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여름] #14
우는 아이 손에 용돈이 쥐어지듯 장맛비가 뚝 그쳤다. 연일연야 울울했던 거먹구름 하늘이 어느 틈에 표정을 싹 바꿨다. 소다 맛 빙과 같은 진한 파랑은 아니지만, 찬물에 울상을 씻고 나온 어린이의 말랑한 볼살처럼 해말쑥한 빛깔이다. 오늘의 날씨는 ‘갬’. 그냥 ‘맑음’보다 좀더 서사성을 머금고 있는 표현 같다. 둘 다 ‘개다’와 ‘맑다’의 명사형이기는 하지만 전자는 동사인 반면 후자는 형용사다. 맑다-맑음이 현재 날씨만을 포착한 스냅 사진이라면, 개다-갬은 과거 날씨의 흔적까지 담아 낸 장노출 사진이다. ‘갬’이라는 한 글자에는 ‘흐렸던 하늘’, ‘비 내리던 날’, ‘우중충한 나날’이라는 기상의 짧은 이력이 담겨 있다. 흐리고 비 내리고 우중충했지만, 이제는 다 갬. 맑다-맑음이 이런 서사를 내포하려면 맑아졌다-맑아졌음으로 쓰여야 할 텐데, 그럴 바에는 그냥 ‘갬’ 한 자를 취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오늘의 날씨를 하루짜리 ‘맑음’으로 고정하기보다, 지난날을 아울러 ‘갬’으로 펼쳐 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면 타인을 대하는 내 태도도 조금은 진중해지지 않을까 싶어서다. 만날 때마다 늘 밝은 표정을 짓는 저이가 밝아지기까지의 궤적, 그러니까 지금의 ‘갬’에 이른 역사를 존중하고 싶으니까.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