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부르다: 생활인의 인생 인용문 45편] 4장. 배움과 전환
유명/무명의 유명무실
“오늘날 한 특정한 작가에 대한 역사적 기억은 그가 가진 아이디어의 총체적 승리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이나 미술관 같은 형태의 보편적 아카이브 시스템을 통해 그 작가에 대한 정보가 보존되고 확산되는 방식을 통해 남는다.”
(보리스 그로이스 지음, 김남시 옮김, 「새로움은 유토피아적이지 않다」, 『새로움에 대하여』, 현실문화, 2017, 59쪽)
카메라를 들고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의 표정을 기록한 인물이 있었다. 어디에도 사진이 발표된 적 없었기에 평생 ‘무명’으로 존재했다. 1926년에 태어나 40여 년간 보모로 일했고 2009년 여든셋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 인물이 남긴 네거티브 필름 일부가 2007년 경매 시장에 나왔다. 한 스물여섯 살 청년이 그것을 샀다. 그중 스무 장 정도를 인화하여 ‘플리커(Flickr)’라는 이미지 공유 플랫폼에 게시했다.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청년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 의해 그 인물의 사진이 속속 발굴되었다. 그 수가 15만 장에 달했다. 사진계와 언론도 그 인물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고 사후에야 ‘천재 사진작가’로 불리게 되었다.
“마이어는 남에게 사진을 보이지 않고 오로지 혼자 찍었다. 당시 다수의 사진가들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같은 사진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이어의 원천적 동기나 관심은 사회의 모순이나 인습에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그녀가 찍은 도시 풍경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 것은, (⋯) 삶이란 무엇이며 삶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계속 직면하고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그녀 자신의 욕구였다.”(존 말루프 지음, 박여진 옮김,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 윌북, 2015, 30쪽)
평생 단편소설 일흔일곱 편을 발표한 소설가가 있었다. 문단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활동했음에도 ‘무명’에 가까운 삶을 살았었다고 후인들은 전한다. “고등학교 교사, 전화 교환수, 병동 사무원, 청소부, 내과 간호보조 등 여러 일을 하면서 자식들을 키웠고, 틈틈이 글을 써 잡지에 발표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잊혀졌던 천재 작가’의 자전적 경험」, 경향신문, 2020. 5. 22.) 1936년부터 2004년까지 예순여덟 해를 살았다. 사후 11년이 지난 2015년 그 인물의 소설집이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 베스트 10’에 선정되며 비로소 ‘루시아 벌린’이라는 이름과 작품 세계가 널리 퍼진다.
“나는 일류 작가는 언제고 크림처럼 위로 떠오르고 마땅히 유명해지리라는 믿음을 항상 간직해왔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 작가의 작품을 논하고, 인용하고, 가르치고, 공연하고, 영화로 만들고, 가사로 사용하고, 선집에 포함시킨다. 아마 이 단편집으로 루시아 벌린도 그녀가 받아 마땅한 주목을 끌기 시작할 것이다.”(리디아 데이비스, 「후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청소부 매뉴얼』, 웅진지식하우스, 2019, 625쪽)
‘유명’과 ‘무명’이라는 낱말은 곱씹을수록 참 가혹하다. 이미 오랜 기간 불려왔던 이름이 새로 지어졌다는 듯, 멀쩡히 존재하는 이름을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대한 타인들의 이 같은 인식은 당사자의 일상에도 얼마간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유명세와 무명의 설움을 야기하는 것이다. ‘유명/무명’ 관점은 문화 예술 직종에 특히 강력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이름난 무용가, 배우, 음악가, 작가 등은 각각의 분야에서 소수에 불과할 텐데,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이름들이 호칭되지 않고 가려진 채로 존재할 것인가. 한 영역의 생태계는 유명과 무명에 관계없이 수많은 이름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을 텐데.
