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섯손가락 Jul 13. 2024

얄미운 메추라기와 신실한 청년

∎4일차(12장~15장)


공작부인 자신은 30여 년 전에 친척 아주머니의 중매로 결혼했다... (중략) 그러나 그녀는 자기 딸들을 결혼시키면서 평범하게 보였던 그 일이 결코 쉽고 간단한 게 아니라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중략) 그녀는 그때와 똑같은 두려움과 의심을 겪고 있으며, 남편과는 두 딸을 결혼시킬 때보다 더 심하게 싸우고 있었다. (103)


“그럼요, 어마. 꼭 그렇게 할게요.” 키티는 얼굴을 붉히며 어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중략) ‘그래, 저런 눈으로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어.’ 어머니는 딸의 흥분과 행복에 미소를 지었다. 공작부인은 지금 가여운 딸아이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녀 자신에게 얼마나 엄청나고 중요한 문제로 보일까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107)


저녁 식사가 끝나고 야회가 시작되기까지, 키티는 전투를 앞둔 젊은이가 느낄 법한 그런 감정을 맛보았다. 그녀는 심장이 팔딱팔딱 뛰어 아무것도 차분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 두 사람이 처음으로 부딪칠 오늘밤의 야회가 그녀의 운명을 결정짓는 순간이 될 거라고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속에 그 두 사람을 따로따로 그려 보기도 하고, 함께 그려 보기도 했다. 지난날을 생각하자, 기쁘고 부드러운 느낌과 함께 레빈과 관련된 추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추억, 죽은 오빠와 레빈의 우정에 관한 추억은 그와 그녀의 관계에 특별한 시적인 아름다움을 어했다. 그녀를 향한 그의 사랑 --- 그녀는 이것을 확신했다. --- 은 그녀에게 뿌듯함과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래서 레빈을 떠올리 때면 마음이 편했다. 브론스키는 대단히 사교적이고 침착한 사람이었지만, 브론스키에 대한 기억에는 레빈과 달리 어쩐지 거북한 느낌이 뒤섞였다. 레빈을 생각할 때는 너무나 담백하고 깨끗한 기분이 드는데, 브론스키를 떠올릴 때는 그가 아닌 – 그는 매우 담백하고 기분 좋은 사람이다. - 그녀 자신에게 어떤 위선이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대신 브론스키와 함께할 미래를 떠올리자, 이내 그녀 앞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행복한 전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레빈과의 미래를 떠올리자 앞날이 안개처럼 흐릿해 보일 뿐이었다. 


야회복을 입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가 거울을 보았을 때, 그녀는 오늘이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멋진 날들 가운데 하루라는 것을, 자신이 힘으로 충만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기뻐했다. 그녀에게는 눈앞에 놓인 일을 위해 이런 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녀는 자신의 동작에서 외적인 평온과 자유로운 우아함을 느꼈다. (108~109)


‘아, 정말로 이 이야기를 내 입으로 그에게 해야만 하나?’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그에게 뭐라고 하지?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까? 그건 사실이 아닐 텐데. 그럼 뭐라고 하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아냐, 난 그렇게 못해. 달아나야지. 달아날 테야.’


그녀의 발걸음은 이미 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발소리가 들렸다. ‘아냐! 이건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야. 내가 두려워할 게 뭐가 있어? 난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어. 될 대로 되라지! 사실대로 말할 거야. 그와 이렇게 거북한 상태로 있을 순 없어. 그가 오는구나.’ 그녀는 그의 늠름하면서도 주눅든 모습과 그녀를 향한 빛나는 눈동자를 보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110)


그녀는 그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무겁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황홀한 기쁨을 느꼈다. 행복감이 그녀의 영혼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사랑의 말이 그녀에게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투명하고 진실한 눈으로 레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절망적인 얼굴을 보며 황급히 대답했다. 


“그럴 수 없어요...... 용서하세요......”


1분 전만 해도 그녀는 그에게 얼마나 가까운 존재였으며 그의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던가!

“어쩔 도리가 없군요.”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을 내뱉었다. (111)


브론스키는 적당한 키에 단단한 체격을 갖춘 사내였다. 얼굴은 선하고 아름다우며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느낌을 주었다. 얼굴과 몸매, 짧게 깎은 검은 머리칼과 깨끗이 면도한 턱, 넉넉히 재단한 새로 맞춘 군복, 그 모든 것이 단정하면서도 우아했다. 브론스키는 응접실로 들어오던 부인에게 길을 내준 뒤, 공작부인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다시 키티에게 다가갔다. 


그가 그녀에게 다가가는 순간, 그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특별한 부드러움으로 빛나기 시작햇다. 그리고 보일 듯 말 듯한 행복한 미소를, 겸손하면서도 승리감에 도취된(레빈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미소를 띤 채, 정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녀에게 몸을 굽히며 작지만 넓은 손을 내밀었다. (116)


키티는 테이블을 가져오려고 일어섰다. 그리고 레빈 옆을 지나치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그가 가여워 견딜 수 없었다. 더구나 그를 불행하게 한 원인이 자기에게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날 용서할 수 있다면, 제발 용서하세요.’ 그녀의 눈이 그렇게 말했다. ‘난 너무 행복하답니다.’

