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속의 비빔밥집을 찾아... 제일식당
진주를 찾을 당일 점심을 하연옥 냉면과 육전으로 가득 채운 배가 도무지 꺼지지 않는다. 아무리 배불러도 7시가 넘어가면 또 다른 음식이 그리워지는 게 그동안의 관례였는데 오늘은 꽤나 무리를 했나 보다. 많은 먹었거나 음식의 기름기 덕분인지 배고픔에 대한 집착이 찾아오지 않는다. 배는 부르지만 여전히 가시지 않는 의문은 그토록 맛있는 음식이었나는 다른 문제가 아닐까.
7시가 넘어가자 새로운 혁신지구에서 자리 잡은 숙소 근처를 둘러보지만 대부분이 프랜차이즈 음식점이거나 우리나라 전국의 동일 음식인 삼겹살집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 한번 느끼는 일이지만 참 고깃집 많다. 그 많은 삼겹살은 누가 다 구워 먹는 것일까.
그래도 이미 찾아놓은 식당이 있다는 집사람의 주장에 따라 중앙시장을 구경도 할 겸 식당을 찾아 나섰다. 식당 이름은 제일식당. 진주 최대의 재래시장인 중앙시장 안에 위치한 식당인지라 시장 구경하며 찾아가기에 좋을 듯해 밤길을 나섰다. 하지만 기대와 동일한 결과를 받는 일이 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시장에 내려 보니 이미 시장상인들은 문을 거의 닿고 장은 파장에 이르렀다. 이런 분위기에서 식당을 찾아 밥을 먹는 즐거운 상상을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오늘은 일단 철수. 내일 아침을 기약하기로 한다.
저녁을 가벼운 맥주 한잔에 피자 한 조각의 호프집에서 보내는 일도 괜찮은 시간 때우기다. 아침에 일어나니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진주에서 보기로 한 진주성과 이성자 미술관까지 다 둘러본 상태이다 보니 무엇을 찾아 다른 곳을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식당을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제 방문했던 중앙시장을 다시 방문했다. 아침은 시장은 늘 사람들을 활기차게 만드는 기운이 넘친다. 수많은 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곳곳에서 흥정과 가격 질문이 이루어지는 길가를 걸어 식당을 찾아 나선다. 식당의 위치는 이미 잘 알려진 터라 주변에 들러 상인에게 물어보니 바로 옆으로 걷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보인다고 한다. 하긴 유명한 식당이니 만큼 찾는 사람들도 많고 묻는 사람들도 더 많을 것이다.
큰 시장통에서 바로 골목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은 제일식당은 일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장통의 식당이다. 서울의 남대문시장은 물론 지방의 시장에서라면 아주 흔한 모습을 하고 있던 터라 꽤나 이름이 알려진 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제일식당. 그렇다. 진주 중앙식당에서 육회비빔밥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식당이다. 허영만의 백반 기행에도 나와 더 유명해졌으려나.
식당에 들어서니 이미 한 팀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주인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주문을 받으신다. 겁도 없이 육회비빔밥 대와 보통을 시키고 앉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사라지셨다. 시간은 10시가 막 넘었다. 젊은 여자분이 식당으로 들어오더니 에이프런을 갈아입고는 이것저것 준비를 한다. 일단의 무리들이 찾아와 주문을 하려고 떠들썩하다.
"아직 오픈 안 했어요"
젊은 분의 대답이다.
"엥? 그럼 우리 주문은 도대체 뭐지?"
정식 오픈 시간이 10시 30분인지라 그전에 주문하는 것은 무효인 듯싶다. 30분이 가까워지니 새롭게 주문을 확인한다. 더불어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이런저런 주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조금은 어이가 없는 상황이지만 미리 와서 20여분 기다린 셈 치기로 했다. 음식만 맛있으면 되지 뭐...
10분을 채 기다리지 않은 상태에서 스테인리스 그릇에 밥과 육회가 듬뿍 얹힌 음식이 나온다. 따스한 선지 국물도 함께 나왔다. 국물 맛이 좋다. 비빔밥을 비며 한 입 넣어본다. 색다른 충격이 느껴지려나...
맛있다. 육회 비빔밥이야 육회가 좋으면 맛있을 수밖에 없지만 여기도 그 축에 속할 것이다.
역시 이번에도 맛있다는 표현 외에는 할 수 없는 언어의 얄팍함과 표현력의 부족이 아쉬울 뿐이다. 국물을 추가로 시키고 웬만하면 아침을 멀리하는 내 식생활 습관과 달리 아침 배가 남산만 해지는 느낌이다.
요즘 들어 살이 계속 찌고 있는데 이러면 곤란하다. 여행이라고 먹는 여행이 될 수밖에 없으니 이 여행이 끝나면 얼마나 살들이 우주의 에너지로 승화되지 못하고 너덜거리는 육신에 붙어 내 생명을 축소시키려나. 그래도 오늘은 음식을 남길 수 없는 노릇이다.
10여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나도 집사람도 밥을 싹싹 비웠다. 웬만하면 밥을 남기는 집사람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침밥을 다 먹어치우는 것을 보면 분명 맛있는 집이다. 허영만 선생도 방송이기에 맛있다고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흐뭇한 마음을 한가득 배속에 채우고 일어선다. 솔직히 단품의 식사로 먹는 것을 비교하면 금액과 양 측면에서 생각하면 어제의 육전보다 나는 이 집이 더 솔깃해진다. 가격에 대한 부담도 그렇지만 시장통에서 정겹게 먹는 식사와 어디 숨겨진 맛집 가게를 찾아 다른 사람 몰래 밥을 먹고 간다는 약간의 설정이 가능하기에 기분이 유쾌해진다.
가격을 치르고 가게를 나오니 웬걸... 가게 앞이 장사진이다. 몇 개 안 되는 테이블이지만 이미 손님이 가득 대기 중이고 계속해서 사람들이 시장통으로 한두 팀씩 들어오고 있다. 숨겨진 맛집이 아니었구나. 다 알려진 맛집일세. 사람들 입맛은 비슷하다. 특히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는 아무리 포장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해도 혀가 주는 충실한 기능은 솔직한 것이다. 혀가 없이 사는 인간들(맛을 제대로 느낄 줄 모르는)이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 많이 경험해봐야 아는 것이 진리인 셈이다.
<진주 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