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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Oct 28. 2017

올레 14코스_저지에서 한림까지

동네길과 바닷길의 이분법을 겪다 2015년 5월 16일

올레길을 다 걸었던 기억기 꽤나 오래된 기분이다.


누군가처럼 한두 달을 집중적으로 걸었던 것도 아니고  게스트하우스에 묵어가며 연이어 걷던 길도 아니다.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걸었던 메인 코스는 다 걸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아직도 추자도 올레를 비롯해 몇몇 길은 아쉬움으로 남아있지만 오롯이 기억나는 길들을 다시 정리하며 분위기를 전하려 한다. 

<주의> 지루한 내용이므로 읽기를 포기해도 무방함...


아침에 서둘러 숙소를 나서기로 하고 일찌감치 일어날 심산이었는데 이를 도와주려는 것인지 아침 8시부터 전화가 온다. 어제 쓴 칼럼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니 저절로 잠이 깼다. 눈은 여전히 피곤한데 잠은 달아나 버렸다. 토요일 오전의 단잠을 놓쳐버린 셈이다. 


나의 초초함 만큼이나 무심함을 더 크게 담고는 버스가 왔다. 아슬아슬하다. 터미널에 내려 쏜살같이 튀어 올랐다. 오늘따라 왜 이리 버스 운전수가 출발시간을 잘 지키는지 도대체 텅 비어있는 버스 플랫폼이 허탈함을 더해주기만 한다. 또다시 20분을 기다려야 한다. 아~

나도 저 나이가 되면 다리를 굽히거나 올리기에 힘들어 저렇게 천천히 움직이겠지. 그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터지듯 아프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는 20분이다. 10분 여가 지나자 들어온 버스에 앉았으려니 사람들이 가득하다. 역시 일주선을 타는 할망과 관광객 티가 너무나 나는 젊은 여성들이 한 무리다. 가는 곳들도 가지가지다. 신엄에 가는 사람들. 애월읍에 내리는 사람들. 잘은 모르지만 고내포구에 잔뜩 기대를 안고 버스에 내리는 사람들. 하귀에 내리니 마중 나와있는 사람들과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는 아가씨들... 신엄에 내리는 할망과 나이 드신 분들이 내릴 때면 버스가 한 세월은 멈춰 서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다리를 굽히거나 올리기에 힘들어 저렇게 천천히 움직이겠지. 그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터지듯 아프다.


내가 가는 목적지는 아직 멀다. 지난주에 이미 한림항까지 다녀왔으니 가는 버스길은 이제 익숙하다. 어디에서 내릴지도 알고 있고 가는 길이 다소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금능리에 혼라 썰렁하니 내리니 젊은 청년들 2명이 나와 같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오설록에 가려는 의지가 보인다.  올레를 걷는 사람들이 아닌 바에야 차림에서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보인다. 이곳에서 가려는 곳이 오설록 말고는 없으니 말이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마 파크와 라온 레저타운 등을 멋쩍게 쳐다보며 저기 아는 지인이 있는데 언제나 가서 만나보려나 싶다.

목적지인 저지리 마을회관. 이제는 이곳이 낯설지가 않다. 나는 그 동네의 전후 사정에 대해 머릿속에 잘 그려져 있지 않으면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성격을 타고났는지 지도를 보고 지난번에 다녀온 기억을 더듬고  수많은 지도를 보고 또 보고 하니 이곳 풍경의 사진도 덩달아 보게 되고 이제 익숙한 기분이다. 물론 벌써 3번째 오기도 했으니 낯설지 않은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일 게다.


올레길은 처음부터 샛길로 빠져가며 저지오름 오른쪽 길을 향해 간다. 마을길과 과수원을 지나면서 오붓한 느낌이다. 지난번처럼 날씨가 우중충하지도 않고 아주 뙤약볕도 아닌 덕에 걷는 느낌이 상쾌함을 준다. 구불구불 마을길 이곳저곳을 지나다 보니 토끼풀이 쫙 깔린 길도 나오고 이름 모를 노란색, 아마도 애기똥풀 같은 느낌의 꽃 길이 나오기도 한다. 호젓하다. 천천히 걷는 기분이 맘에 든다.


