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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바이지은 May 09. 2022

서른 여섯살도 수시로 대학갈 수 있어요

그렇게 떠나고 싶던 고향이 나를 돕는다.

수능 공부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간 입시전형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아무리 열심히 읽어보아도 도통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역사적인 물수능 01학번인 나의 시절에는 수능 만점이 400점이었다. 입시전형은 수능과 내신 두가지였고,  원서는 자필로 써서 우편으로 보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 지금은 수능 만점은 500점, 등급이 있다. 전형은 학교별로 정시, 수시를 기본으로 교과전형, 학생부종합, 논술 등 별별 전형이 추가로 있어 입시전형 공부만 따로 해야할 지경이었다. 


어디서부터 알아봐야할지 막막하던 나는 일단 수만휘라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다. 거기가 대표 입시 정보 카페라고 했다. 차근차근 최신 글부터 쭈욱 훑어보았는데.. 표점이 어쩌고 등급이 어쩌고, 아무리 읽어보아도 이게 다 무슨 말일까. "12332 인데 합격 가능한가요?" 라는 글 제목에 답변은커녕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아니, 12332가 뭐야? 하고 열심히 서치를 해서 그게 수능 다섯과목의 등급이란 것을 깨닫고 나면 또 새로운 질문이 생기는 식이었다. 그럼 12332가 잘하는 거야 못하는 거야? 몇 점 맞으면 되는데? 


대학 모집요강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전주에 살고 있었으므로 내가 목표한 학교는 전북에 위치한 우석대와 원광대 한약학과였다. 요즘 입시는 대학별, 학과별로 각기 다른 입시요강을 가지고 있어서 수능점수로 줄 세우던 나때와는 많이 달랐다. 그래서 각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모집요강을 살펴보아야 했다.


우선 원광대, 우석대는 전라북도에 위치하고 있고, 지역인재 전형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지역인재 전형은 대학이 위치한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만 지원할 수 있다. 다행히 나는 고등학교를 군산에서 졸업했기에, 전라도 지역인재 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High-five OTeenagers! HOT를 좋아하던 가난한 소녀는 음악방송도 직접 볼 수 없고, 돈을 모아 콘서트라도 가려고 하면 차비까지 걱정해야 하는, 뭐 좋을 거 하나 없는 전라북도 소도시 군산이 늘 싫었었다. 어떻게든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라서, 학창시절 내내 목표는 군산을 떠나는 것이었고, 대학생이 됨과 동시에 그렇게 했다. 대학생이 되어 주말에 집에 간다고 하면 친구들은 시골에 잘 갔다오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나도 시골에 간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싫고 지긋지긋했던 시골 군산이, 그렇게 떠나고 싶던 고향이, 17년이 지난 후 나를 돕는다. 이렇게 기회를 준다. 세상사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지역인재전형은 학생부종합전형의 하나로 생기부와 자기소개서, 면접을 보고 수능최저등급을 만족해야 한다. 일반전형과 지역인재의 큰 차이점이라면 최저점수 반영 과목이었다. 일반전형이 국, 영, 수, 사탐/과탐 중 4과목을 반영한다면, 지역인재 전형은 3과목 반영이었다. 3과목 총 9등급을 맞추면 됐다. 그러니까 이말이 무슨 말이냐면, 내가 지역인재 전형으로 지원을 한다면, 수능에서 수학을 포기해도 된다는 말이다. 학창시절 내내 날 괴롭히던 그 수학을 빼고 국어와 영어, 사탐이나 과탐만 선택해서 각 3등급 안으로 들어오면 된다! 그리고 영어는 절대평가이다!! 아니 이런 세상이 있다니!!! 


현역들아! 너희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나의 이 기쁨을! 라떼는 말이야~~ 국어, 영어, 수학, 사탐 과탐에 선택까지 전과목을 다 봐야 했다고! 아니 이거 공부하기 너무 편한 거 아니야?! 꼰대가 되어 마시는 라떼맛이 아주 좋았다. 어쩐지 신나는 기분이었다. 국어는 내가 이래봬도 10년 가까이 방송작가였는데 기본은 하겠지! 영어도 토익 공부한 짬이 있으니 그걸 믿어본다! 문제는 탐구과목이었는데, 탐구과목 중에서 두과목을 골라야했다. 사탐은 암기과목인데 다들 잘해서 어지간해서 좋은 등급 받기가 힘들다고 하니, 과탐 중 생명과학을 선택하기로 했다. 과탐 과목들 중에서 현역 때 제일 잘했고, 문과 출신인 내게 가장 잘 맞는 과목이라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는 것을 공부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수능 반영 과목이 줄어든만큼 각 교과목 수준이 아주 많이 높아진 것이다. 세상사 어느 시대에 태어나든 살기가 참 쉽지 않다. 그래도 어쩌나. 이미 하기로 한 거, 이제 뒤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유는 바로 생기부 때문이었다. 요즘 친구들은 목표 대학에 맞춰 차곡차곡 활동들을 쌓아간다는데,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생기부만 몇십장이라는데, 2001년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고작 서너장 뿐이었다. 거기에는 간단한 인적사항과 담임선생님의 한줄짜리 코멘트, 고등학교 3년 성적만 기재되어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이 얇디 얆은 생기부로 과연 나는 학생부종합전형을 뚫을 수 있을 것인가! 머리가 아파왔지만 고민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그런 고민도 수능최저등급이나 맞추고 할 일이다.


기생충에서 기우는 공부는 기세라고 했다. 그것은 정말 맞는 말이다. 처음 수능 공부를 하기로 했을 때에는 안돼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돼도 좋으니까 적당히 하는 건 안하느니만 못하지 않은가. 은연 중에 성공할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최악이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합격한다 생각하고 밀어붙이기로 했다. 그것이 곧 기세가 될 것이다. 근자감은 이럴 때 쓸모가 있다. 수능 공부한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아무튼, 생기부 내역이 빈약하기 그지 없지만 어쨌든!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 기세를 몰아붙혀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무조건 된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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