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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28. 2017

곶자왈_뙤약볕을 피해 숲 속을 걷다

올레 14-1코스 2015년 7 얼 25일

아침부터 무더위를 느낀다. 열대야가 있다더니 어젯밤도 더웠는데 아침에 되자 그랑 상관없이 하늘이 높고 파랗다.  추자도를 예정했으나 일요일 오후 전에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라 부득이 섬을 포기했다. 


메시지로 날 좋고 바람 부는 날에는 무조건 바다로 가야 한단다. 지인은 산으로 방향을 잡아놓고는... 이런 날씨에는 차귀도가 최고라는 조언과 함께 다녀오란다.

이번에야 말로 제주도의 곶자왈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 위해 저지, 청수, 신평 3군데의 곶자왈을 다 지날 수 있는 14-1코스를 가기로 했다

섬은 이미 한번 캔슬을 놓은 상태인지라 미지의 땅 곶자왈을 가기로 했다. 사실 11코스인 신평 곶자왈은 다녀온 적이 있지만 그때는 11월인지라 스산함만을 느낀 순간들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제주도의 곶자왈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 위해 저지, 청수, 신평 3군데의 곶자왈을 다 지날 수 있는 14-1코스를 가기로 했다.


이곳의 출발은 저지리. 가기도 지랄스러운 장소인 데다 도착지점도 인향동이라는 무릉2리다. 도착지에서의 교통도 아주 더러운 곳이다. 오지에서 오지로 가는 발걸음을 택하기로 하고 짐을 싸고 숙소를 나섰다. 중간에 가게나 다른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얼음물 3개와 김밥 2줄을 마련했다.

오늘 날씨를 보니 얼음물 2개 가지고는 택도 없을 분위기다. 어렵게 어렵게 버스를 타고 저지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30분. 이런 날 올레길을 그것도 이처럼 교통이 불편한 곳을 걷는 올레꾼들은 없으리라는 확신으로 저지마을회관을 나섰다. 이 저지도 이미 상당히 낯익은 장소가 되어 버렸다. 벌써 4번 이상 왔으니 다른 어떤 장소보다 많이 와버린 꼴이다.

특별한 경치라고는 찾아볼 일 없이 잔잔한 나무와 잡목 그리고 가끔가다 귤밭과  밭들이 눈에 띈다

리본을 따라 구비구비 마을길을 들어섰다. 특별한 경치라고는 찾아볼 일 없이 잔잔한 나무와 잡목 그리고 가끔가다 귤밭과  밭들이 눈에 띈다. 하루 종일 이 나무와 숲 말고는 볼 일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걸을 때는 어떨는지 몰라도 걷고 나서 그때를  회상하노라면 나무와 숲을 본 기억 외에는 특별한 기억이 잘 남지 않는다. 순간순간을 기록하는 그런 실시간 장치가 눈에 있으면 좋겠다. 구글 글라스가 그 같은 역할을 해주려나...


한참을 걷다 보니 말도 곳곳에 보이고 마을 목장도 눈에 띈다. 팻말이 익숙지 못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 잃기 딱 좋다는 느낌이 드는 곳 몇 곳이 눈에 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감짝 놀랄 만큼 길이 잘 닦여있다. 임도이거나 말들이 다니는 길들이어서 그런지 도대체 숲 속이라는 오지의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숲 속으로난 좋은 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두어 시간을 구비구비 걷다 보니 문도리오름에 오른다. 이마저 없었다면 오늘의 걸음걸이는 참으로 지루하기 그지없었으리라. 정상에서 보는 청수곶자왈과 반대편 숲 속은 제주가 마치 아마존의 원시림이라도 되는 양 그지없이 푸르른 느낌의 출렁이는 숲이 펼쳐진다. 다만 청수곶자왈과 반대편은 나무와 숲의 느낌이 전혀 다르다.