이곳에서는 이정표가 불필요하다. 마을 주변 길들을 구비구비 돌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관계로 이곳저곳을 지나며 올레길 표시는 나를 이끈다. 그래서인가 막상 특이한 모습보다는 잔잔한 휴식 같은 길이다.


이곳에도 개발의 광풍이 부는지 올레길의 팻말이나 리본이 지나는 길목에 여지없이 커다란 공사의 흔적들로 움푹 파이거나 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한다.


도로변에서 강아지 두 마리가 아주 정답게 노니는 장면을 보니 흐뭇한 기분이 먼저 든다. 녀석들은 오는 차를 빤히 바라보다 마지막으로 피하기도 하면서 나를 앞질러 제갈길을 가고 있다. 녀석들이 갑이다. 나야 객이지만 진정 자신들의 동네에 대한 영역표시의 느낌을 명확히 해준다.

여기가 어디쯤 인지도 모르게 지나는 길에 눈을 확 띄게 하는 장면들이 나타난다. 3월 말에 왔으면 여기도 장난이 아니겠는데 싶다. 청보리가 이미 다 익어 5월의 황금들판을 제공하고 있다. 아,,, 보리밭의 황금들판도 이런 느낌이 드는구나. 한 군데서 마음을 주고 다음으로 발길을 옮기면 곧이어 또다시 보리밭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을의 뙤약볕에서 보이는 황금들판이나 추석과는 전혀 다른 5월의 황금들판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면서도 나만의 비밀을 제공해 주는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지금 나 아니면 누가 이 기분을 알랴...


수로 옆을 걷는 호젓한 풀밭 길 느낌이 계속 이어져 있다. 설마... 했는데 이 길은 이후로 계속해서 수로를 가운데 두고 좌우를 건너게 하더니 바다로 향하게 한다. 헉, 이런 더 이상의 변화가 없다는 게 놀랍다. 한쪽이 호젓한 길이면 반대편은 시멘트 포장길이다. 번갈아가면서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중간중간에 선인장 밭이 자꾸자꾸 들에 들어온다. 찔레꽃도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질레꽃이라는 서글픈 꽃을 알고 있다는 것과 그 꽃이 아무렇지도 않게 피어있다는 게 사실 괜스레 마음이 허무하거나 아련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 꼿이 피는 풀들이 정갈하다거나 화려함이 아닌 잡초스러움에 피어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바닥에 깔려있는 토끼풀꽃인지 뭔지 모를 꽃과 풀밭도 어릴 적 놀던 시골스러운 도시의 개발 이전 동네들을 생각나게 한다. 나에게도 동심이 있었는데 그게 벌써 40여 년 전이라니... 아구아구

그 꽃이 아무렇지도 않게 피어있다는 게 사실 괜스레 마음이 허무하거나 아련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 꼿이 피는 풀들이 정갈하다거나 화려함이 아닌 잡초스러움에 피어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재미있는 풍경을 만났다. 보리밭 사이사이로 바위나 흙덩어리 같은 것들이 띄엄띄엄하게 놓여있다. 자세히 보니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밭 사이를 이 바위들이 사사삭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는 모습이다. 한두 개의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10개는 족히 넘을 바위들이 위에는 온갖 풀과 잡목들을 뒤집어쓴 채 조그막하게 얹어져 있다. 보리밭을 수영한다. 갑자기 다도해에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착각을 


아주 보기 드문 경험이다. 마치 저 녀석들 사이에 곧 풀로 은폐한 누군가가 뚜껑을 열고 머리를 쑥 하니 내보낼 것 같은 기분이다.  아마도  아직은 감성의 끈을 놓고 있지 않았다는 대견스러운 안도감이 다가온다. 이 길 재미있다. 특히 이 바위가 있는 자리는 보리밭 사이를 스치고 움직이는 바위라는 생각과 환상이 닫히지를 않는다.

