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겨울] #17
‘강의 가장자리에 잇닿아 있는 땅’을 강가라 한다. ‘가’가 ‘가장자리’다. 바다의 가장자리—바닷물과 땅이 닿은 데는 바닷가, 풀과 나무의 가장자리는 수풀가, 도로의 가장자리는 도롯가다. 강, 바다, 수풀, 도로는 보행로나 가로수길처럼 사람이 수시로 드나들지 못한다. 경관 보호 및 사고 방지 차원에서 출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강은 ‘크로스 스위밍 챌린지’ 행사나 인명 구조 목적이 아닌 한 일반인들의 입수가 불허되고, 아무리 인기 많은 해수욕장이라도 만조 때는 들어가지 못하며, 수풀에는 보통 ‘잔디를 밟지 마시오’ 같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기 마련이다. 차로는 횡단보도에서만, 보행자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을 때만 사람의 드나듦을 허용한다.
어쩌면 이러한 제약이 ‘가장자리의 세계’를 만든 게 아닐까 싶다. 강변 자전거 길, 동해⋅서해⋅남해의 해파랑길⋅서해랑길⋅남파랑길, 도심 속 푸섶길, 고속도로 휴게소와 졸음 쉼터 등은 강⋅바다⋅수풀⋅도로의 시점으로 보자면 전부 갓길 풍경이다. 사람들이 오다니면서 가녘에 조경과 상권이 형성된 셈이다. 언제나 그래 왔듯 강과 바다는 내내 고고하고, 초목은 흙바탕 위에 가만할 따름이며, 도로는 이러저러한 탈것들을 쉬지도 않고 들이다 보내다 멈추다 한다. 그 묵중하고 단조로운 생의 복판을 어떻게든 견뎌 내려면, 가장자리의 세계라도 얼마간 휘황하고 변화무쌍해야 할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유명한 광고 카피는 그러니까, 가장자리에 잠시 머물다 오라는 소리였던 것. 장거리 주행 중에 잠깐 차 세울 갓길조차 못 찾는다면⋯.
한강공원을 걷는다. 강복판의 먼 정경 못잖게 곱고 정온한 가장자리의 세계를 느리게 거닌다. 게이트볼장의 경쾌한 타구음이 구경꾼의 청각마저 기분 좋게 자극한다. 목청은 노년이나 소릿기만은 소년 소녀인 웃음들이 강바람에 떠다니고, 갈대와 물억새는 연신 흔들거리며 응원전을 벌인다. 세상의 가녘에서, 이기든 지든 모두 한편인 신나는 인생 경기가 펼쳐지는 중이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