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 성폭력 2.
특권은 다층적으로 중첩되어 발생하고,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소유하는 권력이기에 자신에게 편하고, 당연하고, 익숙한 가치와 지식에 대해 '정말 그런가?' 하고 의문을 던지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차별한다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차별받았다 말하는 사람은 존재합니다.
-대부분은 차별을 하지 않으려 하지만, 차별이 무엇인지 몰라서 차별할 때가 많습니다.
-차별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왜 그것이 차별이 될 수 있는지 모르면 어떤 말과 행동으로든 불쑥 튀어나오게 됩니다.
-내가 차별당하는 것 같지 않으니 무관심한 게 편하겠지만, 반드시 나 또한 어디선가 차별의 대상이 됩니다.
https://www.ytn.co.kr/_ln/0103_201702121820070159
특히 성을 기준으로 하는 차별은 오랜 인류 역사 속에서 남성을 일반, 정상, 주류 집단으로, 여성을 특수, 비주류 집단으로 규정해왔습니다(모든 여성은 지금도 약자다! 얘기가 아닙니다. '오랜 인류 역사 속에서'를 눈여겨 봐주세요. ) 사회 내 약자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 역할과 그 내용을 자신이 느끼는 대로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개인 간 다름과 상관없이 사회적 조건에 의해 규정된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되기도 쉽고요.
편견과 고정관념은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기득권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규정한 기준을 의미합니다. 성과 관련하여 주류 집단이었던 남성들이 여성을 한 개인으로 보기보다 전통적인 남성이 원하는 의미를 부여해서 바라보는 것을 대상화라고 하고, 개인의 특성과 상관없이 모든 여성 집단 개개인이 다 동일한 것처럼 해석하고 기준을 정하는 것을 일반화라고 합니다. 주류 집단의 대상화, 그리고 일반화를 통해 만들어진 기준에서 벗어난 비주류 집단에 대해서는 멸시와 배제, 혐오가 가해지게 됩니다.
같은 교양 수업을 듣는, 같이 세미나를 준비하던, 새로 입학한 새내기 여학생... 등을 대상으로 목포대, 경인교대, 충북대, 청주교대, 서울교대, 경희대, 서강대, 고려대, 국민대, 연세대, 항공대, 서울대... 일부 남학생들이 나눈 단톡방 대화 중 일부, 그리고 그를 고발한 자보입니다. 지하철에서 여성들을 도촬한 사진, 과 OT에서 술에 취한 여학우의 신체 일부 사진, 동의되지 않은 성관계 촬영물을 찍어 공유한 단톡방도 있습니다. 가해 학생들은 “이거 알려지면 사망이다”, “우리 쓰레기다” 등 자신들의 성희롱적 발언들이 공개되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대화도 나누었고, (문제가 될 내용을) 다 같이 삭제하자”라고 말하거나 실제로 주기적으로 증거인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행동임을 알면서도 단톡방 성희롱은 공공연히 이루어졌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왜 이런 일은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요?
간단히 말하자면 이러한 행동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대학 내 단톡방에서의 성폭력은 남성성 확보를 위해 호모소셜한 집단으로서의 남성들이 함께 여성을 혐오하는 모습입니다. 이성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자연스럽게 느끼고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남성됨과 인간성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혐오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는 다른 남성들과 동일시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거죠. 여성의 대상화와 일반화, 그리고 여성혐오를 사용한 남성성의 증명, 남성 집단으로의 편입과 승인이 이 단톡방에서 발생합니다.
여성이 여전히 약자냐! 여성혐오는커녕 남자들이 요새는 더 힘들다... 란 얘기는 여기에 맞지 않습니다. 당연히 모든 남자가 다 이렇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랫동안' 약자였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력을 취하고자 할 때 여성혐오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효과적 전략이 됩니다. 사회 내 권력 형성에 대한 이해, 타인에 대한 존중, 스몰토킹 및 관계 형성하는 방식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여성에 대해 ‘함께 여성혐오를 하는 방식’으로 '센 남자'임을 증명하던 방식을 그대로 쓰는 이들이 있는 거죠.
