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가을] #16
모든 계절은 나는(지내어 넘기는) 것이다. 그래서 국어사전에는 ‘봄나기’, ‘여름나기’, ‘가을나기’, ‘겨울나기’가 공평히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 유독 봄과 가을만은 나는 계절일 뿐 아니라 타는 계절이기도 하다. 봄을 타고 가을을 탄다고는 말해도 여름을 탄다거나 겨울을 탄다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사실 사전에 수록된 관용구는 ‘봄(을) 타다’뿐이다. ‘봄철에 입맛이 없어지거나 몸이 나른해지고 파리해지다’, ‘봄기운 때문에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여 기분이 들뜨다’라는 두 가지 의미로 풀이된다. ‘봄’을 ‘가을’로 바꾸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가을(을) 타다’의 뜻과 얼추 들어맞는다. 그래서 추측을 해 보자면 이렇다. 봄 타는 마음이 먼저 있었고, 그와 참으로 유사한 가을 기운을 어찌 말로 나타내야 하나 고민하던 생활인들이 봄의 사례를 참고하여 ‘가을 타는 마음’이란 심상을 고안해 낸 게 아닐는지. 심지어 두 계절을 묶어 이르는 ‘봄가을’이라는 명사도 존재한다. ‘여름겨울’은 없다.
이 대목에서 또 추측을 더해 본다. 사람에게는 체온 조절 중추라는 기관이 있다. 더우면 땀이 나게 해 체열을 식히거나, 추우면 몸을 떨게 해 열을 생성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당연히 여름 폭염과 겨울 한파 때는 체온 조절 중추 기관이 바빠진다. 우리 몸이 고단해지는 것이다. 안 그래도 힘든 계절들을 ‘여름겨울’로 붙여 버린다면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다. 이에 비하면 따뜻한 봄과 선선한 가을은 비수기(?)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몸보다는 ‘마음’ 쪽에 신경이 더 쏠리지 않겠나 싶다. 두 계절은 서로 비슷한 기운을 공유하고 있으니 ‘봄가을’이라 짝지어도 정서적으로 크게 버겁지는 않을 터.
요컨대 여름과 겨울은 몸으로 견디는 계절, 봄과 가을은 마음으로 타는 계절인 셈이다. 여름이랑 겨울은 읽고 쓰고 말하기조차 힘드니 굳이 하나의 낱말로 엮기가 꺼려졌을 듯하고, 싱숭생숭하나마 마음 돌아볼 여유라도 챙기게 되는 봄이랑 가을은 겸사겸사 ‘봄가을’로 맺어 주어 우리 일상 가까이 둔 것이 아니려나. 참 섬세하고 정다운 우리말의 언어적 감수성.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