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겨울] #21
윤동주의 작품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시가 아닌 산문이다. 「별똥 떨어진 데」. 1939년 쓴 글로 추정된다고 한다. 첫 문장이 단출하다.
“밤이다.”
아무런 수사도 부연도 없이, 딱 세 글자만 첫 줄에 놓고 홀연히 행갈이를 한다. 본문 중반부엔 이런 문장도 등장한다.
“나무가 있다.”
역시나 또 행갈이.
‘밤’과 ‘나무’가 글이라는 풍경 안에 슬며시 놓이는 느낌이다. 밤이었던 글이, 밤인데 나무도 있는 글로 전개된다. 왜 밤인지, 어째서 나무가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그저 “밤이다.” “나무가 있다.”라고 중얼거리듯 서술하는 담담함. 화자의 그러한 기질이 독자에게 얼마간 긴장감과 서늘함을 안겨 준다. 말수 적은 누군가—심지어 그 사람은 시인이다.—와 단둘이 오밤중 들판에 남겨진 기분.
나는 특히 “나무가 있다.”를 좋아한다.
나무가 있다, 나무가 있다, 나무가 있다.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는다. 있다고 제시한 건 나무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 짧고 홀가분한 글월이 내 머릿속의 온갖 심상을 불러들이고는, 나무 앞에 멈춰 세운다. 떠올리기 싫은 지난날의 기억들, 오늘의 크고 작은 이슈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조차 못하겠는 불안감. 이 모든 게 나무 앞에서 와글와글 법석구니를 떨다가 일순 일제히 입을 다문다. 그곳에서 허락된 문장은 “나무가 있다.”라는 단 한 줄뿐이므로.
나는 또 낭독한다. 나무가 있다, 나무가 있다, 나무가 있다. 여래의 독경과 성모의 찬가에 욕마(欲魔)가 쓸려 날아가듯, 내 안에서 기어나와 나무 앞에 진을 치고 선 것들도 서서히 형체를 잃고 잔모래가 되어 간다. 나무가 일으킨 바람이 그 가루를 거두어 간다. 이윽고 남은 것은 다시, 나무 하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똑같은 문장이 제자리에 우뚝할 따름이다. “나무가 있다.”
설림(雪林)을 걷는다. 내딛는 발짝마다 나무가 있다. 눈길에 뒤세운 내 발자국들이 자꾸만 법석거린다. 그러나 이내 입을 다문다. 그것들이 날 쫓아오는 숲길은 어디든 다 나무 앞이기 때문이다. 바람결에 나뭇가지들이 잔눈발을 뿌린다. 지나온 길이 다시, 처음처럼 새하얘진다. 아무도 걸어오지 않은 듯 아무 흔적이 없다. 다만 나무가 있을 뿐.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