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여름] #9
카페 야외석 가장자리에 조성된 작은 텃밭. 쪼로니 풀만 잔뜩해 무얼 재배하는 용도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원예에는 완전한 문외한이라 풀잎들만 봐서는 식물종을 알 길이 없다. 다만 눈어림으로 넘겨짚기로는, 풀들의 배열이 정연하고 이파리 모양이 같은 것들끼리 열(列)을 지은 자람새로 보아 사람 손을 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 ‘사람’의 정체(?)를 추측해 보게 만드는 몇 가지 단서들. 우선은 크기 순으로 나란히 놓인 제법 고풍스러워 보이는 철제 분수병 세 개와 그 옆의 크고 작은 빈 화분과 받침대. 직경이 고만고만한 황토색 그릇들끼리는 포갰고, 제일 넓적한 플라스틱 재질의 흰 것은 따로 두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주의문이다. ‘이곳은 씨앗을 심어 키우는 곳입니다. 아이들이 장난치지 않게 주의해 주세요.’ 포스트잇 두 장 정도를 잇댄 크기의 하얀 용지에 검은 바탕체로 두 문장이 네 줄로 인쇄되어 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정확하다. 게다가,
이곳은 씨앗을 심어 키우는 곳 → 공백 포함 열여섯 자
입니다 → 세 글자
아이들이 장난치지 않게 주의해 → 공백 포함 열여섯 자
주세요 → 세 글자
마치 음수율을 맞춘 듯 16⋅3조 양끝 정렬이다. 일부러 의도하지 않았다면 이렇듯 딱 떨어지는 율격을 자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텃밭의 관리자, 아무래도 보통 인물은 아닌 듯하다.
요소요소를 쪼개어 들여다보니 이곳의 주인, 즉 ‘씨앗 심어 키우는 이’의 정교하고 엄밀한 성정이 느껴진다. 동네 카페의 소박한 텃밭 하나도 이렇게나 착실히 가꾸는 정성이라니. 자신의 마음밭은 또 얼마나 샅샅이 경작할까. 에어컨 바람도 없는 야외석, 얼음 다 녹은 ‘아아메’를 홀짝이다 나에 대한 부끄러움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