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겨울] #23
입춘도 지난 2월이다. 얼다 녹다 변덕을 부리던 동네 하천이 서서히 본모습을 되찾고 있다. 언 면이 눈에 띄게 얇아졌고, 빙렬 옷에 가려져 있던 물빛 살결이 떨 듯이 반짝거린다. 아직은 찬기가 버거운 모양이다. 그럼에도 가만 귀를 기울이면 가녈하나마 봄여름의 소릿결과 유사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녹고 흐르고 피어나려는 기세가 만동 한기를 힘껏 밀어내는 중이다.
꽃과 새잎을 시샘한 늦겨울이 스스로 물러나기 전 마지막 심술을 부리는 거라는 꽃샘추위와 잎샘추위는 순전히 인간 시선만을 반영한 표현이다. 계절이 서로를 미워할 리가. 사람도 아니고.
겨우내 축적된 결빙의 고정력⋅응집성과 해빙의 운동력⋅유체성이 부딪쳐 반짝 봄추위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구름 속 얼음 알갱이들과 물방울들이 충돌해 천둥을 일으키듯. 그러나 이 과정을 다 마쳐 녹고 나서도 봄의 물은 얼어 있던 때의 기운, 즉 스스로를 붙드는 끌힘을 완전히 버리진 않는다.
물에는 표면 장력(表面張力)이라는 게 있다. 표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분자들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자 생동력이다. 표면 장력이 없는 물은 이론상 기체에 가까운 상태가 되므로 방울지지도 못하고 다양한 컵의 모양대로 담길 수도 없으며 좁은 틈으로 스며드는 일도 불가능하다. 요컨대 물을 물이게 하는 힘은 두 가지다. 퍼져 흐르려는 힘과, 그런 자신을 붙들어 어떠한 형태로든 고정될 수 있도록 다그치는 힘. 이중의 에너지. 꼭 사람 같다.
곰곰 생각하니 첫 문장의 ‘얼다 녹다 변덕을 부리던’이라는 표현은 자연적이지도 인간적이지도 못한 것 같다. 얼고 녹는 일을 분별해 변덕스럽다고 볼 게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현상으로 대함이 옳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쨍한 하늘에서 마른천둥과 마른벼락이 치기도 하는 지구 환경의 일부로서, 어제 따뜻했던 사람이 오늘 차가워질 수도 있는 법 아니겠나.
오히려 한 온도만 내내 유지하는 생활인—비자연적 현상을 발견한다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테면 드라마 ⟨비밀의 숲⟩의 황시목(조승우 분)이나 ⟨나인 퍼즐⟩의 윤이나(김다미 분) 같은 인물. 그들은 너무 오랜 시간 고정력과 응집성만을 키워 왔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시금 운동력을 기르고 유체성을 되찾아 어디로든 잘 흐르고 스며들도록 관심을 기울여 준다면, 사회적 동물들의 무리 생활도 조금은 자연에 가까운 모습이 되지 않으려나.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