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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Oct 30. 2017

어두워진 제주시의 환영

2014년 11월 1일 제주시 해안도로_올레 17코스

얼마 안 남은 오후 시간이지만 이호 태우에서 한참을 보냈다. 가지고 온 음료와 빵을 먹으며 의미 없는 바다를 계속 응시한다.


저 바다는 나에게 무슨 메시지라도 주려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안은채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아무런 의미 없이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도 꽤나 의미 있는 일이다. 


해변을 지나니 도심의 상업적인 냄새가 강하게 밀려온다. 회집이 난무하는 식당가등 전형적인 항구와 바닷가를 지나고 이윽고 커다란 항구에 다 달았다. 항구 도달에 앞서 추억의 거리로 명명된 곳을 지났다. 옛날의 모습을 여기저기 조형물로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이래서 사람들이 찾을까 싶다. 도두항이 눈앞에 나타난다. 일단의 무리들이 저녁 낚시를 하기 위해 낚싯배 2척에 나눠 탔다. 참 좋겠다. 즐거운 시간일 게 분명하다. 배안에서 고기를 잡으며 아마도 한잔 하지 않을까. 저 배들이 항구를 나가는 광경을 오름을 오르면서 계속해서 쳐다본다. 항구에서 배가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노을이 지는 저녁 바다를 함께 바라보면서... 이 오름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는지 가물가물하다. 기억을 더듬으니 도두봉이란다. 제주시 내 가장 가까운 오름 중 하나일 테니 항구와 공항과 제주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을게다 사라봉도 있긴 하지만. 그곳보다는 조금은 더 관광지에 가깝다고나 할까. 아니나 다를까 정상에는 일단의 관광객들이 계속 오르고 있다. 아랫쪽에 관광객들의 버스가 계속해서 관광객들을 이곳에 올리고 있었다.

 항구에서 배가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시간이 촉박하니 제주시내 전경을 볼 수 있는 장소로 이곳을 택했으리라. 거리도 멀지 않고 공항에서도 가까우니 비행기 시간이 남았을 때 한번 와서 볼 수 있는 시간때우기에는 좋은 장소임에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바로 공항 옆이다. 공항에서 내리며 보던 그 동네가 이곳이구나. 나는 공항과 비행기를 보고 있지만 저 비행기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나를 보고 있겠구나 싶다. 


오름을 내려왔다. 이제는 전형적인 해안가 관광지의 연속이다. 계속되는 식당과 호텔이 용두암까지 계속이다. 아마 예전 제주의 관광지는 이곳이 중심이었을게다. 지금도 제주시내를 관광한다면 이곳이 우선적인 일순위가 되리라. 바닷가를 보며 식사를 하는 관광지라... 그곳을 주야장창 걷고 있다. 지루하면서도 나쁘지는 않은 길이다.

나는 공항과 비행기를 보고 있지만 저 비행기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나를 보고 있겠구나 싶다

자전거라도 있으면 좋겠다. 어둠이 내린 해안 아스팔트 보도를 걷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컴컴하고 볼 것이 없을뿐더러 컴컴한 바다는 공포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한쪽은 화려한 식당과 호텔의 향연이고 한쪽은 어둠과 간간히 비추는 조명의 대비가 극명하다.

어둠 속의 제주 해안가는 사람의 심정을 극단으로 치닫게 할 수 있다. 두려움과 부러움 그리고 그리움도 역시. 그래도 이 길을 계속 걷기로 했다. 지금이 아니면 결코 해볼 수 없는 경험이라는 것을 알기에 부지런히 걷는다. 관광객들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나를 보며 참 이상하다 할 게다. 배낭을 메고 왜 이 한밤중에 해안도로를 걷는 걸까.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바위는 바위일 쁀이다. 용두암 너머로 보이는 라마다호텔과 다른 숙박시설들의 화려암이 오히려 더 눈에 띈다


오늘 걷기로 한 거리가 있었고 시작을 너무나 늦게 했다. 그 덕에 한밤은 아니어도 저녁 거리를 걷는다. 용두암까지 5km를 걸었던 기억이다. 간간히 불빛이 비춰주는 캄캄한 현무암 바위는 나름의 기괴함과 변덕스러움도 함께 가지고 있다. 도착해보니 용두암이다. 저녁이라 불빛에 비쳐 아마 조금은 더 실감이 나겠지만 그래도 바위는 바위일 쁀이다. 용두암 너머로 보이는 라마다호텔과 다른 숙박시설들의 화려암이 오히려 더 눈에 띈다. 저 배경이 없었더라면 볼품이 없지 않았을까. 용두암에서 한참 동안 중국 관광객들 사이를 헤매다가 나왔다.


용연을 지나 정상적인 길거리로 나오니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딘지 헷갈렸다. 목적지인 동문시장을 향해 걷다가 버스를 탔다. 오늘은 여기까지. 더 이상의 아스팔트는 걷고 싶지 않다. 오후 늦게 시작한 17코스를 마치고 집으로 주린배를 움켜쥐고 온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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