이렇게 여성혐오 방식을 사용한 동일시를 통해 남성됨을 획득한다는 의미는 동조하지 않을 때 그 집단 내에서 남성성 증명도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기집애'같다는 말은 남학생들에게 최대의 모욕으로 해석되고, 성희롱에 동조하지 않는 남성은 (씹선비같다...)는 말을 듣는 사회에서, 옳지 않다 말하고 공론화하는 남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가부장제 안에서 사회 전체에 통용되던 이러한 해석은 아무리 많이 변했다 하더라도 사회 전체의 기준, 즉 일반적 상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요? 많이 변하지 않았냐고요?? 2차 가해가 뭔지 아실까요?? 남학우들이 여학우들을 ‘이런 식’으로 대상화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성폭력이 아닌 좋아서 하는 장난, 순간의 실수, 단순한 관계 형성용 스몰토크, 심하게는 사생활의 영역으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분노하고 문제시하는 집단은 비난과 조롱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피해 여학우에 대해서는 예민하다, 진지충이다. 평상시 행실이 문제였다
-고발에 동참하는 단톡방 내 남학생에 대해서는 비겁하다, 남자답지 못하다
-사회에서는 이를 문제 삼는 것 자체를 '그 정도면 됐다'. '사생활 침해 아니냐'
라는 식으로 비난합니다. 가해를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지지하며 보호하는 거죠. 법제도와 대학 당국은 최대한 사건과 가해자 징계를 축소하거나 피해자 비난 논리를 조장하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음담패설은 성적 희롱으로 판단할 수 없다’ ‘피해자가 인지하지 못한 상태의 행동은 성희롱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사회적 주류와 그들의 인식에 의해 해석되기에 단톡방 성폭력은 ‘어디에 있을까’ 싶지만 ‘어디에나 있는’ 범죄가 됩니다. 여성을 성적으로 품평하고 다른 남성에게 공공연히 전시하는 행위가 ‘센 남자’, ‘강한 남자’ 임을 입증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왜곡된 남성 문화가 여전히 사회의 주류임을 보여주는 거죠. 그러니 대학을 벗어난 사회생활로 들어가도 이 문제는 똑같이 존재합니다.
https://www.ytn.co.kr/_ln/0103_201708140921338951
개인은 자신의 행동, 감정, 해석에 대해 타인이 어떤 반응과 평가를 보여주는가에 의해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독특하고 자유로운 나 I도 있지만, 타인의 가치관/태도에 의해 결정된 나인 me도 있다는 거죠. 미드가 발전시켜온 상징적 상호작용론에서 자아는 내게 '의미 있는 타자(중요한 의미를 던져주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반응과 평가를 더 강력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특성에 상관없이 사회 주류적 성 고정관념에 의해 규정되고 규범이 영향을 미칠수록 일종의 사회적 규범, 압박으로 작용하게 되겠죠.
남성이 소속한 집단의 다른 구성원과 사회 전반적인 문화와 풍토가 여성에 대한 대상화, 일반화를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일수록 여성혐오는 강력한 '일반화된 타자(타인이 기대하는 자신의 모습)'가 될 겁니다. 심지어 여성혐오를 하지 않는 남성을 비웃거나 남자 취급하지 않는 사회라면 여성혐오는 남성이라면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할 행동으로까지 지위를 부여받게 됩니다. 여성들에게는 물론, 그를 원치 않는 남성 개인에게도 정신적인 압박, 즉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리게 되는 요인이 되겠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는 개인적 대처, 개인 간 관계 속 대처, 집단과 조직 내 대처, 사회와 제도에 대한 대처 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적어도 그런 유머(아닌 유머)에 동참하지 않기, 관계형성을 위한 스몰토킹용 질문 연습하기 같은 아주 작은 대처부터 사회제도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까지 다양할 수 있겠죠.
이걸로 변할 수 있을까 늘 저도 고민합니다. 하지만 그 한 명 한 명의 목소리 또한 성차별을 자행하는 집단에게 '의미있는 타자'일테니 작은 반응들이 결국 우리가 속한 집단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성에 의한 차별만이 대상은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 함께 모든 종류의 ‘차별’과 싸워봅시다.
* 커버 이미지; [출처] <성폭력예방교육웹툰 시리즈1 - 단톡방 성희롱>편|작성자 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