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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y 17. 2016

신들의 방 영실(靈室)에는 신이 살고 있을까?

한라산을 즐기는 탐닉의 장소 영실을 다녀오다 

한라산 영실에는 신들이 살고 있을까?


이름대로 신들의 방인 영실靈室는 어떤 신이 살고 있을까. 영실기암으로 일컬어지는 수많은 바위들의 장관을 넘어 단지 그 신들의 거처에 살고 있는 신들이 궁금해졌다. 불행히도 내가 아는 이야기라고는 오백장군 혹은 오백나한의 슬픈 이야기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바위 곳곳에 신들이 거주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그 사실만으로 정다운 상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백장군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슬프다. 제주가 가지고 있는 척박함이 이곳에도 깊이 배어있다. 


자신들의 어미이자 한라산의 창조자이기도 한 설문대할망을 언급하는 이야기다. 설문대할망은 깊은 못에 빠져 죽었다. 죽은 연유가 물의 깊이를 재다가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먹이기 위한 죽을 끓이다 그 솥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일반적이다. 


그 아들들인 오백장군들이 제 어미가 빠져 죽은 지도 모른 채 그 죽을 맛있게 먹었다가 마지막에 뼈를 발견하고서야 제 어미를 먹은 것을 알고 울부짖다 영실의 바위가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더구나 한 명은 서쪽 바다로 나가 차귀도가 되었다나 아니면 서귀포의 외돌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영실에는 최소한 499명의 신은 있는 셈이다. 물론 다른 수많은 신들이 잠들거나 암약(?)하고 있을 테지만  이 홀가분한 기분을 주는 등산길은 도무지 슬픔에 집중이 안되게 한다.

오백장군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슬프다. 제주가 가지고 있는 척박함이 이곳에도 깊이 배어있다

지난해 봄, 가을과 초겨울에 올라 하늘의 푸르름으로 만들어놓은 풍광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영실을 다시 찾았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초록이 입혀진 영실은 가파른 등반길에도 사람을 순간순간 유혹한다. 아마도 오르페우스나 소돔과 고모라에게 뒤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주고 이를 어기면 아내를 살리거나 유황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는 협박을 잘 참다 마지막에 무너졌던 그들이지만 그 이야기가 이곳에 와서는 턱도 없는 이야기다. 궁금증에 관한 한 영실은 다른 이야기다. 이곳은 뒤돌아보면 안 된다는 그 어떤 협박도 소용이 없을 터이다. 뒤돌아보면 바위가 되면 될 터인데 무엇이 어려운 일이겠는가. 이곳에서는 애초에 유황불이나 지하동굴이라는 설정으로 뒤돌아보지 않고도 미션이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상황이다. 

영실의 첫 시작은 그냥 일반적인 산행을 생각나게 한다. 숲 속으로 개울물이 흐르고 제주에서는 듣기 어려운 물소리도 들리니 계곡에 놀러 온 기분마저 든다. 한참을 지나다 보면 오르막이 나오기 시작한다. 언제부터 나를 어렵게 하려나를 생각할 틈도 없이 길은 곧바로 앞사람 엉덩이를 치받을 수준으로 숨 가쁜 오르기 작업에 몰입한다.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몸이 제대로 풀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바로 가파른 길을 내어놓았으니 첫 힘으로 호기 좋게 오르는 기세는 곧 제 심장과 허파에 무리를 주고 마냥 가슴을 움켜쥐는 고통을 만들어 낸다. 더구나 자존심으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 오르는 것이 문제다. 곧 지쳐 나자빠지고 나서 내가 여기에 왜 왔나 싶다. 동시에 이때를 놓칠세라 전망대가 눈앞이다. 억지로 그곳에 오르고 뒤돌아보면 알게 된다. 


왜 내가 서두에서부터 오르페우스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시험이 애초에 이곳에서 불가능한 미션이었는지를...

이곳에서는 애초에 유황불이나 지하동굴이라는 설정으로 뒤돌아보지 않고도 미션이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상황이다

자꾸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힘들만하면 뒤돌아보고 다시 서귀포 바다와 멀리 산방산과 서쪽의 바다까지도. 탁 트인 기분을 가슴에 안는 것만으로 영실은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 신들의 방이었든 아니든 지금은 사람들의 충만한 기에 뻗쳐 자리를 내어주고 있지만 어느 누가 주인 행세를 하든 그 기세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이곳에서 천하를 얻는 것은 그저 바위에 걸터앉아 바라만 보면 될 뿐인데 뭐가 아쉬어 저 굽이치는 속세에서 천하를 운운하고 앉았겠는가.