마치 저 녀석들 사이에 곧 풀로 은폐한 누군가가 뚜껑을 열고 머리를 쑥 하니 내보낼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바다를 향해 걷고 걷다 보니 저 멀리 선인장들 사이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저기서부터는 계속해서 바다를 향해 걷는다. 그러고 보니 반 정도는 온 것 같다.


바다로 나온 발걸음을 멈추고 탁 트인 시원함에 가슴을 열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한동안 바닷가에 갖춰진 돌의자에 앉았다. 배당을 풀어놓았다. 이 놈의 바다는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최소한 치유는 하지 못해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나 무엇을 해 왔는지 혹은 앞으로 어찌할 것인지를 순간 잊어버리게 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다. 그게 바다의 힘이다.

멀리 비양도가 보이고 한림항이 보이고 그 사이에 협재가 있다. 그 사이를 두고 바다는 여전히 나의 곁을 계속 따라온다.


월령리의 선인장 자생지를 지나 자그마한 포구로 들어섰다.  뜬금없는 벼룩시장스러운 좌판이 몇 개 보인다. 이들의 정체는 뭐지... 카페와 아이를 몇 명이 그 앞에서 놀고 있고 좌판을 벌여놓은 여성들 몇몇이 도란도란 이야기만 나누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길을 지나갈 사람들이 없을 터인데 아무것도 아닌 물건들 몇 개를 펼쳐놓고는 벼룩시장처럼 앉아있다. 가서 말 걸기도 낯선 느낌이 들어 아무 생각 없이 그 자리를 지나쳤다. 이 포구를 지나면 계속되는 바닷길이 이어질 것이고 비양도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때까지는 계속 걷기만 할 뿐이다.

해초가 바다를 메웠다. 괭생이모자반인가. 포구의 구석구석까지 해조류가 가득가득 밀려들고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해변으로 물놀이를 하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있다. 아, 저 먼 바다의 깨끗함이 푸르름으로 가득 차니 그 푸르름이 기쁘지 않다. 해초 사이의 바다가 나를 부른다. 나도 얼른 저곳으로 가고 싶다. 금능해변과 협재해변이 코앞이다. 해변이다. 모래가 밟히는 해변이다. 길을 걸을 이유가 없다. 성큼성큼 해변을 걷는다. 혼자 걷는 게 아쉽다. 누군가는 여기에 있어야 한다.


가족이 보고 싶다. 세상의 모든 일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니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협재를 뒤로 하고 한림항을 향해 걷는다. 이제 해변은 없다. 점차 마을의 느낌과 항구의 느낌이 함께 다가온다. 힘이 든다. 배도 고프다. 한림의 저녁은 도시화와 발전된 항구의 모습으로 개발의 커다란 무게감을 허기와 함께 던져준다. 이곳에서는 현재 벗어나고자 하는 목적 외에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자연과 문명의 차이는 이처럼 강하다. 어려울 때 찾게 되는 곳과 벗어나고픈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날이 저문다...

해 질 녘 항구는 그리움이다. 어디선가부터 다시 돌아와 안식처로 찾아가는 그리움을 늘 대변한다. 그 대변하는 항구의 역할을 한림항도 예외 없이 구사하고 있다. 특히나 해 질 녘이 가까워지면 그 운치는 생활 그대로 일 때 더 강하게 다가온다. 바다가 있고 항구가 있고 그곳에 정박한 배들의 모습과 아련히 하루를 마감하는 태양의 조금씩 지쳐가는 열기는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든다.


내가 이곳에 언제 왔던가. 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왔던가는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없을 때 막연한 그리움은 서글픔으로 바뀌게 된다. 그 항구가 오늘 내 발걸음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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