「새로움은 유토피아적이지 않다」라는 글에서 언급한 “도서관이나 미술관 같은 형태의 보편적 아카이브 시스템”은 무명의 이름들을 ‘없는 셈’ 치지 않도록 돕는 장치일 것이다. 문학, 미술, 영화 등 예술 분야의 크고 작은 ‘버티컬 플랫폼(특정 장르의 창작자 및 현업인, 수요자를 대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온라인 생산·소비·유통의 장)’들 또한 문화 현장 곳곳의 ‘무명’들을 ‘작가’로 호명하고 기록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는 과거와 지금의 새로움 생산 방식이 다름을 지적한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보편적 승인을 받고, 되도록 많은 사람이 자신을 따르며, (⋯) 자신의 이름이 미래의 상징이 되기를 추구”한 이전 시대 작가들은 “그 아이디어가 진리가 아니라 잘못되고 틀린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미래에는 철저하게 사라질 수도 있다는 가공할 불안과 맞닿아 있었다.”(59쪽) 이와 달리 현시대는 아이디어 하나의 불멸성·완결성·절대성을 평가한다기보다, 작가가 생산해 내는 새로운 아이디어 하나하나를 ‘정보’로서 ‘아카이빙’ 하여 ‘보존과 확산’이라는 방식으로 그 인물을 기억한다. 물론 오늘날의 작가들도 이전 시대 작가들처럼 ‘불안’과 맞서야 한다. 아이디어가 대중에게 확산되는 순간 “그 가치를 상실하고 역사적 기억의 체계 속에서 그 저자의 고유한 자리가 없어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59쪽) 매번 작품 경향이 비슷하다는 비평이 가해지거나, 발표작마다 반짝 이슈만 끌 뿐 오래지 않아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듯.
그런데 저자는 이 지점에서 (이전 시대에는 없던) ‘보편적 아카이브 시스템’의 새로움 생산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특정한 아이디어가 진리가 아니라고 판명되었다 하더라도, 그 독창성이 인정되기만 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기억에서 삭제되지 않는다.”(60쪽)라고 말이다. 사후에 비로소 ‘작가’로 기억되기 시작한 비비안 마이어와 루시아 벌린의 사례가 얼른 떠오른다. 무명 사진작가와 소설가의 ‘작품-아이디어’는 경매 물품으로든 인쇄 매체로든 ‘아카이빙’이 되어 있었기에 ‘삭제’되지 않고 뒤늦게나마 ‘새로움’을 획득한 것 아닐까.
지금은 정보의 보존과 확산이 용이해진 디지털 시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름들은 TV나 유튜브, 소셜 미디어에만 있지 않다. ‘틀면 나오는’ 이름들과 더불어, 잘 보이지도 검색되지도 않으나 틀림없이 보존 및 확산되는 이름들이 세상에는 가득하다. 삭제되지 않고 쌓여 가는, 아직 꺼내지지 않은 그 수많은 무명의 이름들을 어찌 다 셀 수 있을까.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이름 또한, 책-아이디어의 발표로써 이곳저곳에(일테면 인터넷 서점의 서지 정보 페이지) 기록-기억될 것이다. 제발 좀 삭제되었으면 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보존의 영역에 이름을 올리고 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이름이 꺼내지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불안감을 느끼는 까닭이다. 황홀한 두려움이라 해야 할까. 비비안 마이어와 루시아 벌린의 ‘사후 스타덤’마저 부러워하는(이번 생은 아니어도 언젠가 내 글도 널리 읽히면 좋겠다는 바람) 이면에는, 내가 사라진 뒤에 내 글이 비평의 도마에 오르면 어쩌나 하는 별걱정이 도사리고 있다.
무명 작가와 유명 작가의 심경이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양쪽 모두 ‘삭제될 수 없는’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새로움은 유토피아적이지 않다」라고 선언한 저자 보리스 그로이스의 통찰에 숙연해지며, 이제는 유명/무명의 분별이 사실상 유명무실한 시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영원불변하는 ‘단 하나의 창작물’이 아닌, 나날의 꾸준한 작품 활동만이 각자의 이름에 ‘새로움’을 부여해 줄 것이므로.
사이라는 세계의 지은이
“오른쪽 절반뿐인 너와 왼쪽 절반뿐인 나는 조깅하는 자들을 피해 하천변의 높은 쪽 길로 함께 걸었다. 어느 날 네가 담쟁이 가시에 팔을 긁혀 피를 흘리는데도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김솔, 『행간을 걷다』, 현대문학, 2024, 49쪽)
장편소설 『행간을 걷다』의 주인공은 뇌졸중으로 몸의 오른쪽에 마비 증상이 온 인물이다. 하나였던 신체가 좌우로 갈라진 사태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소설가 김솔은 ‘이쪽과 저쪽으로 분리되어 버림’을 작품의 첫 문장(“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부터 나는 둘로 나뉘었다.”)에 곧바로 제시한다. 그러고는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그 틈새 안의 세계에 대하여 쓴다. 나뉘고 나서야 비로소 현현한 그곳을 주인공은 걷는다. 혹은 이따금 멈춰 그곳의 풍경을 가만히 응시한다.