바위 능선을 오르는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어디 신들의 처소가 있기는 할까. 이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줄지어 오르는데 신인들 여기에 남아있고 싶을까. 그렇게 허튼 생각을 하는 사이 나는 자신도 모르게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숨 가쁜 오름의 시간이 끝나려 하는 시점이 되면 새로운 볼거리를 준비한다. 간간히 계곡의 바위 사이에 핀 진달래를 감상하는 사이 색다른 풍경을 전해준다. 구상나무 숲이다. 살아있는 구상나무와 고사목이 한데 어울린 이 구상나무밭은 참 묘한 기분이다. 삶과 죽음이 엉켜있지만 결코 그 둘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삶이란 시작과 끝이 있는 명확한 기준이 아니라 여전히 또 다른 시작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윗세오름 휴게소에 닿기 전 구상나무 숲을 지나면 더 이상 오르는 길이 의미 없는 너른 평원을 보여준다. 일명 '선작지왓'이다. 돌이 서있는 넓은 장소라는 의미의 제주말이다. 말 그대로 넓은 곳에 더 이상 나무랄 것도 없이 풀과 조릿대 그리고 돌 등이 널브러져 넓은 자유로움을 이야기한다. 산 정상을 등산하면서 정상 부근에서 이토록 넓은 지대를 만나기란 참 쉽지 않은 기회다. 그것이 한라산이 주는 기회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정상을 도전해보라는 기회의 땅인 것이다.


불행히도 영실을 통한 백록담의 등정길은 막혔고 이곳을 지나 윗세오름 휴게소와 남쪽 바위벽을 끝으로 돈내코 코스로 하산하는 길만 남아있다. 


이전에 만나는 자그마한 샘이 있다. 전망대를 지나 윗세오름 휴게소로 꺾어지는 모퉁이에 자리한 노루샘. 산정에서 뛰어노는 노루들이 물을 마시러 온다는 노루샘이 산정의 약수터인 셈이다. 공교롭게도 지금은 수질검사 결과 대장균이 검출돼 식수 부적합 판단이 나왔지만 이곳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가고픈 욕구는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  언제나 수질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윗세오름 휴게소에는 언제나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어리목에서 올라온 사람, 영실에서 온 사람 그리고 돈내코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만난다. 그리고는 다시 제 갈길을 가는 교통의 요지다.


오늘은 무슨 경기가 있는지 돈내코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뛰어올라와 어리목으로 하산을 한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산을 걸어서 오르기도 벅차 죽겠는데 이 곳을 뛰어다니다니... 암튼 대단한 열정들이다.


윗세오름에 오면 한라산이 얼마나 많은 육지의 등반객들에게 인기 있는 곳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라산을 성지처럼 다녀간다. 


휴게소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자 까마귀들이 혹시나 하는 기대로 주변을 서성인다. 휴게소 방송으로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경고방송을 내보낸다. 까마귀 먹이를 주면 음식물 무단투기로 처벌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까마귀가 비둘기화 되고 있는 현장이다.


그동안 못 가본 윗세오름에서 남쪽 바위벽까지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한라산 백록담 봉우리를 좀 더 가까이서 보고픈 욕심이랄까... 넓게 연결된 통로를 지나 길을 들어서자 멀리 있는 백록담이 점점 눈앞에 다가온다. 이러다간 끝이 없겠다 싶어 어느 자리에서건 뒤돌아서기를 결심한다. 그곳에서 길이 넘어가는 자리와 지나는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고는 온 길을 되돌아 온다. 

백롭담이 한결 가까이 보인다.
백롬담을 가까이 보기위해 좀더 나선길에서 더이상 진행을 멈추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마음속 좋은 여행을 기원하며 뒤돌아섰다. 아쉬움이 남는 거리다.
선작지왓에서 서성이는 까마귀들 . 저들은 영매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신들의 눈으로...
구상나무 숲. 고사목과 엉켜있다.

내려오는 길 하늘이 갑자기 입장을 바꿔버렸다. 맑은 하늘과 따가운 햇볕을 보여주려던 애초의 마음을 바꾸었는지 온통 구름으로 산을 가득 채웠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가두기라도 할 모양이다. 그러다 잠시 잠깐 보여주는 빛 사이로 얼마나 많은 등산객들이 영실기암을 오르고 있는지 보여준다. 


신들의 방은 시끄럽거나 부산스러워서 제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신들은 아마 다른 장소로 떠나지 않았을까. 신들이 자리를 비웠을 듯한 자리에 관광객들만 무성하다.  영실은 여전히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끝>

하산길 여전히 영실을 오르는 수많은 관광객이 나와 어깨를 스키고 지나고 있다. 
영실 초입의 계곡. 물소리가 육지의 산에서는 당연한 듯 하지만 제주에서는 계곡물 소리를 듣기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내려와서 다시 올려다본 영실기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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