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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y 14. 2016

마음이 먼저 멈추는 바다_곽지과물해변

해변의 경계를 넘어 뒤편의 바다를 서성이다

바다는 매일 태양을 숨긴다.


다음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어떤 경우에도 아랑곳 않고 태양을 품고는 그 빛을 스스로 감싼다. 

그러면 곧 어둠.

그 어둠이 닿기 전 마지막 흥을 돋우며 붉은 얼굴을 한다.


공교롭게도 그 광경을 매일 볼 수는 없다. 또 매일 사람 마음 바뀌듯 다른 모습을 띤다.


곽지 바다는 스스로 자신이 어떤 바다인지 잘 알고 있다.


비록 인간들이 많이 찾아든다는 이유로 해변 한가운데를 파내고 해수풀장을 만드느니 어쩌느니 해도 태양은 또다시 바다의 품에 여지없이 잠긴다.


그 전에 비양도를 출렁이는 물결에 담거나 이쁜 해변과 아기자기한 바위를 내보이며 자신이 단순한 모래 해변이 아니라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그곳이 곽지과물해변이 보이는 앙탈진 얼굴이다.

곽지과물해변에서 살짝 금성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해변이 끝나는 곳 바다에 연해 돌집들이 이어진다. 무심코 들어간 집에서 집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강아지가 나를 보고는 경계태세다.


"알았다 알았어. 그만 나가마"


녀석은 내가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까지 문밖으로 나와 자신의 소임을 끝까지 다한다.


녀석에게 내몰려 살며시 용천수가 터져나오는 바닷가를 찾았다. 용천수와 바닷물이 만나는 자리라 그런가 해초가 낀 바위가 가득이다. 해초의 색과 모양이 광치기 해변을 생각나게 한다. 바위에 낀 초록색 해초는 언제 보아도 다분히 그로테스크하다.


그 사이를 뚫고 낚시를 하는 중년의 남자가 뒷모습을 내게 들켰다. 나에게 뒷모습이 들킨다한들 달라질 것이야 그는 멋쩍은 듯 나를 의식한다. 아닌가?



바다가 조금씩 해를 부르는 시간. 마지막 용틀임을 위해 상기된 얼굴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 바람에 어디선가 누워있던 깃발이 펄럭인다. 마치 성황당 깃발 모양 무언가를 부르는 느낌이다. 특정한 누구를 부르지 않아도 바다 어디선가 저 붉은색 깃발을 보면 물길을 헤치고 고개를 비쭉 내밀듯한 기세다.

이제는 황혼이다. 바다가 태양을 품을 차례다. 해변에서 바다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보고 있는 듯 가슴이 아린 기분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어느새 저 나이까지 되어 버린 것일까. 그동안 남은 것이라고는 회환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눈물이 나도록 슬픈 표정을 지어보지만 황혼이 아름다운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미혹이다.


그 미혹이 곽지의 바다에 있다.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를 불러일으키며 더 이상 자신을 따라오지 말라고 태양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불빛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을 어찌할 수 있으랴. 마냥 그 불빛이 따스함처럼 여겨지는데 그래서 이 해안까지 따라와보니 곽지다.


곽지는 그렇게 사람들을 부르고 해변에서 혹은 바위에서 사람들의 과거와 행여 기대할 수 있을법한 미래를 바라보도록 파도와 붉은 노을을 보낸다. 제주를 찾은 사람들이 위안이 되는 한 가지를 찾으라는 인사를 한다.


오늘 곽지 바다는 오랜만에 한참을 멈춰 서게 하는 서쪽하늘을 발갛게 내보였다. 자신의 최선을 다했다.


또 다음에 오면 된다. 그 전에 누군가는 이곳에서 사랑을 찾거나 인생을 이야기할 것이다. 바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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