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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y 05. 2016

봄날, 잔설의 한라산을 바라보며

한라산은 제주의 모든 것이다. 한라산을 제외하고 제주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과 같다. 

어릴 적 이야기처럼 안고 없는 찐빵이고 오아시스 없는 사막인 셈이다.


물론 바다와 오름과 곶자왈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한라산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라산에 오르기 위해 제주를 찾는다. 여정의 어려움을 상관 않고 그곳에 오르기 위해 애쓴다.


한라산에 오르는 길은 어렵고 힘들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제주의 모습은 새로운 환희와 각오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한라산은 오르는 것보다 바라봄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준다.


 한라산을 제외하고 제주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과 같다


바람이 아직도 차고 볕이 따스한 봄날 오름을 가기 위해 동쪽을 향해 나섰다. 무심코 볕이 따스한 느낌이 들어 양지가 어울리는 가장 유명한 용눈이오름을 올랐다.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장소이지만 그곳에서 멀리 산정에 눈이 남아있는 한라산을 보는 느낌은 사뭇 이국적인 감성과 이곳이 제주라는 점을 동시에 제공한다.

용눈이 오름을 걷는 내내 눈길이 한라산을 벗어나지 않는다. 밝은 하늘 탓도 있겠지만 산 위에 덮인 눈과 아직은 약간 차가운 바람, 그리고 따스한 햇볕, 멀리 보이는 바다의 푸르름을 한꺼번에 맞는 이 상황은 제주도에서만 가능한 모습 이리라. 


한라산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저 산의 모습을 더 크게 볼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용눈이 오름을 다 내려와서 주차장에 주저앉아 급히 지도를 검색한다. 욕심 같아서야 산을 오르고 싶지만 시간은 물론 내 체력으로는 안될말인지라 역시 바라보는 것으로 목표를 정했다. 산 밑의 다른 오름을 오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한라산 국립공원 내 오름은 입산이 통제되어있는 터라 근처의 가까운 오름을 찾기 시작했다.


오후 시간은 재깍재깍 지나고 있는데 어디를 갈지 결정은 못하고... 


산 위에 덮인 눈과 아직은 약간 차가운 바람, 그리고 따스한 햇볕, 멀리 보이는 바다의 푸르름을 한꺼번에 맞는 이 상황은 제주도에서만 가능한 모습 이리라

못내 지나만 가다 들리지 못한 붉은오름을 가기로 했다. 붉은오름 자연휴양림이 있는 교래 지역이라면 비교적 가까이 한라산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차를 몰고 나섰다.


차를 몰고 한라산 쪽으로 달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산이 나를 불러 가는듯한 착각을 하도록 만든다. 탁 트인 도로 맞은편 한라 산정은 그 이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단하나만의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주는 기쁨을 오늘은 잠깐만 만끽하리라... 봄이 제대로 오기 전에 맞을 수 있는 순간의 모습인 것을 알고 있다.


모든 길은 한라산으로 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중간에 마사회에서 운영하는 목장지에 잠시 들러 탁 트인 목초지와 산을 다시 한번 감상하는 기회도 갖는다. 여러모로 배경 사진으로는 좋은 상황이다. 한라산이 조금씩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오름>

사려니 숲길과 옆에 붙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다닐 수 있을 듯 하지만 정작 사려니 숲길 쪽에서는 오르는 길이 막혀있다. 붉은오름 입구에서 무리해서 살짝 벗어나면 오를 수 있지만 정상적인 오름의 입구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휴양림으로 들어가야 한다.


오름에 덮인 흙이 유난히 붉어 붉은오름이라고 한단다. 제주에 붉은오름이라고 붙인 오름이 몇 개나 있는 건지. 섭지코지도 붉은 오름이더만... 입구는 삼나무와 해송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중턱 이후에는 낙엽수는 자연림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정상 부근의 능선도 나무로 인해 분화구를 확인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 옆에 있는 물찻오름이 언제 개방되는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길은 한라산으로 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처구니없게 이곳은 입장료가 있다. 눈물을 머금고 돈을 지불한다. 주차료 명목이다. 이곳에 주차료를 왜 받는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제주에서 오름이 입장료를 받는 일이 조금은 낯설다. 산굼부리, 거문오름 등을 제외하고는 오름에 입장료라니... 암튼 낯선 상황이지만 내가 온 목적인 한라산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몇천 원은 투자하기로 한다.


공교롭게 붉은오름은 삼나무 숲으로 가득 채워진 오름이다. 오르는 내내 경치를 구경할 수 없다. 에구구 오르는 길목에 잠깐이라도 경치를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의 기대는 저 멀리로 사라지고 등에는 급히 발길을 옮기느라 땀만 적시고 숨만 헐떡이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이곳 오름은 정상가는 길은 물론 정상에서도 나무가 우거져있다. 빽빽함이 다른 오름보다 더한 듯 싶다. 정상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다행이다. 이곳 전망대마저 없었으면 이 허탈함을 어찌할꼬...

갑자기 전망대에 오르자 나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잠깐의 시간이지만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만큼 한라산과 그 주변의 무수한 오름들은 환하게 나의 얼굴을 향해 자신들의 모습을 뽐내고 있다.

무엇하나 버리고 싶지 않은 풍경. 뒤돌아본 동남쪽의 오름과 풍력발전기는 색다른 봄철의 기운을 몰아주고 있다. 하늘이 맑으면 붉은오름을 꼭 올 일은 아니어도 어디서나 한라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곳에서는 제주의 모든 것이 한라산으로 통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다시 한번 보고 또본 풍경을 눈에 넣고 가슴에 새기려 자꾸자꾸 빙빙 돌려 제자리에서 하늘과 산을 보고 있다. 볼 때마다 새로운 이 기분은 자연이 주는 선물 이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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