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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Feb 14. 2018

제주 2018, 그해 겨울 1_이사 가는 날

시골에서 시골로 이사 가는 날... 일어난 일과 그 겨울의 시작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하루라도 빨리 이사하기를 소원한다. 3일을 떠돌며 집으로 돌아간 날 다시 한번 수도관이 터져버리자 난 내가 사는 집에 대한 죄꼼만큼이나마 남아있던 정을 모두 들어냈다.


그 뜻을 알아챘는지 부탁해놓은 목사 사모한테 연락이 왔다. 집을 빌려주지 않고 간간히 사용하던 농가주택을 가진 교회 신도에게 졸라 나에게 빌려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더니 들어주겠다는 답을 들었단다. 단, 1년만 사는 조건이었다.  당일날 퇴근을 조금 앞당겨 마침 제주에 내려와 있던 주인장 할머니를 방문해 온갖 친절함과 상냥함으로 설득을 완성했다. 다행히 서울 사는 사람이라 맺고 끊는 것이 도시스럽다. 다음날 오전 계약서를 직접 사서 년세를 모두 치르고 나니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운 느낌이다.

3일을 떠돌며 집으로 돌아간 날 다시 한번 수도관이 터져버리자 난 내가 사는 집에 대한 죄꼼만큼이나마 남아있던 정을 모두 들어냈다

이사를 가기 위한 일주일은 번개처럼 빨리도 지났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붙잡혀서 도무지 짐을 싼다거나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으니 시간의 흐름을 체크할 일이 없다.

그 사이 출근하는 시간들 중간중간 눈 쌓인 한라산을 바라보며 얼마 전 올랐던 백록담의 기억을 되새긴다. 당분간 아무리 눈이 내리고 좋은 날씨가 찾아와도 눈 쌓인 한라산과 백록담의 기억이 남아있는 한 그 기억을 넘을 수 있는 기대감을 갖기란 힘들어 보였다. 멀리서 한라산을 바라보며 '참 좋겠군'하며 약간의 실소를 내뱉을 일만 남아있었다.


이사를 앞두고 아내가 서울서 내려왔다. 짐도 옮기고 자신도 그동안 했던 일들을 정리하면서 한동안 쉬다 가겠다는 당찬 포부를 안고 남편의 방을 찾았다. 이사 전날 바리바리 짐을 싸다가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길을 나섰다. 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아내가 나오지 않는다. 


"뭔 행동이 이리 굼뚬신가."궁금해 가보니 어둠 속 계단 맨 밑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아내는 어이가 없어하면서도 울음 섞인 목소리로 계단을 헛디뎌 넘어졌다며 일어나질 못하고 있다. 손을 부여잡고 일으켜 세워준 후에도 발이 너무 아파 걸을 수가 없단다.

멀리서 한라산을 바라보며 '참 좋겠군'하며 약간의 실소를 내뱉을 일만 남아있었다

밤늦도록 짐 싸는 일들이 늘어나지만 아무런 준비가 없던 관계로 모든 짐이 밖으로 꺼내져 있기만 할 뿐 포장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 


날이 밝았어도 어제 절실히 필요한 노동력 하나를 잃었다. 우선 병원이 급하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아보기로 한다. 친절한 한의사의 설명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찜찜하다. 한의사 역시 혹시 모르니 옆에 있는 병원에 가서 X-ray를 찍어 보라고 권한다. 한참을 망설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힘든 몸을 이끌고 2층 병원의 계단을 어렵게 오른다. 

아내는 어제는 혈압약을 타러 왔는데 오늘은 절뚝거리며 들어가자니 멋쩍다며 미소 아닌 미소를 보인다. 결과가 참담하다. 발 옆쪽에 골절이 있단다. 깁스를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 필름을 보니 아주 오래전 내가 넘어지면서 일어났던 일과 동일하다. 발목이 접질리면서 왼발의 바깥쪽에 붙어있는 뼈에 골절이 발생한 것이다. 갑자기 그 당시의 고통이 밀려온다. 걸으면 걸을수록 근육의 움직임으로 뼈가 점점 더 멀어지니 가능하면 움직이면 안 되는 상황이다. 접질려서 발생하는 흔한 결과다. 무지하게 아플 텐데... 제대로 걷지도 못할 판인데 이를 어쩌나 싶다. 


