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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바이지은 May 09. 2022

합격을 축하합니다!

서른여섯, 세살배기 애엄마도 할 수 있는 일

아무도 모르게 수능을 보고 나서, 거사가 끝났다는 시원함도 잠시, 하루하루 가슴이 콩닥콩닥 불안불안,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수험표 뒤에 적어온 답안으로 가채점을 했는데 각 입시학원에서 발표하는 예상 등급에 아슬아슬하게 걸리는 성적 때문이었다. 수능최저 등급인 3과목 합 9등급을 맞추려면 각 과목당 3등급 이상을 맞아야 했는데, 예상 3등급 점수가 내 점수와 거의 맞닿아 있던 것이다. 


답안을 하나라도 잘못 적어왔거나, 마킹을 잘못했다거나, 어떤 실수가 있어서 곧바로 4등급 직행하면 어떡하지? 예상 등급 적중률은 얼마나 되는거야? 매일매일 시간 날 때마다 틈틈히, 가족들 자는 사이, 몰래몰래 휴대폰 불빛을 밝히며 입시정보 카페를 들락날락,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그리고 드디어 수능 성적이 발표되는 날! 나이 서른 여섯에, 실로 오랜만에, 마치 짝사랑하던 이에게서 고백이라도 받은 마냥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환희의 설렘을 경험했다. 영어 2등급,  국어 2점 높은 3등급, 생명과학도 한 문제 차이로 3등급! 정말 아슬아슬하게 한문제라도 미끄러졌으면 어찌되었을지 모르는 점수였다. 찍은 거 푼 거 플러스 마이너스 해서 이렇게 극적인 점수가 맞춰졌다는 것은 전적으로 운이었다. 그때 확실한 느낌이 왔다. 내가 합격할 운인가!


그리고 다가온 극비의 면접날, 아이를 등원시키고 아무도 모르게 면접을 보러 갔다. 인성면접이었기에 면접 내용은 간단한 자기소개와 지원동기, 앞으로의 포부 같은 것들이었다. 난 나이가 많은 애엄마 지원자이었기에, 이전에 무엇을 했는지, 학교 다닐 때 아이 육아는 어떻게 할건지에 대해 물어와 답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라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저를 뽑아주신다면! 열심히 공부하여서! 좋은 성과를 내어!
제 이름이 오르내리게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를 보실 때마다 '아 저 학생은 내가 뽑았지' 하며
뿌듯해할 수 있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그때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어떻게 저런 말을 당당히 말했을 수가 있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다. 이 말을 들은 면접관 교수님들이 웃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만큼 간절했다- 정도로 서둘러 포장하고 넘어가는 창피한 기억이다. 지금은 졸업을 했으므로, 저 말에 대해 책임을 졌느냐고 묻는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겠습니다. 애 엄마가 대학생이 되고 보니 겨우겨우 커리큘럼 따라가기도 매우 벅찼다. 졸업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시간이 흘러, 드디어 합격자 발표날. 눈이 번떡 떠지고, 떨리는 마음으로 합격자 조회를 했다. 그리고 엉엉 울었다. 눈물 콧물이 너무 나서 욕실에 걸린 수건까지 끌어안고 울었다. 합격자가 된 것이다. 서른 살 중반의 나이에 경험하는 소중한 성취의 기쁨이었다. 화면에 뜬 합격자 발표 화면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간의 고생이 다 보상받는 기분이랄까. 큰 산을 하나 넘고 이제 좀 쉴 수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지난 사년간 되는 게 하나 없다 생각했던 시간들이 가슴 속을 훑고 지나갔다. 내 인생에서 결혼이란 결정을 하고 주부가 되고 부모가 되면서 한켠으로 버려지는 내 인생, 내 일, 나만의 것에 대해 생각하던 시절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서야 남편과 가족들에게 서프라이즈 소식을 전했다.


"제가 그동안 남몰래 입시 준비를 하여 원광대 한약학과 라는 곳에 원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합격생이 되었습니다. 축하해주세요!"



내가 이렇게 남 모르게 노력했고 해냈노라고 말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가족들이 무척이나 축복해주었고, 그렇게 나는 서른 여섯 애엄마 수험생에서, 서른 일곱 새내기 애엄마 만학도가 되었다. 그렇게 인생의 한 챕터가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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