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여름] #15
지자체 이름이 명기된 공공 안내판이 바닥에 세워진 게 아니라, ‘깨’부터 ‘리’까지 한 글자씩 인쇄된 에이포 용지 다섯 장이 코팅 처리 되어 담벼락에 붙어 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깨끗한 거리다. 과장을 약간 보태자면 언제 어느 시간대에 가도 이곳은 다른 거리들보다 눈에 띄게 깔끔하다. 인근 행정 구역들 중 유독 이 구간만 공중도덕의 가호를 입고 영원불변의 청결미를 부여받았을 리는 만무하다. 환경직 공무원들의 미화 업무와는 별개로 개인 혹은 민간 단체가 특별히 돌보는 구역일 것이다.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공개 선언 효과(public commitment effect)의 공공적 사례로 이 거리를 제시하고 싶다. 내 목표를 남에게 호언하면 그 말에 책임을 지고자 더욱 가열히 노력하게 된다는 내적 기제. 내가 존함도 존안도 모르는 이 ‘깨끗한 거리’의 관리 주체(아마도 근처 주민일 것 같긴 한데⋯)는,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적으로 환경 미화를 선언하고는 부단히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스스로 거리의 주인이 된 셈이다. 게다가 그 주인 된 도리를 흐트러짐 없이 다하는 중이다. 이 정도면 거리뿐만이 아니라 자기 삶의 확실한 주인일 것임이 틀림없다. 그분(들)이 주인인 삶 안에도 필시 이러저러한 약속을 새긴 종이들이 붙어 있을 것만 같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