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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s voice Oct 21. 2021

3. 서 있는 데가 바뀌면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

웹툰 <송곳> 中  -단톡방 성폭력 1.-

목포대, 경인교대, 충북대, 청주교대, 서울교대, 경희대, 서강대, 고려대, 국민대, 연세대, 항공대, 서울대... 에서 학과, 소모임, 동아리 단톡방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폐쇄적인 단톡방 특성상 내부 고발 또는 우연히 발각되지 않고서는 드러나기 어렵죠. 그렇다면 이들은 일부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입니다. 단톡방 성희롱 얘기는 오늘내일의 얘기가 아닌데, 왜 이렇게 계속 문제가 일어나는 걸까요?

여러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계층과 권력이라는 주제로 긴 썰을 풀어볼까요? ^^


https://www.yna.co.kr/view/AKR20190322133500797


사람들은 개인마다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 개별적 존재지만, 사회 전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사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기도 하죠.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그 자체로만 해도 가치 있고 소중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 소중함을 인정받으며 살지는 못합니다. 


더 가치 있다 여겨지는 사람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존재하고, 같은 사람이지만 사회 안에서는 다른 위치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만을 따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더 중요하고 더 나은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힘이 더 센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상하다고 판단하기도 쉬워집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대로, 자신이 유리한 방식대로 살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을 사회 전체의 약속으로 결정하도록 우기는 사람도 생겨나죠.  자신이 좋아하고, 익숙한 사람들만 모여 있어야 좋은 사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거나 어울리기 싫어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 안에서의 위치를 계층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계층을 결정하는 힘,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권력이라고 하지요. 다음 그림의 제목은 ‘권력의 수레바퀴*’입니다. 우리는 성별, 나이, 국적, 지역, 건강상태, 힘, 직업, 돈, 교육 수준 등 복잡한 사회적 조건들과 얽혀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조건에 따라 위치의 높낮이가 생기고, 각자의 생각과 의견이 갖는 힘의 크기도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달라집니다. 누구에게나 당연한 지식은 사실 거의 없습니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지고, 의미도 다르게 해석된다는 거죠. 

<권력의 수레바퀴>

그래서 특정 영역에서 높은 계층에 있다는 것은 그보다 낮은 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유리한 기준과 방식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고학력자는 저학력자에게, 한국인들은 외국인(특히 백인이 아닌)들에게 자기 기준에 당연한 지식이 너희에게도 당연(해야) 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죠. 그만큼 그 사람의 힘, 곧 권력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 자신의 역할과 행동, 자신의 판단과 결정을 자신이 느끼는 대로,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권력을 갖고 있는 기득권자일 수 있습니다. 내게 익숙한 가치를 갖고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면, 자연스럽게 동의되는 기준과 감정대로 살 때 비난받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거나 그 상황이 맘에 걸리지 않았다면 내가 그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특권은 나의 의도, 노력, 인식과 별개로 펼쳐지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조건이자 경험이기 때문에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차별은 중첩적이고 복합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다양한 삶의 조건을 가진 사람들을 상상하고 배우지 않으면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며 차별하게 되고, 차별받았다 말하는 이들을 '별 것도 아닌 걸 예민해'하는 예민 보스로 취급하게 됩니다. 아! '예전보다는 나아진 거 아닌가' 도 패키지로 따라붙네요. 

영어를 잘 못하면 부끄러워하고 잘하기 위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겪어보지 않은 '상황'에 대해 상상하고 배우면 될 텐데, 자신이 생각하는 '당연한’ ‘일반적인’ ‘보편’이 기준이라고 확신하고 당연하다 여길 수록 누군가의 목소리는 계속 사회에서 사라집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해석된 내용이 사회 전체의 보편적인 기준과 약속이 되기 때문이죠. 그러니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사회의 기대나 요구에 잘 부응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자신의 의지나 인식과 상관없이 그 기준으로 끊임없이 평가받고, 심지어 그렇게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을 때 비난받기도 하기 때문에 배제와 혐오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경계가 수많은 분류기준과 범주에 따라 다층적으로 존재하는 만큼, 한 개인은 동시에 여러 차원의 집단에 속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차별을 받는 집단에 속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특권을 누리는 집단에 속해서 차별을 자행하기도 합니다. 차별을 받는 여러 집단에 속해 있어서 한꺼번에 복합적으로 차별받는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차별의 다중성을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가 지금도 반드시 차별을 하고, 동시에 차별을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니 누군가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비난하는 순간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 


✔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비난받는가?

✔ 나는 이 사람을 어떤 근거로 비난하는가?

✔ 그 근거는 누구에게나 '정상'적인 근거인가?


단톡방 얘기 다음 글에서 마저 풀어볼게요. 


한국성폭력상담소 발간 <성폭력사건지원 나침반을 찾아라>(2008) 11p를 응용하여 재구성한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발간 <민주시민 가이드북> 72p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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