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동네는 ‘아른하임’을 닮았다

[평일의 의식의 흐름. 겨울] #19

by 임재훈 N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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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백색 돌담 너머로 흡사 마터호른을 연상케 하는 우람한 등마루가 시허연 산주름을 펼치고 있다. 설봉이 꼭 독수리 머리 같아서 산등성이 또한 맹금류의 날갯죽지 형상으로 보인다. 어쩌면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신계의 독수리가 모종의 처분을 받아 저 설산으로 굳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돌담 위에는 알 세 개가 든 둥우리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산이 된 어미 새를 대신하여 알들을 보관하기로 맹세한 자의 시선인가, 이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의 1962년작 ⟨아른하임의 영토(The Domain of Arnheim)⟩를 어쭙잖게 묘사해 본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동명 단편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그려졌다는 작품. 원작은 ‘앨리슨’이라는 남성이 조경(造景)을 목적으로 천혜의 자연 경관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다. 그가 긴 여정 끝에 발견하는 장소가 바로 ‘아른하임’이다. 앨리슨은 창작자의 대표격 인물이고, 그가 천착하는 조경은 창작 행위의 상징이다. 경치를 아름답게 꾸미는 전문가가 ‘이미 아름다운 경치’를 조경 목표로 삼는다는 설정이 더할 나위 없이 소설적이다. 내 감상으로는, 창작자로서 자연 앞에 끝없이 겸손해지기 위해 그런 여행길에 오른 게 아닐까 싶다. 인위적 조경이 결코 완성해 낼 수 없는 경지인 아른하임이라는 성소에서, 앨리슨이 조경가로서 느꼈을 감정을 상상해 보게 된다. 자기 존재가 부정 당하는 기분이었을까.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을 것이다. 자신이 글과 말로만 지향해 왔던 예술적 세계관을, 실재하는 세계로 확인할 때의 희열 말이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의 고고학자 존스 박사가, 자기 삶의 나침반으로 삼았던 위인 아르키메데스를 타임 슬립 도중 우연히 만나고 하염없이 울먹이던 장면도 떠오른다.

포의 「아른하임의 영토」 속 앨리슨도, 마그리트의 ⟨아른하임의 영토⟩ 속 누군가의 시선도, 모두 자연이라는 거대한 신비를 향해 있다. 그 앞에선 ‘나’라는 일인칭 주어라든지, 이것과 저것을 가르고 순위 매기려는 시시한 분별심 따위는 전부 먼지에 불과하다. 소설과 그림 속에 실재하는 그 초현실의 세계를 내가 가급적 자주 건너갔다 오려는 이유다.

마그리트가 그린 독수리 설산은 소설 속 아른하임엔 없다. 즉 그것은 마그리트만의 아른하임이다. 그가 포의 소설에서 얻었다는 예술적 영감이란 아마도 ‘스스로 세계를 발견해 내기’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두 작가의 세계를 동경하는 나도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 동네는 아른하임을 닮았다, 이곳이 나의 아른하임이다, 라고.


The Domain of Arnheim-1.jpg 르네 마그리트 작 ⟨아른하임의 영토⟩ / 출처: The Magritte Shop(https://bitl.to/5E4i)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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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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