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 작가가 왔다.
하동 평사리로 이사온 지 세 해가 지났다.
풀과의 전쟁을 치르는 시골살이가 고단하다고 애교어린 푸념도 풀고
자연 풍광을 즐기며 흙과 친하게 지내는 건강한 생활도 즐겁게 전한다.
진행자가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중동지역 정세를 끄집어내자
“아. 그런 걸 왜 저한테 물어요? ㅎㅎ”
라며 소박한 듯 노련한 웃음으로 받아 넘긴다.
진행자는 국제 정세나 사회 문제에 민감하고
작가는 애써 심각한 얘기는 피하는 분위기다.
시골살이가 세상살이와는 적절한 거리두기인데
굳이 애써 논쟁하기 싫다는 분위기였다.
그런 면에서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또 이런 모습에서 전날 환갑을 맞은 연륜과
베스트셀러 작가 관록을 엿본다.
진행자가 준비한 여러 질문과
청중이 미리 신청한 질의에 응답하며
한 시간 반 동안 ‘토크’로 가득 찼다.
차기 소설 계획을 묻자 벌써 초고를 마쳤다고 한다. 소설가는 쓰기 위해 일상을 사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감을 처음 보는 순간, 소설에서 절정을 어디로 하면 좋을지 딱 보인다는 작가의 말씀.
흠... 그러고 보면, 작가는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기질을 갖고 세상에 오는 듯해 청중 질투심 유발함.
마지막에는 작가가 서문 중 일부를 낭송했다.
(해냄 출판사 직원들이 동행하여 색다른 분위기였다.)
온 천지가 가을이다. 내가 사는 지리산 남녘은 아직도 따스하지만 집 앞의 은행은 이미 노란빛으로 물들어간다. 저 멀리 가을과 이어진 겨울의 매듭이 보인다. 이 바람은 수풀을 메마르게 하고 꽃들을 지게 하며 뿌리를 더 깊이 땅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나비는 바람에 해진 날개를 떨면서 마지막 힘을 다해 알을 낳을 것이다. 천지는 숨을 죽이고 더 깊숙이 엎드려 겨울의 눈보라를 견딜 채비를 할 것이다. 시골에 살다 보니 자연의 빛이 내게 흘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연의 빛 속으로 들어간다. 이 자연은 가만히 놓아두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 아무리 큰 통나무라 해도 생명이 다한 후에 그것들은 아스라이 흙 속으로 스며들어 하나가 된다. 어쩌면 죽는다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하나 됨이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것은 아무리 작은 것들도 자연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영원히 썩지 않은 채 자기 자신으로 남는다. 그것들이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 본질이 아니라 껍질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저 넓은 바다까지 흘러들어가 미세플라스틱이라는 이름으로도 떠돌아 다닌다.
사람이 만든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그래서 외로웠나 보다. 도시에서, 그 많은 사람 사이에서, 그 많은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화사함 속에서도 나는 오래된 목욕탕의 굴뚝처럼 외로웠다. 그런데 이 적막, 이 침묵, 이 자연 속에서 나는 외롭지 않았다. 저 나무, 산, 바위, 그리고 바람과 구름들, 우리 집 강아지 동백이와 자태가 아름다운 들고양이들조차 에덴의 신성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껍질의 허망함을 아는 듯했다. 그들은 도시에서 헤매다가 하늘이 주신 신성을 다 잃어버리고 누더기가 되어 돌아온 나에게 그것들을 한 숟가락씩 먹여주는 듯했다. 이곳에서 내가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닌 까닭이 그것이었다.
가을이 떠나고 있는 뜰에 앉아 나는 섬진강과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 가을의 햇볕이 쏟아져 내리는 나무 데크에 붉은 고추를 말린다. 동백이는 양지 녘에서 잔다. 난간에는 흰 리넨 이불보가 지난여름의 자취를 떨구며 아주 작게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아까부터 이상하고 아름다운 향기가 달콤한 바람에 실려와 고개를 들어보니 금목서의 꽃들이 벌써 노랬다. 가끔 새들이 울 뿐 아무도 오지 않는 집 앞, 삼백오십 년 된 팽나무 밑, 빈 햇빛이 거기에도 내리쬐고 있다. 가끔씩 오는 택배 트럭 소리조차도 먼 봉우리에서 이리로 오는 바람 소리를 닮아간다.
모차르트조차 버거워 나는 음향 스위치를 내렸다. 발목으로 내리쬐는 햇볕도 따가워 그늘로 들어섰다. 천국보다 낯설다. 나는 이미 지상을 떠나 그곳으로 온 것 같은 착시에 빠진다. 이 고요, 이 정적, 이 고독 가운데에 하느님이 헐겁게 그러나 꽉 차 계시는 듯했다.
사랑하는 나의 벗들, 그분께서는 나를 산과 바다로 인도하시고 고통의 낚싯바늘에 걸리게도 하셨다. 나는 배고픈 물고기처럼 미끼들을 물고 아슬아슬 죽음을 비켜 여기까지 왔다. 우울하고 눈물 흐르던 시간도 있었고, 불면으로 쭉 이어진 새벽도 있었다. 가장 큰 후회는 더 사랑하지 못했던 것, 사랑함을 소유로 굳혀버리려던 것, 이제 나는 마지막으로 찬란한 가을볕 아래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았고 사랑했던 시간이 더 많았음을 깨닫는 것은 가을이기 때문이리라. 여름을 떨구는 리넨 이불처럼 나는 지난날의 나를 조용히 떨구며 생각한다. 삶은 지중해풍 샐러드 같아.
죽음을 거쳐온 사람들, 사랑에 상처 입은 사람들, 주린 이들과 배고픈 이들, 그리고 샘물을 갈망하는 사람들, 밤새 광야를 헤맨 사람들에게 내 책을 전하고 싶다. 그들은, 아니 어쩌면 그들만이 이 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나의 벗이다.
2023년 11월 공지영