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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Dec 18. 2016

광치기해변_그날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올레길 1코스의 종착지와 2코스 시작점인 광치기해변의 아름다운 우수

올레 1코스의 성산 일출봉을 생략하고 그다음 해변을 걷기로 했다. 일출봉을 바라보며 걷거나 그 중간의 해안길이 주는 분위기를 잘 알고 있기도 한 때문이다. 사실은 게으름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광치기 해변의 느낌을 빨리 보고 싶었다.

일출봉이 끝나는 지점의 바닷가를 나는 꽤나 좋아한다. 사람들은 일출봉을 주로 오르지만 그 옆면에 있는 일제시대의 동굴과 그 앞의 해녀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이 더 현실적이다. 그리고는 광치기해변까지 이어지는 해변은 내가 제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해변 중 하나다. 


바닷가로 내려가는 도중 만난 주택가의 모습이 예스러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미 상당 부분 상업적으로 변해버린 모습이지만 그래도 바닷가 직전까지의 짧은 골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골목이 끝나는 어귀, 무언가 꿈틀거리며 도로를 건너고 있다. 어느 수조에서 탈출했는지 혹은 옮기는 도중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문어 한 마리가 바다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은 일출봉을 주로 오르지만 그 옆면에 있는 일제시대의 동굴과 그 앞의 해녀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이 더 현실적이다

횟집에서 가격으로 따지자면 2만 원을 할 터인데 녀석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이다. 마음 같아서는 들어다 바다에 넣어주고 싶다. 야속하지만 그냥 놔두기로 했다.  그 녀석의 운명을 인정하기로 했다. 마음속으로 응원해본다. 살아남아라.


그리고는 해녀들이 테왁에 무언가를 잔뜩 채우고는 선착장으로 헤엄쳐 나오는 모습을 본다. 얼마 전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모습이기도 하거니와 해녀 삼촌들이 보여주는 생동감은 자연이 줄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이 있다. 바다가 빛에 반사하며 은빛으로 물드는 성산 앞바다에 그들은 또 다른 삶을 불어넣고 있다.


해녀들의 물질이 신기한 듯 관광객들이 바닷가 코 앞에 까지 다가가 구경을 하고 있다. 그리고는 뒤따라 나온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들을 신기한 듯 쳐다본다. 해녀 삼촌 한분이 문어를 꺼내 들고는 그들에게 흥정을 시도한다. 한 마리에 2만 원이란다. 관광객 한 명이 머뭇거리더니 살 기세다. 문어를 사서 어쩌려는지 모르겠으나 사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식당에 가져가서 삶아달라고 하려는지 자세히 모르겠다. 먹거리에 대한 중국 관광객들의 의지는 사뭇 강렬하다.

해녀들이 순간적으로 보여준 역동적인 성산의 느낌을 받으며 광치기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상쾌한 마음 가득이다. 바다도 좋지만 하늘이 바다와 잘 어울리는 시간들. 그 시간에 여유롭게 걷고 있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중간쯤 걸으며 상점이 사라지고 모래언덕과 광치기 해안의 묘안 모습이 시작된다. 해초들의 푸르름이 뒤덮고 있는 모습이 코앞에 다가선다. 이 느낌은 무어라 말하기 힘든 심정이다. 어렵고 슬프다. 이 자리에 또 하나의 어려움이 덥혀져 있다.


이곳 성산포 터진목 해안가 모래밭 일대는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이 지역 무고한 양민들이 군인과 경찰에 끌려와 무참히 학살된 곳입니다. 어미의 등에 업힌 젖먹이에서부터 80넘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총과 칼과 죽창에 찔려 비명에 가신 곳입니다. 아비가 아들을, 아들이 부모를,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젖먹이가 엄마를 찾던 울부짖음이 아직도 귓전을 때립니다. 이제 이곳을 지나시는 모든 이들께서 추모의 뜻으로 바치는 꽃잎을 이 돌에 새겨서 4백여 영령들이 영면하심을 빕니다.
2121년 11월 5일 
성산읍 4.3 사건 희생자 유족회 회원 일동


터진목.