의사가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더니 바로 시내의 정형외과를 방문하라고 한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있는 힘껏 엑셀레이터를 밟고 속도를 낸다. 40여분의 시간이 남았다. 병원 문 닫기 직전인 12시 30분경에 병원에 도착한다. 얼떨결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앞으로 약 두 달간 불편한 생활을 감내해야 한다. 창졸지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오늘이 이사 가는 날 아이 었던가? 짐은 내팽개쳐 놓은 채 시내를 동분서주하고 있다. 조금 풀린 날씨가 그래도 쌀쌀하다. 아무리 따스해도 겨울은 겨울이다.

아내는 어제는 혈압약을 타러 왔는데 오늘은 절뚝거리며 들어가자니 멋쩍다며 미소 아닌 미소를 보인다. 결과가 참담하다

다행히 친구가 저녁 5시가 다되어 트럭을 몰고 집을 방문했다. 모든 짐을 주저 없이 밖으로 옮긴 그는 자신의 차에 내 모든 짐을 싣는다. 이 집에 처음 찾아든 게 일 년 하고 조금 넘은 시간이다. 불과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짐이 터무니없이 많이 늘었다. 세상에나 내가 가진 욕심이 이토록 많을 줄은 스스로도 몰랐다. 하나둘씩 쌓아놓기 시작한 가재도구들이 쌓였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게 이토록 많은 물건을 필요로 한다는 게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욕심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그 짧은 사이에 많은 욕심을 부리며 살았다. 불과 일 년 만에 이사 가는 일이라 다행이다. 그 욕심의 중간을 보게 되었으니.


제주에 처음 내려오던 날이 생각난다. 아내가 생활에 필요한 옷가지와 생활용품 등을 포함해 두 박스를 택배로 보내기는 했지만 제주에 내려오는 당일 나에게는 자그마한 출장용 트렁크 하나가 가진 짐의 전부였다. 캐리어중 비즈니스 맨들이 가지고 다니는 서류와 최소한의 물건만 챙기는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 도착해 아무것도 없는 빈방에서 제주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4번의 짧은 이사를 거치며 지금까지의 짐을 쌓아온 셈이다. 그러나 구좌의 평대로 옮겨오기 전까지 내가 가진 짐은 승용차로 나르면 될 일이었다. 그러던 짐이 이제 1톤 트럭 한 대를 가득 채웠다. 살다 보니 필요한 책상과 테이블이 들어오고 기타 박스 등등이 쌓이다 보니 짐이 늘었다. 그와 함께 내 욕심도 늘고 집착도 늘었다. 반성의 나날이 실효를 거둘 것인가. 이 끝없는 미련의 업보를 어찌할 것인가. 

살다 보니 필요한 책상과 테이블이 들어오고 기타 박스 등등이 쌓이다 보니 짐이 늘었다. 그와 함께 내 욕심도 늘고 집착도 늘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왔다. 눈보라 치는 최악의 순간들을 헤매며 앞으로 얼마나 더 닥칠지 모를 이번 겨울의 추위를 앞두고 도망치듯 빠르게 근거지를 옮겼다. 집에서 바라다 보이는 다랑쉬오름과 넓은 당근밭이 그리워질 테지만 마지막 순간들의 악몽들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나와버린 겨울의 평대는 미련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알릴 것이다.

새로운 집은 소담한 옛적 제주 농가주택이다. 혹시라도 살아보고픈 농가주택에 자리를 잡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방 2개에 거실이 있고 무엇보다 집주인이 쓰던 집기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혼자서 쓰기에는 넓은 지역이다. 아내가 자주 내려와 머물겠지만 이전의 생활과는 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 아담한 마당이 있다. 불 지피는 화덕도 있고 텃밭으로 쓸 공간도 있다.  돌담과 방풍의 효과가 남아있는 담장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아... 바다가 가깝구나.

다행히 집이 포근히 아래쪽에 담겨 있으니 이곳에 바로 시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비로소 귀촌을 할 느낌이 든다. 새로운 생활의 시작이다

이사 온 느낌을 실감한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문을 열고 큰 길로 나서면 바로 버스 정류장이다. 버스 타고 시내로 나가기는 편해졌다. 마트까지 걸어가는 일이 조금 멀어지기는 했어도 교통이 편리해서 다행이다. 옆에 리사무소가 있다. 해가 어두워지면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밭 한가운데 집이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 집이 포근히 아래쪽에 담겨 있으니 이곳에 바로 시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비로소 귀촌을 할 느낌이 든다. 새로운 생활의 시작이다.


이사온 훈 몇일이 지나지 않아 제주에는 눈이 내린다. 전국이 추위에 떨고 있는지라 제주도 추위가 가시지 않는다. 거기에 눈발이 거세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이사가서 다행이듯 눈 오는날 걱정이 덜어지니 시골에 들어와 사는 느낌이 든다. 눈 내리는 겨울은 또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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