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가을] #19
십여 년 직장 생활을 그만둔 뒤 가장 생경한 풍경이 다름 아닌 ‘평일’이었다. 출퇴근 안 하는 월화수목금 내내 쩔쩔맸다. 휴가와 공휴일 외에 평일을 회사 안 가고 지내는 일상이 너무나 오래간만이었던 탓이다. 운전도 오래 쉬면 핸들 잡기조차 무서워지듯, 내 앞의 나날을 어찌 운용해야 하나 난감했다. 아쉬운 대로 회사원 때의 일과를 답습해 오전 아홉 시에는 무조건 컴퓨터 앞에 앉는 버릇을 들였다. 영화를 보든 게임을 하든 일단 앉았다. 그러다 슬슬 뭐라도 한번 생산해 내 보자는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늘 해 왔던 대로, 글을 썼다. 월급도 고료도 안 받는 자발적 무보수 노동. 그야말로 수요 없는 공급. 하루하루 아침나절을 그렇게 보내는 동안 텍스트 분량이 차차 쌓여 갔다. 그대로 두기가 아까워져서 출판사들에 투고를 하고 퇴짜를 맞고 그 와중에 한두 군데 긍정적 회신을 받아 출간 계약을 맺고, 공모전 수십 곳에 응모하고 까이고 어쩌다 또 한두 곳에서 당선 통보를 받고, 그럼에도 여전히 수입은 전무한데 이상하게 기분은 좋고, 그러다가는 또 숱한 거절과 낙선에 한동안 풀이 죽고, 그래도 사람이 밥은 먹어야지 하는 식으로 매일 아침 글쓰기 일과는 빼먹지 않으면서 어찌저찌 낯선 평일과 시나브로 익숙해져 갔다.
온종일 글만 쓰는 생활은 내 가벼운 기질상 좀이 쑤셔서 못 견디는 터라,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글은 딱 오전에만 썼다. 오후에는 카메라를 메고 밖으로 나갔다. 이른바 ‘핫플레이스’도 평일 오후는 한산한 편이라, 주말에 인산인해라 못 갔던 동네 예쁜 카페들을 옳다구나 하고 공략했다. 그렇게 찾아간 동네 고갯길의 한 베이커리 카페. 통유리 창마다 가을 단풍이 큼직큼직 드리워진 풍경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옥수수 샐러드 빵을 주문해 자리를 잡고는, 커피 마시다 일어나 창밖을 구경하고 빵 잘라 먹다 말고 사진을 찍으며 혼자 신나게 놀았다. 의식의 흐름대로, 남의 눈치도 시계도 안 보고 널찍한 카페 구석구석을 산책하듯 돌아다녔다. 그때 문득 ‘이 시간을 기록해 두자’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평일의 의식의 흐름(가제)’이라고 적어 놓았다. 퇴사 후 세 권째 단행본 기획의 시작이었다. 회사 관둔 지 벌써 3년째라니, 다시 돌아갈 수는 있을까, 점점 멀어지는 게 아닐까, 뭘 해서 돈을 벌지, 아놔, ⋯⋯.
이렇듯 평일의 의식의 흐름은 급출발⋅급선회⋅급발진⋅급정차의 연속이다. 그래도 언제나 출발지와 종착지가 같다는 점에 안심할 따름이다. 한참 신났다가 별안간 풀이 죽은 어떤 날에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으니까. 이튿날에도 언제나처럼 오전 일과를 마치고 어딘가로 나갔다가 다시 집에 왔으니까. 또 그다음 날에도⋯⋯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