정상에서 보는 청수곶자왈과 반대편 숲 속은 제주가 마치 아마존의 원시림이라도 되는 양 그지없이 푸르른 느낌의 출렁이는 숲이 펼쳐진다

한참을 지나가니 어디선가 인기척이 난다. 그와 더불어 자동차 소리도 들린다. 내려가는 올레길을 누가 막아놨다. 막은 담장을 넘어 서니 오설록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와 가족 나들이에 여념이 없다. 저 사람들은 이 뒤편에 상상할 수도 없는 숲이 놓여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난 사실 녹차밭이라는 것에 큰 감흥도 없거니와 제대로 보지도 않았지만 역시 바로 앞에서 봐도 그다지 이쁘다는 느낌은 안 든다.  정리가 잘 돼있다는 느낌 정도. 암튼 관광객들은 사직 찍고 아이스크림 먹고 기념품으로 녹차 하나씩을 사고 화장품 이니스프리를 들르느라 정신들이 없다. 그 한가운데 땀 뻘뻘 흘리는 올레꾼이 나타났으니 그들에게는 상당히 비현실적인 모습인 셈이다. 나 역시 하늘하늘한 치마와 남자 친구와 함께 뾰족구두를 신고 찾은 관광객들이 여간 낯설지 않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나 관광객'이라는 모습이 그들에게 진하게 느껴진다. 그들에게나 제주사람들에게도 나 역시 관광객이지만 '조금은 빈한 관광객' 수준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화장실에 들러 시원하게 세수를 하고 편안하게 의자에 쉬면서 휴식시간을 가지고 나니 다시 힘이 솟는다. 이제는 이단계 발걸음이다. 남은 거리는 16.5km 중 6km 정도. 영어교육도시 방향으로 가다가 반대편으로 트니 역시 느낌 좋은 또 다른 숲이 나온다. 이곳 역시 걷기에 좋은 길들이다. 말 타고 다니면 아주 좋을 것 같다. 숲들을 여러 개 건너는 중간중간 햇볕에 노출될 때에는 터무니없이 더운 날씨라는 사실을 알겠다.


그들에게나 제주사람들에게도 나 역시 관광객이지만 '조금은 빈한 관광객' 수준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오늘 바다를 택하지 않은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숲 속을 걸어도 이 정도로 더운데 바닷가에서 뙤약볕을 쬐며 걸었다가는 일사병 걸려 쓰러지기 딱 좋은 날씨다. 문제는 3병 가지고 간 물도 바닥이 난 데다가 이미 얼음이 다 녹아버려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는다. 숲이라는 데가 쉬기가 만만치 않아 열심히 걸었더니 도착한 시간이 5시다. 헉 이 길을 4시간 30분만에 걸었다니. 나도 미쳤다.  안내도에 보니 적어도 6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되어있던데. 쉴틈도 없이 걸었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코스에서 정자에 앉아 10여분 이상 쉬었다.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한 친구에게 연락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배터리가 별로 없어 끄고 걷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내 행적을 묻는 전화와 메시지가 왔다. 급기야 메시지를 하지 나와의 약속을 멀리하고 하귀에서 저녁을 먹고 있단다. 오늘은 곽지의 지인이 하는 식당에 가기로 했는데... 한껏 욕을 먹고는 의기소침한 상태로 노형오거리로 돌아가야 한다.

구름이 많이 끼어있었어 노을이 약하게 보인다. 지금은 노을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더 중요한 시점이다

문제는 돌아가는 교통편이다. 이곳에서의 버스가 금방 떠나버려 1시간 30분 이상이 지나야 버스가 올 모양이다. 이런 황당한 경우. 앞에 올레꾼 한 명이 있다. 그가 택시를 부를 테니 반반씩 나누어 내자고 제안한다. 결국 5천 원을 내고 모슬포항까지 왔다. 750번 버스를 타고 제주시내로 오는데 곽지로 가는 중이라는 연락이 온다. 아뿔싸 결국 곽지에 가긴 간다는 말이구나 싶다. 부랴부랴 갈길을 찾아보니 이미 버스는 제주시내에 다 도착. 다시 택시를 타고 곽지를 향했다. 애구 이게 무슨 짓인고...


도착하자 그 녀석도 막 도착했단다. 저녁을 먹기 전 해지는 노을을 보기에는 곽지 바다가 나쁘지 않을 터 잠시 바다에 갔다. 오늘은 노을이 별로다. 구름이 많이 끼어있었어 노을이 약하게 보인다. 지금은 노을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더 중요한 시점이다.

식당으로 들어와 한참을 히히덕거리다 다시 바다로 나섰다. 깜깜한 바다에 돗자리 하나 펴고 3명이 둘러앉아 가지고 온 소주를 마신다. 간단한 안주를 사러 간 사이 바닷가에서 낚시 중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하얀색으로 커다란 멜을 3마리 잡았다고 한다. 가까이 가서 보니 멸치 종류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다란 녀석들이다. 근데 얘들을 잡아서 뭐하려는 거지. 회를 떠먹으려나...


한밤중이 되기 전 반달의 하늘과 별들을 바라보다 기분 좋은 한밤중을 보낸 후 시내로 돌아온다. 힘들고 기분 좋은 하루다. 내 제주의 주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즐겁다. 


다음 주에는 어디를 갈까. 강정에 가볼까. 강정대 행진을 봐야겠다. 강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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