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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바이지은 May 24. 2022

엄마도 어린이집에 다닌다?!

대학생 엄마가 네 살 아이에게 대학교가 뭔지 설명하는 법.

내가 다시 대학교 신입생이 되었을 , 딸아이는  살이었다. 10월생이어서 아직  3세도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집에 있던 엄마가 요즘 자기보다 먼저 나가고 일상이 바빠지기 시작했는데, 아이는 엄마가 어디에 가는지 아무리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했다. 마침 "?"라는 무한루프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을 때라 욱 그랬다.


"엄마 학교 갔다 올게~ 오늘 하루 잘 보내고, 있다가 만나자!"

"학교?"

", 학교. 학교에서 공부하고 오는 거야

"공부?"

", 엄마 공부 열심히 하고 올게~"

"학교, 공부??"

", 엄마가 이제 학교에 다니게 되어서 가서 공부해야 하거든~"

"왜애?"

"어, 엄마 열심히 공부해야 일할 수 있거든~"

"왜애?"

", 그래야 엄마가 맛있는  줄 수 있지~"


아,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의 눈은 얼마나 맑은가. 깨끗하게 빛나는 아이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가 이내 눈물이 고이면 그날은 비상사태다. 아이는 '나는 지금도 맛있는 거를 많이 먹는데, 아무튼 나는 학교가 어딘지 모르겠고, 일단 너는 어디든 안 갔으면 좋겠다'는 결연한 자세로 가지 말라며 떼를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난 울고부는 아이를 뒤로 하고 집을 나와야 했는데, 이게 엄마의 마음이구나 싶었다. 마음이 쓰렸다. 그런 날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아이는 아무리 설명해줘도 학교가 뭐하는 곳인지, 공부가 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네 살 아이에겐 집과 동네, 어린이집이 우주의 전부인데  대학교가 뭔지 거기서 뭘 하는지 어찌 알겠는가. 아이의 눈높이가 필요하는 생각에, 결국 이렇게 말했다.


"엄마도 너처럼 어린이집에 다니는 거야~
거기는 특별히 어른이 다니는 곳인데, 책도 읽고 종이에 글씨도 쓰고 그런다?
엄마 선생님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서 얼른 가봐야 해~"


 

엄마도 어린이집에 간다고 하니, 그제야 아이의 경직된 얼굴이 사르르 풀렸다.


"어린이집?"

"응! 우리 똑같네?! 너두 어린이집 다니구, 엄마도 어린이집 다니고! 우리 찌찌뽕이다!"

"응! 찌찌뽕!!"

"그럼 우리 각자 잘 다녀오자~~"


그렇게 평화가 찾아왔다. 아이는 엄마가 어디에 가는지 곧잘 이해했고, 질문도 쏟아졌다. 엄마 친구는 누구누구인지, 엄마 어린이집에도 놀잇감이 많은지, 색종이도 많은지, 오늘은 밖에 나가 놀았는지 안 놀았는지 물었다. 시험기간에 공부할 때는 엄마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이 알려준 걸 잘 기억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시간이 있다고 일러주었다. 그랬더니 나중엔 시험을 봤다고 하면 "엄마 시험 잘 봤어?" 묻고는, 전해들은 엄마 친구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며 그 친구도 시험 잘 봤는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가 다닌다는 어린이집에 무척이나 가보고 싶어 했다. 나도 언젠가는 아이를 학교에 데려가 구경시켜주고 함께 교정을 거닐어보고 싶었는데, 좀처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내가 2학년이 되고,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야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방학 중이라 학교가 한산하여 더없이 좋았다.

 

어느 여름, 엄마 어린이집이 어딘지 궁금해하던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갔다. 아이는 무척 신이 났다.


쪼꼬만 아이가 대학교 캠퍼스를 누비는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귀여웠다. 꼬마 발걸음이 아주 가벼웠다. 쉼 없이 노래를 부르고, 드넓은 캠퍼스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콩콩 점프도 하고 춤도 췄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서부터는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다녔으므로, 나도 덩달아 유치원생으로 진급했는데, 엄마 유치원 이쁘다며 자기 유치원도 이렇게 이뻤으면 좋겠다고 했다. 호수에 물고기도 엄청 많이 봤다고 우와 우와를 연발했다. 약대 건물과 교실, 실습한약국과 도서관도 구경시켜주었다. 엄마가 여기서 공부하는 거냐며, 책상이 아주 크다고 했다. 신기한 것은 이날 이후, 내가 학교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 스스로도 '엄마 학교'라고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이도 자기가 다니는 유치원과 엄마가 다니는 학교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그리하여 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졸업하고, 비로소 학교를 학교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 입학한 지 1년 반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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