제주 어딜 가나 4.3의 흔적을 지울 수 없지만 이곳은 올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한다. 이 때문인지 나는 육지에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가능하면 이곳에 데려오려 한다. 바닷가가 특이하고 이쁜 모습도 있지만 이곳 터진목 해안가의 4.3 학살터를 함께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제주를 풍광의 아름다움만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보게 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여러 번 올 때마다 아픈 마음을 다잡으며 그때를 생각해본다. 과연 그날의 인생 마지막을 보내는 그분들은 매일같이 바라보던 성산일출봉과 광치기해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무러 이유 없이 트럭에 끌려와서 해안가에 풀어져 놓았을 때의 어리둥절함과 그 속에서 쓰러져가는 죽음의 순간을 무슨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아름다운 일출봉과 광치기는 그 들의 눈 속에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아마 이 같은 심정은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닌 이유로 프랑스 작가가 써놓은 글은 올 때마다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한다.  우선은 강중훈 시인의 시를 되새기며 읽어본다.


 '섬의 우수'

                                                       강중훈

여기 가을 햇살이
예순 두해 전 일들을 기억하는 그 햇살이
그때 피덩이 던 할아비의 주름진 앞이마와
죽은 자의 등에 업혀 목숨건진
수수깡 같은 노파의 잔등위로 무진장 쏟아지네
거북이 등짝 같은 눈을 가진 무리들이 바라보네
성산포 '앞바르 터진목'
바다 물살 파랗게 질려
아직도 파들파들 떨고 있는데
숨비기나무 줄기 끝에
철 지난 꽃잎 몇 조각
핏빛 태양 속으로 목숨 걸 듯 숨어드는데
섬의 우수 들불처럼 번지는데
성산포 4.3희쟁자위령제단 위로
뉘 집 혼백 인양 바다갈매기 하얗게 사라지네.


다시 지루한 듯 하지만 다음은 강중훈 시인의  시 옆에 새겨진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의 글이다. 이 역시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아픈 글이기에 담아본다.


섬에는 우수가 있다.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마음 갑갑하게 만드는 이유다. 오늘날 제주에는 달콤함과 떫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 섬의 우수, 우리는 동쪽 끝 성산 일출봉 즉, '새벽 바위'라 불리는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바위는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한 검은 절벽이다. 한국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첫 해돋이의 마술적인 광경의 축제에 참석하러 오는 곳이 바로 여기다. 
1948년 9월 25일(음력)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하여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치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 냉전의 가장 삭막한 한 대목이 펼쳐진 곳이 여기 일출봉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1948년 4월 3일에 제주에서 군대와 경찰이 양민학살(인구의 10분의 1)을 자행한 진부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 잔인한 전쟁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매일 아침 휴가를 맞은 여행객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위 너머로 솟는 일출을 보러 이 바위를 오른다. 숙청 때 아버지 할압지 할머니 삼촌들을 잃은 시인 강중훈 씨조차 시간의 흐름에 굴복했다. 그가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 그의 시 한 편 한 편이 그 9월 25일의 끔찍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 - 그걸 뛰어넘을 필요성도 알고 있다.

유럽 최대 잡지 <GEO> 2009년 3월호 게재된 '제주 기행문'중에서

J.M.G  Le Clezio-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프랑스) 
그 배경 너머에 자리 잡을 제주의 역사, 혹은 인간의 오점이 바닷물에 씻기지 않기를 바란다


광치기 해변에 대한 우수는 강중훈 시인의 시나 클레지오의 기행문처럼 바라본 성산 일출봉에서 뿜어져 나온다. 나 역시 이곳에 올 때마다 느끼는 이 아련함 혹은 가슴 아픔을 빗장으로 잠가 버리기에는 너무 아프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자꾸 이곳을 찾게 된다. 그 아픔을 알면서도 그 우수를 느끼는 나 자신이 때로는 우울해하면서도 결코 벗어나지 못할 역사의 흔적을 잊기 않기로 하고자 찾는다.

과연 그날은 그 삼촌, 하르방, 할망 들은 이 해변과 일출봉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곳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찾아보기 힘든 바닷가의 모습과 일출봉이라는 배경 사진이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그 배경 너머에 자리 잡을 제주의 역사, 혹은 인간의 오점이 바닷물에 씻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짙은 색을 모래밭 깊숙이, 바닷속 깊숙이 담아 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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