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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바이지은 May 17. 2022

아이를 키우며 대학생활을 한다는 것

서른일곱 애엄마의 대학생활기

실로 오랜만에 대학생이 되어 캠퍼스를 누비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발그레 상기된 학생들의 맑은 얼굴과 오리엔테이션, 개강총회, 엠티 같은 새 학기 행사들이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물론, 파릇파릇한 대학 풍경에 삼십대 중반 만학도의 모습이 썩 어울리는 그림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대학교가 풍기는 특유의 생기는 강렬했다. 진짜 조금만 용기를 냈더라면 두팔을 쫙 벌리고 투스텝을 밟으며 교정을 활보했을 것이다.


봄이 되면 학교 호수 수덕호 주변에 벚꽃이 예쁘게 폈다. 이 벚꽃이 피면 어김없이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늘 그렇듯이 학기초 신입생 수업의 시작은 자기소개였다.  


"저는요. 나이는 서른 일곱이고요. 결혼했고, 네 살 딸아이도 있어요. 전에는 방송국에서 작가로 일하다가 결혼하고 전주에 살게 되면서 새로운 직업을 알아보게 되었고요. 한약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어 입시 준비를 하고 이렇게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는데, 여러분과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니 서로 의지하며 재밌게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고 내려오면 마음씨 좋은 젊은 동기생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쪼그라져 있었다. 입시 준비를 할 때는 합격만 하면 꽃길이 펼쳐질 것만 같았는데, 막상 학교를 다니려니 덜컥 겁이 났다. 점점 꺼져가는 기억력으로 수업은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집에 가면 육아 출근인데 과연 과제는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무엇보다 스무 살 아이들의 대학생활에 찬물을 끼얹는 민폐 존재가 되면 어찌할지,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과 특성상 나이가 있는 학생들이 제법 많다는 것이었다. 사회생활을 해볼만큼 해보고 아 이건 아니구나 깨달음을 얻은 삼사십 대가 한 학번에 20% 정도 있었다. 우리 학번에서는 내가 나이 넘버 투였지만, 넘버원이 아닌 게 어딘가. 거기다 공무원 은퇴 후 제2의 삶을 준비하는 70대 선배님도 계셨다! 그분은 내가 공부하기 힘들때마다 작동시키는 나의 용기 버튼이 되었다. 그럼에도, 때때로 난관은 찾아왔다.


스스로 최선의 용기를 내어 늦은 나이에 뭔갈 이뤄냈다 하더라도,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어쩔  없는 위축감을 남긴다. 이것은 타인의 시선에 신경쓰는  성향 탓이기도 하다. 동아리 가입하란 이야길 들어도,  내가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 아이들 사이에 껴서 동아리 활동을 해도 되나 싶고, 수업시간에 질문이 들어와서 대답을 못하면,   나이에 이것도 모르고 너무 창피하다 싶은 거다. 남들이 뭐라  해도 나도 모르게  안에 자리 잡은 위축감은 대학생활 내내 조금씩 냄새를 풍겼다. 하고 싶은  내색하지 못했고, 무얼 해도 당당하지 못했달까.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지만, 그렇다고 그게 늦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때문에 인생의 기로에서 미래의 삶을 뒤흔들 중요한 선택을  때에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최선의 선택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하나다. 그래야 고생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고생들.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에는 남편에게 등원을 맡기고 아이보다 먼저 집을 나섰다. 한약학과는 타과에 비해 졸업 이수학점이 많은 편이라 중고등학교 시간표처럼 시간표가 꽉꽉 채워지는 편이었다. 수업이 늦게 끝나면 다섯 시 반이라서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갔다. 동기들과 밥을 먹고 술 한잔 하는 여유 따윈 없다. 집에는 귀여운 네 살 아이가 있고, 남편이 있고,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밥을 해 먹고, 치우고, 아이와 놀아주다, 씻기고, 재우고 나서 내 할 일을 해야지!!! 비장하게 다짐하지만 현실은 피곤에 절어 애랑 같이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밤새 놀고 수업 들어갔다가 또 노는 그런 체력은 서른 일곱 애엄마에게 없다. 그럼 과제와 공부는 언제 하느냐. 어스름한 새벽,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눈치챈 내 몸이 스스로 각성하여 깜짝 놀라면서 시작된다.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면 새벽이었다. 진짜 고3 때도 안 해본 새벽공부를 지겹게 했다. 시험기간엔 공부를 하나도 못한 채로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남편에게 아이 등원을 맡기고 학교 도서관에 가서 벼락치기를 하다 시험을 보곤 했다. 강조하지만 깨어있는 아이와 함께 있는 공간에서 공부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것도 아이가 애착을 형성한 대상이 엄마라면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강하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한다는 건 무척 재미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안 가본 길을 간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며, 그것이 나에게 주는 가치도 충분하다. 내가 원하던 일이라면 더욱더! 그래서 난 용기를 주고 싶다. 세상에 늦은 일이란 없다. 다만, 고생을 좀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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