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 이 글에는 영화 줄거리가 약간 포함돼 있습니다 -
“때때로 자신이 스파이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넌 말했었지. 늘 다른 사람인 체해야 하니까.”
(You told me that sometimes you felt like aspy, always had to pretend.)
_ <나이트 오브 컵스>의 한 대사
좀 서글픈 비유입니다만, 직장인의 상(像)을 저만치 적나라하게 드러내줄 낱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스파이’ 말입니다. 깊이 들어가지는 말도록 하지요. 경제간첩이나 산업간첩을 얘기하는 건 아니니까요. 신분 위장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요소 하나만 가져온 겁니다. 온전히 ‘나’의 모습으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회사가 실재한다면, 그런 곳의 일원인 분이 계신다면,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스파이라니요. 큰 잘못을 저지른 기분입니다.
위 인용한 대사가 어느 정도는 자신의 상황과 엇비슷하다고 공감한 분들을 위해서만, 일단은 그런 분들을 위해서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저도 해당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루 동안의 사무실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놀랄 만큼 자주 씁니다. 클라이언트나 상급자, 타 부서 직원에게 메일을 작성할 때는 습관적으로 ‘감사합니다’를 끝인사로 애용합니다. 딱히 내 입장에서 감사할 건 전혀 없습니다. 무턱대고 감사하다고 해버립니다. 전화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끊기가 괜스레 멋쩍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마디를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아야 맘이 편합니다. 이상하지요. 감사하지도 않으면서.
‘감사합니다’만큼은 아니지만 ‘죄송합니다’ 역시 2순위 정도로 빈도수가 잦습니다. 아무리 스스로를 돌아보아도 결코 죄송할 사태가 아닌데 그냥 해버립니다. 죄송하다고. 그러면 우좌지간 대화의 다음 스텝으로 넘어갑니다. 나로서는 대단히 복잡한 심경으로 발신한 ‘감사’와 ‘죄송’인데, 수신자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걸 알아챌 만큼 교감의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신분 위장이란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은데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 죄송할 게 없는데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 이런 것. 제임스 본드처럼 대놓고 “제 이름은 본드, 제임스 본드예요.”라고 신분을 밝히는 배짱은 가지지 못 했기에, 사무실의 하루는 액션보다는 다소 지루한 드라마 장르로 전개됩니다. 매일매일. 전편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플롯과 스토리라인이 펼쳐집니다. 가끔 경악스러운 반전이 있기도 합니다.(이를테면 분기별 구조 조정 계획 공고라든지, 입사 2개월 만에 정리 해고된 신입사원의 울분을 목격하게 되는 장면이라든지.) 그러나 이런 반전은 ‘결말’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 하는 단발성 이벤트로 그치는 게 일반적입니다. 실은, ‘결말’이라는 게 있기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은 간혹 나오기도 하는 듯한데, 전날을 (좋은 의미로) 능가하는 오늘은 여전히 제작 중인 듯합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영국 스파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회사원 같은 스파이들이 나옵니다. 대외 활동으로서의 ‘스파잉’은 이미 007 시리즈에서 충분히 보지 않았습니까, 라고 설득하는 듯, 스파이들끼리의 얽히고설킨 사정과 갈등을 그립니다. 그 모습이 꼭 어느 중견 기업의 한 부서를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코드명 ‘서커스’라 불리는 팀입니다. 부서장이라 할 만한 ‘콘트롤’(존 허트 분), 차장급이지 않을까 싶은 ‘조지 스마일리’(게리 올드먼 분), 그리고 과장과 대리들. 냉전 시기에 소련과 내통하며 기밀을 제공해온 ‘두더지’ 잡기 게임이 이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첩보물이라는 장르 영화로서의 개성을 무시한, 관객으로서 좀 무성의한 정리가 아닐까 걱정되는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재미는 두더지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데 있지 않습니다. 스파잉으로 밥벌이를 하는 스파이(전문직 종사자로 봐도 되려나요)들의 소심함을 엿보는 게 훨씬 흥미진진합니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동인물이 서커스 팀에서 퇴직(당)한 조지 스마일리라는 점 또한 볼거리지요. 그가 ‘잘린’ 뒤에 가장 먼저 한 일이 안경을 바꾼 것입니다. 새 안경을 착용한 것이지요. 이제는 다른 렌즈를 통해 인생을 보고 싶어서였을까요. 회사 생활 내내 발본색원에만 사용해야 했던, 스파잉이라는 직무에 특화된 간교한 ‘눈’과 ‘시력’을 순정하게 교체하고 돋구겠다는 의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새 눈을 갖게 된 조지 스마일리가 퇴사자, 즉 외부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전 직장 동료들을 조사합니다. 안에서안 보였던 것들이 바깥에 나오니 세세하게 포착되지요. 조직에 얽매인 몸이 아니니 활동에 제약도 받지않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반복적으로 회사 생활의 과거 에피소드들이 인서트컷으로 틈입합니다. 팀원들을 수사하고 심판해야 하는 상황이니, 조지는 그들의 옛 모습들을 역추적해보며 ‘두더지’의 단서를 포착하려 했을 것입니다. 과거를 돌이키는 일이란, 필연적으로 일말의 ‘추억’이라 할 만한 지점들을 관통하게 만들지요. 따뜻한 탁구공들이 가득한 상자에 손을 넣어 차가운 공 하나를 꺼내는 일인 겁니다. 따뜻함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애처가로 알려졌을 만큼 감성적인 조지가 그런 추억들에 대해 무심하기란 어려웠을 듯합니다. 조지처럼 퇴출당한 신세인 옛 동료 코니(캐시 버크)와의 만남이 그 정점이지요. 그녀는 콘트롤과 조지의 젊은 시절 사진들을 쓰다듬으며 “All my boys, all my lovely boys..”라고 부릅니다.
조지의 표정은 이따금 명철하고, 대부분은 피로에 절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무표정입니다. 오랜 스파이 생활 동안 눌어붙은 가면이겠지요. ‘나’를 숨기는 것이 일인 사람이, 가면을 쓴 채로 늙어버렸다고 말하면 다소 격정적이려나요.
그나마 연로함 덕분이랄까, 극도의 피로가 때때로 조지의 가면을 벗겨냅니다. 퇴사자로서 전 직장 일에 관여해야 하는 스트레스, 혹은 냉정과 옛정의 온도차에 따른 기진함일지 모르겠습니다. 한겨울 실외에서 실내로 옮겨가면 피부가 따끔거리곤하지요. 아예 차가워지지도, 완전히 훈훈해지지도 못 하는스파이의 비애랄까요. 퇴사를 했어도 여전히 세속의 일에 엮이고 마는 게 어쩐지 꼭 먼 훗날의 내 모습이지 않을까 해서 섬뜩합니다. 새 안경, 새 시선을 가졌는데, 세상은 새 세상이 아닌 겁니다.
두더지 색출에 성공한 조지는 차기 ‘콘트롤’로서 복직됩니다. 상석에 앉은 조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이야기는 끝나지요. 언젠가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조지는 또 새 안경을 맞출까요. 궁금해집니다.
글_나우어(NOWer)
_회사에 다니며 영화 리뷰를 씁니다.
_저작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성공한 영화들의 스토리텔링 키워드 분석> (피시스북 출판사)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 (달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