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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어택 Sep 24. 2024

(2화) 7년 전 어느 날

7년 전 어느 날



 언제 일부터 기록하면 좋을까. 처음에는 이 이상한 일이 일어난 시점부터 글을 쓰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혼란 속에서 미쳐버린 내가 이 글을 읽게 될 것을 생각하면, 이전 이야기라도 중요한 사건은 남겨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굳이 7년도 넘은 일을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이날은 확실히 조금은 특별한 날이었다. 이날 나의 선택이 지금의, 아니 정확히는 인생이 바뀌기 전까지의 내 인생을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이날 일어난 기이한 일이 어쩌면 내 삶이 바뀐 것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날 저녁에 나는 지금의(원래의) 아내인 이미연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 당시에는 1년 조금 넘게 사귄 연인 사이였고, 나는 이날 미연이에게 프러포즈할 계획이었다. 그동안 나는 박사과정을 밟느라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않았지만, 미연이는 그런 나에게 조금도 불만을 품지 않았다. 미연이는 항상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주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근무하면서, 그녀와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연이와는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나는 그녀와 만나기 위해 이태원 지하철역에서 내렸다. 해가 점점 짧아지는 계절이라 어느새 하늘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지하철 출구 옆으로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빽빽하게 들어선 가게들에 불이 켜져 있었고, 저녁이 되어 가로등도 빛을 내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에 전화가 울렸다. 유상헌이었다.


 “야, 신성우. 어디 갔어? 연구실에 불 꺼져 있던데.”

 “오늘 미연이 만나기로 했는데, 왜?”

 “왜긴 왜야. 저녁이나 먹으려고 했지.”


 유상헌은 한주대학교의 동료 교수이지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이다. 나는 학부 시절 유상헌을 영화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당시 물리학과에 다니고 있었고 지금은 한주대학교 물리학과의 교수가 되었다. 천체물리학이 전공 분야라고 했는데, 물리학을 전공한다는 건 그가 정말 천재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마흔이 다 돼가도록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 해본 멍청이기도 하지만.


 “오늘 중요한 날이라고 점심 먹으면서도 말했잖아. 상헌아, 너도 좀 오늘 같은 불금에는 여자친구를 만나던지, 여자친구 없어도 나가서 다른 사람도 좀 만나고 해라, 응?”

 “소개나 시켜 주고 말해, 새끼야.”


 그런 말이 있다. 남자들 사이에서 대화에 자연스럽게 비속어가 섞여 나오면 진짜 친한 친구라고. 성인이 되고 나서 새로 만난 인간관계에서는, 자연스럽게 비속어를 구사할 정도의 친한 친구 사이로 발전하기가 어렵다. 유상헌과 나는 스물세 살에 만났지만, 어쩌다 보니 같은 학교에서 계속 공부하고 교수가 되면서 이렇게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근데 중요한 날이 뭐길래 그래? 미연씨 만난다더니, 프러포즈라도 하냐?”


 유상헌이 한 번에 정답을 말하자 나는 순간 말을 멈칫했다. 그러자 상헌이 웃으며 말했다.


 “와 맞나보네, 너 그런 걸 이 형님한테 비밀로 했다 이거냐?”


 그때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하늘은 어두워졌지만 내 시야에는 가게의 불빛, 차의 헤드라이트와 가로등 불빛들이 가득했었다. 그런데 내 눈동자 속에 비치는 가장 먼 장소에서부터 어둠이 찾아왔다. 저 멀리서부터 가로등을 비롯해 모든 불빛이 꺼지기 시작하더니 점차 어둠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몇 초 사이에 내 시야 속 모든 불빛이 다 꺼졌다. 순간 뒤를 돌아보자 내 뒤쪽으로도 어둠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늘에는 아직 완전히 지지 않은 태양의 흔적으로 희미한 빛은 남아 있었지만, 갑자기 어두워진 탓에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들고 있던 핸드폰에서는 ‘삐-’하는 소리가 들려 나는 순간 전화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도로는 정체되어 있던 터라 도로에서 사고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시야 속에서 사라졌던 불빛들이 한순간에 들어왔다. 홍채가 커져 있었던 탓에 순간 눈이 부셔 뜰 수가 없었다. 


 이 시간이 얼마나 지속된 지는 나중에 뉴스를 보고 알았는데, 15초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순간 놀라 몇 분은 족히 된 줄 알았다. 바닥에 있는 핸드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신성우, 무슨 소리야? 왜 갑자기 말이 없어?”