‘모두를 증오합니다. 당신도, 나도.’ 그의 눈은 그렇게 답했다. (121)


파티가 끝난 후, 키티는 어머니에게 레빈과 나눈 대화를 이야기했다. 레빈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연민을 느끼면서도, 그녀는 자기가 청혼을 받았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올바로 처신했다는 데 한 치의 의혹도 품지 않았다. 그러나 침대에 누운 그녀는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나의 인상이 집요하게 그녀를 괴롭혔다. 그것은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눈으로는 그녀와 브론스키를 좇던 레빈의 얼굴이었다. 눈썹을 찌푸린 채 우울하게 그들을 바라보던 쓸쓸한 눈동자..... 그러자 그가 너무도 가엽게 느껴져 눈에서 쓸쓸한 눈동자...... 그러자 그가 너무도 가엽게 느껴져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곧 그녀는 자신이 레빈과 맞바꾼 남자를 생각했다. 남자다운 강인한 얼굴, 점잖고 침착한 태도, 무슨 일이 있든 누구를 만나든 언제나 부드럽게 빛나는 친절한 성품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가 자기에게 보여 준 사랑을 떠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영혼에 또다시 행복이 찾아들었다.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베개를 베고 누웠다. ’가엾고 불쌍해. 그래도 어쩌겠어? 내 잘못이 아닌걸.‘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면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다른 말을 속삭였다. 자신이 후회하는 게 레빈을 유혹한 것인지, 그의 청혼을 거절한 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행복은 그런 의혹으로 깨지고 말았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그녀는 계속 이 말을 중얼거리다 잠이 들었다. (123~124)


“....오늘처럼 신랑감들만 불러 모으지 말고. 나는 그런 걸 보기만 해도 역겹고 불쾌하오. 당신은 딸아이의 머리를 붕 뜨게 만들었더군. 레빈이 천배나 훌륭한 사람이오.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그 멋쟁이 녀석 따위는 기계로 얼마든지 찍어 낼 수 있소. 그런 놈들은 다들 똑같아. 하나 같이 쓰레기라고! 그 녀석이 왕실의 혈통이라 해도 말이오. 내 딸은 조금도 부족한 데가 없어!”(125)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 거요. 그것을 보는 눈은 여자들이 아니라 우리 남자들에게 있단 말이오. 내 눈에는 진지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 보이오. 바로 레빈이지. 그리고 내 눈에는 잠시 즐기기만 하려는 얄미운 메추라기 새끼도 보인다오.”(126)     




∎<단상>


키티의 어머니, 공작부인은 딸이 셋이다. 벌써 두 딸은 결혼을 시켰고 키티는 셋째딸이다. 경험이 있고 더군다나 처음이 아닌데도 딸을 결혼시키려고 사윗감을 고려면서 염려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절실하다. 심지어 30년 전, 자신이 결혼할 때에도 너무나 쉽고 간단했던 일이었는데도 그렇다. 두 딸을 결혼시킬 때도 똑같은 두려움과 의심을 겪었지만 이번에는 더 심하다. 남편과도 더 심하게 싸우고 부딪힌다. 그 사이 시대가 조금씩 변하여 중매결혼에서 연애결혼이 자연스러워지면서 부모들 의견이 줄어들고 본인들 생각과 판단이 더 크게 작용하게 됨으로써 더욱 신경쓰고 노심초사하게 된다. 이런 부모의 마음이 담긴 문장을 읽을 때면 엄마의 마음을 한 줄 한 줄 짚어보는 듯하다. 


키티의 아버지는 레빈을 두고 이보다 좋은 배필은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저녁 파티에 초대된 브론스키한테는 눈길도 안 주고 레빈만 챙기며 반긴다. ‘카첸카의 불행(?)’을 염려하며 남자들만 알아보는 눈이 있다며 아내를 나무란다. 브론스키는 ‘잠시 즐기기만 하려는 얄미운 메추라기 새끼’라고 비하하는 한편, 레빈은 ‘진지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정말 남자를 제대로 알아보는 남자만의 시각과 감각이 있을까? 딸의 결혼과 장래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사윗감을 살피며 신실한 청년을 가려내고 알아보는 눈이 있다고 톨스토이는 공작의 입술로 말한다. 


그래서 엄마는 사촌 오라버니를 불렀을까?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지라 큰아버지는 모시지 않고 젊은 오빠만 함께 했던 그 날 저녁이 선명하다. “저런 애들이 생활력은 강하다!”라는 한 문장으로 무리하고 말았다. 그 강한 생활력 덕분에 셋집살이는 면했고, 남편 월급통장은 구경 한 번 못한 채 27년을 살았다. 휴~~~! 남자는 남자가 제대로 알아보는 게 맞다. 

매거진의 이전글 빵을 훔치지 않으면 되잖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