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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건축관 / Too Legit To Quit

[문장을 부르다: 생활인의 인생 인용문 45편] 4장. 배움과 전환

by 임재훈 NOWer



[문장을 부르다: 생활인의 인생 인용문 45편]


4장. 배움과 전환

— 새로 얻은 생각, 다시 뜨는 눈






38 루이스 칸.jpg 이미지 출처: 알라딘


이타적 건축관을 명상하며


“제가 음악가라고 가정합시다. 그리고 제가 왈츠를 처음으로 발명한 사람일지라도, 왈츠는 결코 제게 속한 것만은 아닙니다. (⋯) 산소를 발견한 사람이 산소를 소유하지 못하듯이, 저도 왈츠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이미 존재하는 어떤 본성을 찾아낸 것일 뿐입니다.”

(덩 응고 기획·편집, 김광현·봉일범 옮김, 『루이스 칸의 잊혀질 수 없는 건축 강의』 개정증보판, 엠지에이치북스, 2016, 78쪽)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건축가 루이스 칸의 겸손함에 탄복했다. 이어지는 문장들과 다음 페이지를 계속 읽어 나갔다. 그러다 이내 앞의 문장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이미 존재하는 어떤 본성을 찾아낸 것일 뿐”이란 부분에 내 의식 속 무언가를 떨어뜨리고 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뭘 분실했나 곰곰 찾았다.


문장을 몇 번이나 재독하고 구송하던 중, 팔을 한껏 뻗어도 닿을까 말까 한 의식의 저 깊숙한 모퉁이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이타적 삶’이었다. 책을 읽다 흘린 것이 아니었다.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날 만큼 한참 전에 내가 떨군 것이었다.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았다. 하마터면 영영 그 존재조차 까먹을 뻔했는데, 200쪽 미만의 지면 위에 들어선 밀도 높은 활자 공간을 샅샅이 탐색한 덕분으로 분실물 습득을 할 수 있었다.


건축가는 기본적으로 타인들에게 공간을 지어 주는 직업이다. 남이 정주할 집, 남이 일할 회사, 남이 방문할 도서관, 남이 출국하고 귀국할 공항, 남이 식사할 식당, 남이 운동할 체육관 등등. 건축가가 의뢰 받는 건축 설계의 최우선 고려 대상은 타인일 수밖에 없다. 이타성을 배제하고 날림으로 건물을 짓는 순간 타인의 삶에 불편이 초래된다. 석면 가루가 날리고, 천장에서 빗물이 새고, 외벽에 균열이 가고, 단열이 안 되어 난방 효율이 떨어지고, 통행 공간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방문객들의 동선이 꼬여 버리고, 환기 설비를 간과한 탓에 실내 공기 오염도가 상승하고, ⋯⋯그리고 심하면 건물 자체가 붕괴된다. 충분히 이타적으로 설계되지 않은 건축물은 타인의 생명까지도 위협한다. 건축가는 인류애적 도덕심의 발로라기보다는 직업 윤리 차원에서 절대적으로 이타적이어야 하는 전문 직종이다.


건축 분야 교육자 겸 저술가이면서 여행·디자인 잡지 ⟪어거스트(August)⟫의 편집장이기도 한 덩 응고(Dung Ngo)는 루이스 칸의 ‘이타적 건축관’이 묻어나는 여러 강의록과 메모를 엮어 1998년 『Louis Kahn: Conversations with Students』를 펴냈다. 당시 그는 미국 남부의 명문대인 라이스 대학교 건축학과의 출판물 총책임자였는데, 그런 그가 기획과 편집을 도맡은 이 책은 프린스턴 아키텍처럴 프레스(Princeton Architectural Press)라는 저명한 건축 전문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우리나라에는 약 삼 년이 지난 2001년 국역본 초판이 소개되었다. 일찌감치 양서를 알아본 국내 출판사의 안목에 감사할 따름이다.


루이스 칸의 글 사이사이 자리한 덩 응고의 사려 깊은 주석들은 독자의 문해를 돕는 도슨트 역할을 한다. 건축이라는 전문 분야를 보통인의 삶과 포개어 준다. 건축적 이타성을 일상의 터전에도 구축해 보면 어떻겠는지 제안한다. 가령 이런 구절. “구체적인 이름이 없는데도 확정할 수 없는 다양한 인간의 바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루이스 칸 건축의 본질이었다.”(41쪽) 이 문장은 “구체적인 이름이 없는데도 (⋯) 존재하는 공간”과 “확정할 수 없는 다양한 인간의 바람”, 즉 ‘무명의 자리’와 ‘익명의 희망’을 긍정한다. 루이스 칸이 언급한 “이미 존재하는 어떤 본성”이란 이렇듯 무명과 익명의 세계 속에서 찾아지길 기다리는 분실물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이타적 건축가는 그 세계에 공간을 짓고, 그곳의 사람들에게 기꺼이 소유권을 넘기는 자다.


