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것인지 비가 촉촉이 마을과 숲을 적신다. 토 도도도.... 끊이지 않는 빗소리가 창밖에서 무언가 살아서 움직이는 밤을 알리는 소리를 내고 있다. 베란다 문을 열어 손을 내밀어본다. 손끝에 닿는 물기운을 거친 손이 흡수하려는 듯 재빨리 젖어든다. 조금만 더 잦아지면 맨발로 밖을 나가고 싶어 지지만 축축해지는 몸 기운이 아직 자신이 없어서인지 문을 열고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스르륵 문을 닫는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생각나는 밤이다. 막연한 밤이 아니라 촉촉한 밤비가 대지를 적시니 온 세상이 멈춘듯한 정지의 순간을 넘어 소통의 욕구를 서서히 끌어올리는 듯싶다. 이 비 탓인가 아님 시간이 자정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인가 간간히 지나던 차량의 불빛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멀리 도로를 비추는 가로등만이 외로움을 상징하는 풍경이다.
산속도 아닌 다소 어정쩡한 중산간의 집은 단지를 이루고 있지만 역시 고독과 어울리는 존재다. 문을 닫으면 그 누구도 나를 방해할 리 없지만 문을 활짝 연다고 해서 엿보는 이가 따로 있지도 않으니 도심에서 떨어져 사는 일은 꽤나 고립과 적응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문을 닫고 하루를 집안에서 고립되기로 결심한 순간 오롯이 혼자가 되는 곳이다. 다행히 인터넷이 열리고 SNS가 늘 춤추지만 애초에 TV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멀리 보이는 풍경마저 없었다면 내가 있는 곳은 오로지 내 상상 속에 존재하는 곳일 뿐이다. 예전에 평대에서 살았을 때가 그랬고 다시 도시로 나오는 순간 잊었다.
그 흔하게 온 밤을 비추던 고깃배가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렸다. 창 너머로 코앞인 듯 비추어대던 고깃배의 집어등 불빛이 비 내리는 밤에는 모두 사라진다. 이곳에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바다의 사정 역시 고깃배에게는 옳지 않은 순간이겠기에 모두 닻을 내리고 적막을 택했을 것이다. 그 덕에 오랜만에 까만 밤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밤새 유흥가처럼 변해버린 함덕의 조명 가득한 도심의 느낌이 오롯이 느껴지는 순간에는 한 줄로 늘어선 착각을 일으키는 고깃배들도 함께 불을 밝힌다. 반대로 고깃배가 사라진 날은 함덕은 화려한 불빛도 찾아보기 어렵다. 새까만 밤을 찾을 수는 없지만 불빛이 아스라한 바다와 칠흑 속에 묻힌 곶자왈은 이중적으로 시야를 공유한다. 그러기에 산중이지만 곧바로 도심과 연결한 듯한 착각을 빚어낸다.
공교롭게도 내가 앉은자리에서는 바다가 바로 보인다. 아스라이 멀리이기는 해도 매일매일의 하늘과 바다가 어떠한지 그 사이에 펼쳐진 너른 밭과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의 부조화스런 모습이 부산을 떨며 시야에 자리를 잡는다. 그렇다고 이곳이 도시화된 곳은 아니다. 산속에 파묻힌 곳이 아닌 것도 맞다. 시골에 있으되 도시를 지향하는 것인가. 주변으로부터 왜 시내에서 외떨어진 이곳 와산으로 이사를 가버렸는지에 대한 의아한 질문을 많이 듣는다.
2층 베란다에 앉아서 가벼운 음료 한잔과 집어등 가득 밝힌 고깃배의 먼 곳을 내 집 안마당처럼 볼 수 있기에 이사 왔건만 여전히 도심은 많은 부분 유혹 덩어리 기는 하다. 아무리 그래도 앉은자리에서 밤바다를 볼 수 있는 호사를 굳이 포기하고픈 생각은 없으니 일단은 만족스러운 정착이다. 그 정착의 사소한 시작이 겨우 시작됐을 뿐이다.
2022년 6월 4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