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
시각 디자인 영역에서 형태와 맥락은 짝이다. 형태가 맥락을 주조하고 맥락을 통해 형태의 명분이 세워진다. 앞 장에서 알아본 ‘예술청’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선’ 모티프와 ‘예술가들의 무한한 가능성’ 상징이 서로 맞물리듯. 글은 어떠한가. 글의 맥락이라는 표현이야 워낙 통상적이어서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는 않아도 될 듯한데, 그렇다면 글의 형태는 무엇일까. 글에도 형태라는 개념이 존재할까. 디자인 구성 요소로서 형태가 기능하는 바와 같이 한 편의 글 안에서도 그와 유사한 효과를 내는 것이 정말 있을까. 답을 구하기 위해 소설가 김훈의 오랜 산문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쓴 장편소설 『칼의 노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입니다. (중략) 나는 처음에 이것을 “꽃은 피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면서 고민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놨어요. 그러면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입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나의 문장과 소설은 몽매해집니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의미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를 구별해서 끌고 나가는 그런 전략이 있어야만 내가 원하고자 하는 문장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김훈, 『바다의 기별』, 생각의나무, 2008, 140쪽
조사 ‘이’와 ‘은’을 두고 며칠간 각고면려했다는 작가의 후일담이다. 이를 디자인 작업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말해 보면 어떨까. 디자이너-작가는 지금 ‘꽃의 피어남’이라는 이미지를 설계하고자 한다. 개화라는 “물리적 사실”에 기반한 ‘꽃이 피었다’ 형태, 객관화된 식물로서의 꽃 자체보다 꽃 앞에서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부각한 ‘꽃은 피었다’ 형태. 이 둘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한다. 소설 전반의 분위기와 부합하는 형태는 어느 쪽인가, 사용자-독자로 하여금 입체적인 감각 반응을 불러일으키려면 어떤 형태가 더 전략적인가. 아마도 이러한 사고 판단이 작가의 두뇌에서 일어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요컨대 디자인이 형태 요소를 고려하듯 글쓰기는 어휘를 운용한다. 작가가 인용문 마지막에 진언한 “문장 하나하나마다 의미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를 구별해서 끌고 나가는 그런 전략”을 디자이너의 디자인 전략과 등치 관계로 놓고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인용구의 ‘문장’ 대신 ‘형태’를 집어넣어도 대체로 참일 것이므로. 이런 면에서 글쓰기는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형태와 맥락을 운용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과 글쓰기를 ‘형태 운용과 맥락 생성’ 작업으로 동질화하여 받아들이게 된 것은 당연히 사후적 인식이다. 디자인 시장에서 글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히 사고 체계가 그런 식으로 세팅이 되었던 듯하다. 업무 특성상 그래픽 디자이너와 서체 디자이너 만날 일이 잦았는데,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추천 받은 책을 더듬더듬 읽어 가면서 ‘형태’라는 게 실로 만만한 개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형태 形態]
1. 명사 / 사물의 생김새나 모양.
2. 명사 / 어떠한 구조나 전체를 이루고 있는 구성체가 일정하게 갖추고 있는 모양.
3. 명사 / 부분이 모여서 된 전체가 아니라, 완전한 구조와 전체성을 지닌 통합된 전체로서의 형상과 상태.
국어사전에서 ‘형태’를 찾으면 이렇듯 세 가지 뜻풀이가 나온다. 예전에는 첫 번째 정의만으로 형태를 파악했다면, 디자인 쪽 일을 하면서부터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어의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역시나 업무와의 관련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형태를 ‘사물의 생김새나 모양’ 수준으로만 인지하는 시각으로는 도무지 그래픽 작업물과 타입페이스에 대한 성의 있는 글을 쓸 수 없었으니. 미국 현대 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코맥 매카시의 역작 『핏빛 자오선』이 그토록 지루했던 까닭은, 이 작품의 배경인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예습하지 않은 일개 독자의 불성실이었을 터.(여전히 재독에 실패한 상태다.) 이런 추태를 일하면서까지 부릴 수는 없었다.
― 「형태와 맥락 ②」로 이어집니다.
― 연재 일정을 기존의 ‘매주 토요일/일요일’에서 ‘매일’로 변경하였습니다.
― 메인 이미지: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의 1969년 앨범 『Shape of Things to Come』 재킷(출처: guerssen.com)
글쓴이. 임재훈
윤디자인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디자인 매체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에디터로 근무했다. 타입·타이포그래피 전문 계간지 『더 티(the T)』 9·10·11호의 편집진 일원으로 일했다. 경기도시공사, 한국언론진흥재단, 효성그룹 등 국내 기업 및 기관의 홍보 콘텐츠 제작에 참여했다. 저서로 『실무자를 위한 기업 홍보 콘텐츠 작법』과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공저로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와 『소셜 피플』(총 8부작)이 있다. 2023년 단편소설 「공동(空洞)」으로 스토리코스모스 신인 소설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