인용한 문장의 “오른쪽 절반뿐인 너”라든지 “어느 날 새벽 몽마(夢魔)처럼 뇌졸중이 찾아와 나에게서 네가 떨어져나간 뒤부터”(103쪽)라는 표현처럼, 주인공은 자신이 잃은 정상 신체의 반쪽에게 ‘너’와 ‘네가’라는 인칭 대명사를 사용한다. 건강한 ‘나’였다가 병약한 ‘나와 너’로 찢어진 한 사람의 존재가 꼭 야누스 같기도 하다. 주인공이 반복적으로 ‘너’를 찾을 때마다, 희한하게도 왼쪽의 나와 오른쪽의 너가 계속 멀어지는 듯한 ‘거리감’이 독자의 정서를 가득 메운다. ‘사이’라는 세계가 확장되는 것이다. 한때 한몸이었던 제 반신을, 저렇게 남 대하듯 부르며 남은 생을 살아가겠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오른쪽의 몸은 점점 굳어 갈 것이고, 왼쪽의 몸도 서서히 노쇠해질 텐데. 저 둘은 계속 벌어지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다시 한몸이 되겠구나.
『행간을 걷다』는 기승전결을 좇아 훌훌 다음 장을 넘기는 소설이라기보다, 주인공이 보고 듣고 느끼는 바를 독자도 간접 체험하듯 감각해 보면서 느리게 읽어야 할 시적 산문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무엇무엇이다, 라고 요약 정리를 하는 것이 쉽지도 않거니와 그러한 시도가 썩 적절하다 여겨지지도 않는다. 어렵다면 어렵다고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무성의한 말로 이 작품을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행간을 걷다』를 읽다 문득 생각난 시를 빌려 와 본다.
“달리는 창으로 내다보니 / 흙길 하나가 구불거리며 산언덕으로 올라가고 있다 / 숲 사이로 올라가는 좁은 산길이다 / 전동차의 속도는 즉시 그 길을 지우고 / 터널의 어둠으로 창문마다 두꺼운 커튼을 친다.”
(김기택 시 「기찻길 옆 산길」 일부, 『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지성사, 2012, 98쪽)
소설 속 주인공이 두 쪽으로 갈라지기 전, 그러니까 한몸으로 건강히(빠르게) 다니던(行) 삶에 아무런 사이(間)도 벌어지지 않았던 시기가 저 시와 같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숲 사이로 올라가는 좁은 산길”, 한마디로 ‘사잇길’이 분명 창밖에 존재했음에도 “속도”로써 “즉시 그 길을 지우고” “창문마다 두꺼운 커튼을 친” 채로 달리던 기차와도 같은 삶. 행간을 미처 읽기도 전에 눈앞의 글줄을 닥치는 대로 섭렵하며, 그것을 삶의 정수이자 진리로 철석같이 믿으며 앞으로만 나아가던 욕망 어린 삶.
자신을 떠나 다른 남자와 새 삶을 시작한 아내를 보고도 주인공—반쪽의 나와 너, 즉 ‘우리’는 태연하다. “우리는 더이상 아내의 뒷모습을 쫓지 않았다. 아내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남자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그 남자는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우리와 우리의 운명은 모든 남자들과 그들의 운명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155쪽)이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오로지 그 사잇길로만 걸어야 하는 주인공에겐, 아내 곁에서 ‘남편’ 또는 ‘남자’가 될 수 있는 양자택일의 가능성이 부재한다. 아내가 떠나지 못하게 붙잡는 삶은 ‘행간’이 아니며, 시인이 이른 “터널의 어둠”이 될 것임을 주인공도 독자도 이미 잘 알고 있다.
마지막 장을 덮고도 내가 다 읽은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독자의 뇌리에서 『행간을 걷다』는 쉽사리 ‘행간을 걸었다’라는 완료 시제가 되어 주지 않는다. 하기야 ‘다 읽었다’는 관념은 ‘아직 읽지 않았다’와 양극을 이루므로 행간-사이라 볼 수 없다. 『행간을 걷다』는 본문의 표현대로 “입구와 출구가 모두 없는”(14쪽) 상태로만 존재함이 온당하다. 좌와 우, 시와 비, 호와 불호, 청결과 불결, 도덕과 부도덕, 합법과 불법 등 세상의 수많은 양자적 가치에 ‘행간’이라는 힘든 길을 낸 소설가. 그 ‘사이’라는 세계의 지은이만큼은 독자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신할 수 있는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