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겨울] #16
웬 아저씨가 강가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가만 들으니 고함이 아니라 노래다. 말 그대로 고성방가. 자세히 보니 아저씨의 두 귀에 얹어진 건 귀도리가 아니라 헤드폰이다. 듣고 있는 곡을 따라 부르는 모양이다. 한겨울 강바람이 세차게 불 수록 노랫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누가 이기나 어디 끝까지 해 보자는 것 같다. 뒤에 세워진 자전거가 싸움인지 공연인지 모를 강과 사람의 ‘불고 부르는’ 쇼를 물끄러미 구경 중이다. 나도 멀찌감치서 합세해 앉는다.
귀성객들이 잠시 서울을 비운 설 명절 주간의 한강은 이리도 한갓지다. 강변 산책로 모퉁이에서 맘껏 소리껏 가창 무대를 펼쳐도 별일 안 벌어진다. 애당초 오가는 사람들 자체가 드물다 보니 ‘이 양반아 여기 전세 냈어?’ 하는 시비조의 불평도, ‘뭔 이유가 있으니 저러겠지’ 하는 관망적 시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저씨가 저렇게 소리를 질러도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까지는 미치지 못하는지, 다문다문 근처를 지나는 산보객과 라이더는 귀넘어듣기는커녕 곁눈 한 번 내어 주지 않고 앞만 보며 간다. 노래하는 아저씨한테 이목을 집중하는 이는 나뿐이다, 라는 판단이 서고 나니 자리를 떠나기가 쉽지 않다. 유일한 관객이 멋쩍게도 괜한 감상에 빠지고 만 셈. 정작 가수는 신경도 안 쓰는데.
아저씨가 자전거에 올라탄 뒤에야 나도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다. 그러고는 반대 방향으로, 각자의 갈 길로 작별. 노래방 가서 음치⋅박치⋅고음불가 친구들 괴성 들어 본 지도 옛날이고, 버스킹 가수 말고 ‘보통의 노래하는 존재’를 실물로 목격한 것도 대단히 오래간만이다. 그렇지, 사람이면 노래도 좀 부르면서 살아야지, 그게 맞지,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아저씨가 서 있던 자리에 가 본다. 수면에 비친 겨울 햇살이 하도 반짝거려 눈이 부시다. 아저씨가 노래 부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이런 무대에, 이런 조명에, 흥이 안 오르고 배기겠나. 게다가 오늘은 설 연휴 첫날인데.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