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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l 21. 2018

계절의 흔적

여름을 맞으며 6월을 기억하는 주변의  모습

더위가 온몸을 휘감아 숨쉬기도 힘겹다. 싱그럽던 계절 생각을 한다. 지난 6월이다.


계절이 흔적을 남긴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음을 아는지 재빨리 다른 모습을 준비하며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살며시 소중한 시간들을 던져놓는다.


찌뿌듯한 하늘을 가진 날들이 며칠 지속되지 않는다. 벌써 장마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오늘부터 비가 내린다고 하니 며칠이나 지속되고 나면 숨 막히는 여름으로 직행할 것이다. 그전에 이 계절은 휴지기에 가깝다.

사무실 담장에 그리고 건물과 대문을 연결하는 전선줄을 기대어 수많은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었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유난히 많은 포도송이가 매달려 있다. 또 얼마나 많은 노인분들이 지나가다 이 포도를 따 먹고 가려나. 


이 사무실에 근무한지도 2년이 되어가는데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포도를 따먹고 지나는 분들이 눈에 띄게 많다는 것을 알아챘다. 일부는 들어와서 이거 먹어도 되냐고 묻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지나다 말고 혹시 사무실에서 문을 벌컥 열고 호통이라도 칠까 두려운지 서둘러 한두 알 바쁘게 알맹이를 따 먹는다. 반가운 듯하면서도 주변을 경계하는 표정이다. 물론 송이를 가볍게 꺾어가는 분들도 보인다.


그런 포도송이가 예년에 비해 배 이상은 늘어났다. 아직 짙은 포도색을 띠지 않았기에 관심을 갖지 못했는데 어느새 마당 한가운데 주렁주렁. 아~ 주렁주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로구나.

세화에서 송당으로 넘어가는 길. 송당 근처의 밭에 차들이 간간히 멈춰서있다. 압도할만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시선을 멈추기에는 충분한 모습이 보인다. 메밀밭. 아직 가을이 되기에는 먼 시간인데 벌써 끝물이다. 메밀 2 모작이 가능하다 하니 이런 이유 이리라. 암튼 곡식으로서 메밀보다 꽃밭의 메밀은 애잔함과 화려함을 함께 주는 꼭 들러야 할 장소이기도 하다. 


가을이 기다려진다.  오밀조밀한 꽃이 잎새와 얽혀 푸르름과 함께 던지는 하얀 느낌은 잔잔함과 더불어 바람 불지 않는 달 밝은 밤을 기대하기에 충분하지 않던가. 



잔잔한 제주 밤바다는 그리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나를 부르듯  불빛 환히 비추고 그 너머의 무엇이 기다리듯 하다. 바다가 잔잔한 덕에 두려움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그 바다가 전부는 아닐 테지만 여름의 무더위를 앞에 두고 덮지도 춥지도 않은 딱 좋은 바다는 색조차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바다와 어울리는 적절한 어두움을 보여준다. 마냥 새까맣기만 하면 두려움이 모든 것을 잡아먹을 것이다.

아는 지인이 평대 앞바다에 가게를 열었다. 2층을 국수가게로 열렸는데 일 층 담벼락에 바닷속으로 잠수하는 해녀 모습의 벽화를 그린다. 이틀에 걸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완성 아닌 완성된 바다의 모습을 담은 벽화를 본다. 나머지 벽이 모두 벽화처럼 파란색이었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바다가 저렇게 파랗게 기쁨으로 올 것 같지는 앉다. 어쩌면 훨씬 더 무서울 테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으랴. 당사자들은 잘 알 테지... 그림 속 바다는 여전히 낭만 덩어리다. 사실과의 연관성은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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