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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26. 2017

올레길의 숨겨진 비경 2코스

2015년 5월 23일

올레길2코스를 향했다. 아마도 중간에 코스를 건너뛴 일은 영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찜찜한 마음이 마음 한 구석에 늘 남아있었다.2코스는 시작점부터 어지간히 길을 구불구불하게 이어놓았을는지 살짝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출발도 하기 전에 1코스의 연속이거나 아류이거나 할 것이라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2코스는 시작점부터 어지간히 길을 구불구불하게 이어놓았을는지 살짝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어차피 1코스에는 성산 일출봉이라는 어찌할 수 없는 큰 봉우리가 있어 그만큼 강한 인상을 줄 것이 없는 2코스라면 1코스와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 있었다. 거리나 시간을 보니 다행히 다른 코스보다 조금은 짧은 편이다. 시간도 그 때문에 1시간 정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에 도무지 일어날 엄두가 안 난다. 차가 있고 길이가 그다지 길지 않으니 천천히 가자는 생각으로 느지막이 나갔다. 결국 출발시간은 오후 2시가 돼서야 출발점을 떠 날 수 있었다. 광치기 해변. 이래저래 3-4번 이상 찾아온 장소가 되고 말았다. 1코스의 종착점이라 찾아온 것도 그렇거니와 아들 녀석과 일출봉을 보고 이곳까지 왔던 기억이 난다. 암튼 익히 출발점이 익숙한 터라 해변을 잠시 보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유채꽃이 화려하거나 흐드러지지 않은 채 일부만 피어있다. 올레길은 곧이어 안쪽에 깊숙이 들어온 바닷물들을 향해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여기는 바다라고 하기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민물 호수도 아니고 참으로 깊숙이 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있는 것을 알겠다.


갑자기 어릴 적 인천에서 자라던 생각이 났다. 인천은 호수 간만의 차가 심해 물이 들어올 경우는 일반 항구 안쪽보다 깊숙이 들어온다. 그 후 썰물이 되면 갯벌이 훤히 드러나 보이며 배가 갯벌 바닥에 박혀 새로운 바닷물을 기다리는 경우를 종종 본 적이 있었다. 어느덧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둘씩 매립이 되더니 지금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육지가 되어버린 곳들이다. 아직도 그곳의 이름은 배다리라고 한다. 배다 다니는 길이자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다는 점에서 배다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는 바다라고 하기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민물 호수도 아니고 참으로 깊숙이 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있는 것을 알겠다

암튼 그런 느낌으로 개발의 기치를 높이 든다면 당연히 메운후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가는 길에 양식장이 늘어져 있다.


한참 안쪽으로 들어와 만을 따라 걷는 길은 나무로 데크를 만들어 산책을 위한 잘 준비된 길을 만들어 놓았다. 멀리 일출봉을 배경으로 바다와 함께 잔잔하게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갑자기 나의 선입견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사람은 결코 상황에 대해 예단을 하면 안 된다. 있는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찬찬히 살펴보면 얼마나 세심한 곳에 기쁨과 좋은 점이 있는지를 잘 알면서도 늘 내 멋대로 평가하고 섣부른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이 길은 뭐라고 설명하기에 참 난해하다. 바닷가를 따라 걷는 길이되 해안이 아닌 결국 호수를 생각나게 한다. 길은 결국 식산봉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식산봉을 한 바퀴 돌아 나오더니 다시 오조리를 향해 방향을 내주었다. 물이 잔잔해 모든 자그마한 봉우리가 물이 비친다.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곳인 만큼 새들이 곳곳에서 날아오른다. 참 좋은 곳이구나. 절로 감탄이 나온다.


오조리를 돌아 나온 길은 이제 고산의 번화가(?)를 거쳐 한참을 걷게 한다. 곧 끝나겠거니 하는 나의 바람은 마을과 번화가를 지나 계속해서 도로를 걷는 길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 이 길은 별로다. 특별히 걸으려 하지 않아도 될 듯한 길들이 의외로 길다. 곧 끝나겠거니 하는 내 희망사항과는 사뭇 다르다. 길 너머로 비교적 높은 오름이 하나 보인다. 저곳을 필시 오르겠구먼...


아니나 다를까. 길은 구비구비로 돌아 어느덧 오름의 초입까지 나를 이끌었다. 꽤나 허덕대며 숲 속을 향해 난 길을 걸으니 오름의 정상에 닿았다. 동쪽의 오름은 일단 정상에 오르면 그 어려움을 다 잊게 해준다. 보이는 풍광이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 준다.


<대수산봉>
흐르는 물을 사이에 둔 고성리의 두 개의 오름 중 큰 오름인 '큰물뫼'다. 정상에 서면 1코스 시흥부터 광치기까지 아름다운 제주 동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섭지코지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

동쪽의 오름은 일단 정상에 오르면 그 어려움을 다 잊게 해준다. 보이는 풍광이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 준다

이제 대수산봉의 설명에서 나온 대로 섭지코지를 비롯해 멀리 광치기 해변과 일출봉을 한눈에 바라보면서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간식이랄 것도 없이 초코바 하나를 먹었다. 신기하게 배가 고프지 않다. 물만 자꾸 들이켠다.

이제 2코스의 후반기다. 한적한 귤밭이 있는 마을들과 이쁘게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로 만들어진 한적한 마을을 지나면서 제주가 주는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나도 이런 곳에서 여유롭게 살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하는 단순한 희망보다 그런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안타까움이 더 먼저 다가온다. 이 좋은 날씨에 왜 이리 슬프지...


오조리를 떠나 길을 걸으며 대수산봉을 지나고 구비구비 기억나지 않는 민가와 거리를 걸으며 목적지로 향했다. 중간에 마지막 남은 이정표라면 뭐니 뭐니 해도 혼인지다.

나도 이런 곳에서 여유롭게 살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하는 단순한 희망보다 그런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안타까움이 더 먼저 다가온다

제주 3성이 벽랑 3 공주를 맞아 결혼식을 올렸다는 전설적인 장소. 외부 문물의 유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해양교류의 현장인 셈이다.


그리고는 목적지인 온평포구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기에는 너무나 지치게 되나 보다. 그래서인지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도 거의 들지 않는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출발지 근처의 사진은 많지만 목적지 부근의 사진은 별로 없다. 이미 충분한 사진을 찍었고 몸도 지쳐있기에 사진의 양이 현격한 차이가 난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건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들국화를 이렇게 많이 본 적이 있던가. 혼인지이기 때문에 이렇게 가꾸었겠지만 그래도 보기에 좋다. 괜스레 젊은 시절을 되새기게 하는 설렘이라고나 할까. 좋은 제주의 날씨와 분위기가 너무 좋아 오히려 슬프기까지 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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