다면, 지금 내가 글을 써넣고 있는 이 노트북이 다른 기종으로 바뀌어 있을 수도 있고, 거기에 과연 이 글이 남아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래도 써야겠다. 이 글이 내가 미치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효과적이지는 않겠지만 그나마 가장 의미 있는 방법이 아닐까?


 이 글은 기본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남기는 기록이다. 하지만 만일 다른 사람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적어도 첫 줄부터 여기까지 읽어준 정성을 보여 주었다면,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 진실을 기록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읽어주길 바란다.


 나는 노트북에 이 글을 저장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이 글을 열어, 적어도 어제의 내 인생과 오늘의 인생이 바뀌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과 앞으로의 일을 기록해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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