이타적 삶을 명상한다. 나를 앞세우려 고군분투하는 대신, 오랜 시간 뒤세워진 채 무명과 익명으로 “이미 존재하는 어떤 본성”들을 찾고 아끼는 삶을 상상해 본다. 그들 혹은 그것들은 이 사회가 잃고 잊은 분실물들일지 모른다. 어쩌면 나 역시. 남에게 집을 지어 주듯 글을 짓겠다고 다짐해 본다. 건축가 같은 작가를 꿈꿔 본다.






39 김욱.jpg 이미지 출처: 알라딘


Too Legit To Quit


“고물상 몇 군데를 돌아다녀서야 코트를 사주겠다는 인심 좋은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입겠다며 2만 원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고물상 주인 남자가 하느님처럼 보였다. 나는 그 돈으로 소시지 다섯 개와 소주 세 병을 샀다. (⋯) 너무 추워 걸으면서 우선 소주 한 병을 까서 마셨다. 소시지 한 개도 뜯어서 입에 넣었다. 찬 소주와 찬 소시지를 먹고 있음에도 뱃속은 용암처럼 뜨겁게 끓어올랐다. 뱃속에서 시작된 뜨거운 열기가 가슴을 지나 얼굴로, 눈가로 치밀어올랐다. 그때부터는 우느라 숱하게 헛걸음질을 했다. 길가 밭두렁에도 빠지고, 다리가 엇갈려 제 풀에 자빠질 뻔하기도 했다.”

(김욱 지음, 『취미로 직업을 삼다: 85세 번역가 김욱의 생존분투기』, 책읽는고양이, 2019, 114~115쪽)


인용문은 저자가 칠십 대에 겪은 일화다. 삼십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다 정년 퇴직을 하고 보무당당히 작가로서 인생 2막을 열어 젖히려 했으나,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전 재산을 잃고 아내와 단둘이 남의 집안 묘지기 일을 맡아 묘막살이를 하던 시절의 기록이다.


입고 있던 코트를 고작 2만 원에 팔고 고추바람을 직격으로 맞으며 비슬비슬 걷는 초로의 사내. 시리고 아린 삶의 갑옷과도 같은 외투를 “소시지 다섯 개와 소주 세 병”과 맞바꾼 화자의 모습에서 장판교의 장비를 떠올렸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 다 드루와(들어와). 소줏불에 “용암처럼 뜨겁게 끓어”오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는 인생 대선배의 고해는 젊은 독자의 등허리를 곧추세웠다.


책의 부제대로 저자 김욱은 번역가다. 이 책이 나올 때 그의 나이 여든다섯, 경력은 약 십오 년이었다. 즉 그는 일흔이 넘어 번역 일을 시작했다. 200권 넘는 외서를 우리말로 옮겼다. 이렇듯 칠팔십 대에 이룩한 ‘새 인생’의 준비 과정을 저자는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평생 글밥을 먹고 살아온 사람이니 만큼 글에서는 젊은이들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럼에도 늙다리 냄새 풍기는 구투의 언문(言文) 흉내를 내지 않으려고 잘나가는 젊은 번역가들의 책을 숱하게 읽었다. (⋯) 매일 아침 시립 도서관에 제일 먼저 가서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때는 형편이 어려워 구내식당에서 파는 2,000원짜리 라면값도 아까웠다. 마누라한테 부탁해 아침에 먹고 남은 밥에 오이지 몇 점 담아다가 점심과 저녁을 해결했다. 그래도 마음은 배가 불러 터질 듯 행복했다.”(163쪽)


1980~1990년대를 풍미한 미국의 힙합 가수 중 ‘엠씨 해머’라는 인물이 있다. ‘뉴 잭 스윙’이라는 음악 장르를 세계적으로 알린 스타다. 그의 대표곡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1991년 발표한 ‘투 레짓 투 큇(Too Legit To Quit)’이다. 의역하자면 ‘벌써 그만두기에는 난 너무 찐이야(쩔어)’ 정도일 것이다.


“나는 백열 살까지 사는 게 꿈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앞으로 10년, 아흔다섯까지 하고 싶다.”(158쪽)고 선언한 85세 번역가의 삶은 ‘투 레짓’ 그 자체다. 번역서 말고도 본인의 저작도 다수인데, 그중 2013년 출간한 산문집 제목이 무려 『폭주노년』이다. 과연 보통 인물이 아니다. 문필업 인생 대후배도 마음놓고 ‘큇’의 시점을 최소 95세까지 미뤄 두고 ‘폭주’를 감행해 보기로 한다.






※ 메인 이미지: 루이스 칸이 건축한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1961년 착공하여 1982년 완공. 인공 호수 위에 지은 노출 콘크리트 건물.(출처: 월스트리트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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