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눈옷을, 나는 겨울옷을

[평일의 의식의 흐름. 겨울] #24

by 임재훈 NOWer



스웨터들은 전부 울 코스로 빨고 코트와 패딩은 세탁소에 드라이를 맡겼다는 지인들 얘기를 듣고 나도 부랴부랴 겨울옷 정리를 단행했다. 일련의 세탁 절차를 마치고 붙박이장 안에 차곡히 걸어 두고 나니 괜히 흡족하다. 봄가을용 스웨이드 재킷 하나만 걸치고 혼자 점심 먹으러 집 밖에 나섰는데 웬걸, 아직은 춥다. 내의까지 벗고 나온 게 패착이었다. 아무리 봄이 코앞이지만, 그래도 내복 하의 정도는 입는 게 물러가는 겨울에 대한 예의였을 텐데. 재킷 지퍼를 턱밑까지 올리고 양손을 엇갈아 연신 두 팔뚝을 비벼 대며 식당을 물색한다. 뭐 먹지⋯. 고민이 길어질수록 몸에는 천천히 한기가 스민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중에 주택가 동넷집과 돼지불백 전문점 지붕 너머로 말간 산봉우리들이 보였다. 눈옷은 다 벗었지만 군데군데 희끗한 자욱눈 몇 점만은 아직 남겨 둔 모습이다. 그렇지, 산도 저러는데, 나도 내복 한 점은 입어야겠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내의 아랫도리만 얼른 챙겨 입고 나왔다. 그제야 체온이 딱 알맞게 유지되는 느낌. 산 앞에서 떳떳이 뭘 먹을까 고민하다, 기분 좋게 돼지국밥으로 결정!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저자 소개. 포트폴리오 / 인스타그램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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