 나는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어…… 넌 아무 일 없었어?”


 이 일은 전국적으로 일어난 일은 아니었고, 서울 용산구와 중구 일대 반경 6km 정도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전화기 반대쪽에 있던 유상헌은 이것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이날 일어난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의 소행이라는 둥, 정부나 어떤 회사에서 비밀리에 실험을 했다는 둥 각종 음모론이 돌기도 했다.


 “미안, 아무튼…… 미연이랑 데이트 끝나고 나서 연락할게. 다음 주에 보자.”


 나는 미연이와의 약속 시간이 다가와 우선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미연이와 만나기로 한 장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징-」     


 그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또 울렸다. 이렇게 딱 한 번 울린 것은 광고성 푸시 알림이거나 문자 메시지였을 것이다. 나는 잘 오고 있냐는 미연이의 메시지일 것으로 생각하면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오빠... 잘 지내? 나 오빠랑 헤어지고 생각 많이 했어. 후회되기도 해. 내가 왜 그렇게 오빠한테 냉혹하게 했을까? 혹시...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만나서 얘기할 수 있어? 연락 기다릴게.」    

 

 문자 메시지였다. ‘오빠’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기에 나는 순간 스팸 메시지일 줄 알았다. 하지만 내용을 보고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문자를 보낸 번호도 익숙한 번호였다. 잊은 줄 알았지만 잊히지 않는 번호. 오민주의 번호였다.


 오민주와 나는 과거에 2년 넘게 사귄 사이였다. 헤어진 지도 2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민주는 배우나 모델이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만한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였다. 나와 연애할 당시 주변에서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고, 분명 그녀가 아깝다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유상헌을 비롯해서 주변 친구들이 늘 나한테 여자친구한테 잘해야겠고 장난스럽게 말했으니까. 


 한때 나는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다. 하지만 우리는 번번이 싸웠다. 가장 큰 문제는 나의 경제력이었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다는 조교로 일하면서 겨우 내 생활비를 빠듯하게 마련할 뿐이었다. 하지만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민주는 그동안의 연애에서도 ‘받는 연애’가 익숙해져 있었다. 명품에도 관심이 많고 고급스러운 식당에 드나들며 SNS에 자랑하는 것이 일상인 그녀에게 나와 같은 가난한 남자친구는 성에 차지 않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민주도 이런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다른 남자친구들과는 다른 순수한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와 만날수록 그녀의 결핍은 점점 커졌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녀와 만나면서도 늘 그녀에게 혼나는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가득해졌다. 결국 지칠 대로 지친 내가 먼저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다.


 민주에게 온 문자가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미 같은 이유로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서너 번 반복한 사이였다. 하지만 오늘은 헤어진 지 2년이나 되었다는 것이 이전과는 다른 점이었다. 이미 내 옆에는 결혼을 약속하고 싶은 다른 여자가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돌아보면, 나는 그 문자를 본 순간 잠깐은 다른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녀와 연애하던 때와 달리 이제는 나도 적당한 월급을 받고 있고, 그녀도 나도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상황이었다. 민주가 먼저 나에게 연락을 해 온 이때, 내가 적극적으로 그녀를 만나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나와 민주는 부부가 되어 평화로운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제도적으로 우리의 경제력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연애하던 시절 겪었던 갈등의 원인도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곧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싶었다. 나는 고개를 젓다가 다른 한 손에 든 쇼핑백에 시선이 멈췄다. 미연이에게 프러포즈하면서 주려고 산 목걸이가 보였다.


 잠시, 아주 잠시 내 마음이 다른 곳으로 샜는지 몰라도, 곧이어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지금 내가 누구보다 사랑하고 나를 누구보다 사랑해주는 사람은 이미연이다. 오민주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오민주가 보낸 메시지를 삭제했다. 그리고 미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미연아, 어디야? 나 이제 5분 뒤면 도착할 것 같아.”


 그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이후에도 아주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날 내가 순간적으로 고민을 했던 것은 사실이기에, 만약 내가 민주로부터 몇 년 만에 온 메시지에 답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그대로 미연이에게 가서 프러포즈했고, 이후에 민주와는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명 그랬다. 그리고 그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그 선택의 결과 나는 미연이와 결혼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딸 다은이를 낳고 7년째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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