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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바이지은 May 20. 2022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서른일곱, 스물. 17살 나이차는 극복될 수 있는가!

늦은 나이에 수능을 보고, 다시 대학에 입학한 나이가 서른일곱이었다. 스무 살 신입생 친구들과 무려 17살 차이가 났다. 세상에, 17살이라니! 실감 나지 않는 숫자였다.


그러다 보니 학기 초엔 삼십 대 친구들과 친해지려 노력했다. 아니, 그건 노력이라기보다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와 비슷한 종족을 찾는 일종의 생존본능이랄까. 교실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삼십 대 또래들이 앉아있는 구역을 훅 훑고 자리를 잡았다. 그곳이 내 영혼의 안식처인 양, 거기에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집에 귀여운 네 살 아이가 있다 보니 수업 외 학교생활은 남의 이야기였기에, 동기들 외 아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묻고 다녔다. 나랑 동갑인 여학우를 알고 있는지! 혹시 결혼한 친구들은 있는지! 호옥~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없는지 말이다.


다행히 선배 중에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를 소개받았고, 학교 다니는 내내 심적으로 의지하며 지낼 수 있었다. 이 언니도 결혼 후 입시 준비를 한 케이스여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동기 중에는 나처럼 아이를 키우며 학교생활을 하는 애엄마 만학도가 있었다! 나와 비슷한 상황의 친구를 만나 너무 기뻤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여름이 오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어린아이를 친정엄마와 남편에게 맡기고, 홀로 익산에 내려와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니는 친구였는데, 아이와 떨어져 있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학교와 집이 멀어 자취를 해야 했거나, 남편의 육아 지원이 없었다면 공부를 이어가지 못했을 거다. 그리하여 애를 키우며 학교를 다니는 애엄마 학생은 나 하나만 남게 되었다. 애아빠 학생들은 더러 있었는데 애엄마 학생은 나 외에 없었다. 그만큼 여자가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면서 학교를 다닌다는 게 어렵다는 의미일까.


조금 외롭다는 생각을 했다. 동질감이 주는 위안과 안도감이 무엇인지 깊이 깨달았다. 나의 인간관계가 두 층으로 쫘-악 갈라졌다. 그런데 어느 층에서도 완벽히 녹아들지 못하고 물 위에 기름처럼 동동 떠있는 느낌이었다. 학생도 아줌마도 아닌 그 무엇이랄까. 아이 엄마들과 키즈카페에 가고 유치원 이야기, 시댁 친정 이야기, 남편 이야기로 수다를 떨다가, 다음날이 되면 스무 살 아이들 틈에서 누가 누구랑 사귀는지, 어디 코노가 좋은지, 어느 술집이 안주가 맛있는지 류의 대화 속에 갑분싸, 마상, 커엽네, JMT 같은 젊은이들의 낯선 언어에도 짐짓 아는 척을 하는 것이다. 하루는 늙은이들은 문자를 쓸 때 줄눈(~~)을 많이 쓴다는 말을 듣고 뜨끔했다. 아니, 근데~ 말 끝에 줄눈을 안 쓰면~ 너무 딱딱하지 않은가 말이다~~?!!


아, 그리고 어느 날은 스무 살 남자 녀석이 내 차를 얻어타더니,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나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보고 "사실 이모뻘이죠." 이러는 게 아닌가?! 명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나이가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짜 '이모'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몰랐다. 아니다. 실은 느낌적인 느낌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날 듯하면 서둘러 덮어두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단어를 현실로 듣고 보니 머리가 아득해졌다. 아아, 나는 정녕 학교 친구가 아니라 학교 이모였던 것인가!

  

그런데, 내 이런 걱정과 고뇌와 시름과는 별개로 우주는 꿋꿋이 제 할 일을 했다. 혼돈의 봄을 보내는 틈에 나도 모르는 사이 인연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학과 공부가 한자로 이루어지다 보니, 교과서 한 장 읽는 것도 쉽지 않던 시절, 공강 시간에 함께 스터디를 하자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졸업할 때까지 나의 든든한 친구이자, 긴 여정의 동반자,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 중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내 또래는 없다. 가장 나이 많은 친구가 나보다 9살 어린 H, 그리고 11살 어린 K,  15살 어린 J, 17살 어린 친구 M까지! 모두 당시 삼십 대 이하였다.


나는 아직도 그들과  지내고 있다. 단톡방은 수시로 알람이 울리고, 같이 캠핑도 하고,  딸과 남편까지 함께 만나 고기를 굽기도 하고, 숙소를 잡아 1 2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어서 친해졌다기보다는, 함께 하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친구가 되었다. 나를 서슴없이 언니, 누나라 불러주는 사랑스러운 친구들. 9 어린 H 졸업준비위원회의 장을 맡을 정도로 믿음직하고 똑똑하면서도 강단 있는 친구이고, 11 어린 K  모임의 유일한 남자로 아주 부드러운 성격을 지녔고 요리실력이 수준급이다. 15 어린 J 성실하고 착하고 귀엽고 예쁘고, 나와 17 차이 나는 막내 M 뭐든 잘 해내고 우리 중에서 아는  제일 많아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생활 꿀팁, 부동산 정보까지 알려줄 정도여서 내가 인생 2 회차라 부른다.


그러니까 결론은, 친구가 되는 데에 나이는  장애물이 아니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아니다. 왜냐면 체력 밸런스가  맞는. 어디 같이 놀러 가면 제일 먼저 자러 가는  언니가 나니까. 하지만 그게 친구가 되는  가로막는 걸림돌은 아니다. 함께 보내는 시간각자의 성향, 서로를 향한 진실된 마음은 나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건 내가 해봐서 확실하게 말할  있다. 17 나이차도 친구가   있다! 서로를 가까이 두고 오래 보고 싶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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